요즘 들어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깊게 잠들지는 못했으니까.

몇 번이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자리에서 일어 나니 '오늘은 정말로 청소를 해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에 채이는 잡동사니들이 곰팡이 피듯 바닥 위를 물들인 탓에 내 한 몸 뉘일 자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집인데도 내 자리가 없다니, 쓴웃음이 목에 걸려 기침이 나올 것만 같다.


눈을 굴려 주위를 보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쓰레기들이 바닥에 나뒹군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쓰레기들은 얌전히 쓰레기통 속에 있으니까. 

나도 기본적인 위생 관념은 있는 사람이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당연한 것 아니여?

다만, 버리지 못한 것과 버려선 안될 것들이 서로 섞여 유쾌한 모자이크를 이뤘다.

초등학교 시절에 했던 콜라주가 이런 느낌일까. 잡지나 광고 판촉물들을 어설프게 잘라서 

한 곳에 덕지덕지 붙이면 이렇게나 부조리한 풍경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버리지 못한 것들을 주워 유심히 살펴 보면 때묻은 기억이 손으로 퍼져 나와...




끔찍한 기억이다.



만지고 싶지도 않군. 망설일 것도 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넣는다.

비유하자면 유채꽃 색의 따뜻한 비극?

지금의 회백색 콘크리트 성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이상 이 화사함이 내 마음을 좀먹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네놈들은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

나 한 명 살기도 좁은 집에 이딴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게 화가 난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군.


추억으로 가득 찬, 빛바랜 아이보리색 책꽂이를 부숴버리기로 결정했다.

드라이버로 모든 나사를 풀고 뼈와 살을 분리해 해체시킨다. 


먼지와 톱밥이 내 몸을 가득 채우며, 한 줄기 땀이 옷깃 위를 달린다.

책장이라는 벽 뒤에 꽁꽁 숨겨놨던 먼지들이 다시 세상으로 풀려나, 내 옷도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닥에 놔둔 나무 판자에 발을 긁혀 이제는 피까지 흐른다.

회색과 붉은 색, 의외로 괜찮은 궁합인 것 같아서 지혈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바닥에 그린 핏자국따위는 개의치 않고 작업을 계속한다.


판자들이 무너지며 벽 한쪽을 긁어 놨지만, 원체 더러운 벽이라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마치 내 인생처럼.

한평생을 추하게 살았는데, 조금 더 추태를 부려봤자 티도 안 난다.

게다가 지금 내 방의 꼬라지를 보라. 치우려고 시작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방이 더 더러워졌군.

혼돈이 전염병처럼 온 집안을 갉아먹고 있다.

나는 언제나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전부 말아먹는 병이라도 있나보다.

계속 쓰레기들을 던져 넣는 게 내 일이지...

마침 어제 던져 놓았던 지포라이터가 눈에 밟힌다.

실수로라도 저걸 밟으면 아플 것 같아서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놓았다.


책꽂이는 다 분해했으니, 앨범의 산을 치워버릴 차례다.

그래도 내용물이 궁금하기는 했던 지라 손에 잡히는 앨범을 집어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대충 20분 남짓 앨범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역시 인생은 생각했던 만큼 재미있진 않구나.

앨범 속의 나는 똥 씹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아주 어렸을 적의 사진을 제외하면 입꼬리에 추라도 달아 놓은 듯 뚱한 표정을 하고는, 마치 웃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사실 여기서 웃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웃는다면 그게 싸이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싸이코라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

...시답잖은 생각.


이 삭을 대로 삭은 앨범을 계속 뒤적거렸다간 페이지가 뜯어져 나올 것만 같아서 표지를 덮었다.

그렇게 내 것이 아닌 앨범들을 계속 치워나가다 보니 얼마 남지 않은 라이터 오일을 찾아냈다.

이걸로 다시 연초를 태울 수 있겠군.


문제는 라이터를 버렸다는 것이다.


찝찝한 후회가 머리채를 붙들고 있는 것만 같아서, 할 수 없이 묶어놓았던 쓰레기봉투를 다시 펼친다.

겨우 찾아낸 라이터를 셔츠로 대충 닦고는 기름을 채워 넣는다.


불씨가 튀어오르며 불이 붙는다.

오늘 이뤄낸 가장 큰 업적이다.

불을 발견한 최초의 인류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참으로 경이롭도다. 

연초에 불을 붙이고는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닫았다.


경이로운 기적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닥 위를 뒹굴고 있는 쓰레기만이 가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지금은 매우 피곤하니 저것들은 내일 치우기로 하고,

대충 한 사람 자리만큼 쓰레기를 걷어내고 몸을 뉘인다.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내가 묻힐 6피트의 땅이면 충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