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이기 직전까지 읽고있던 소설또한 환생한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활약하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기에 깊게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죽은 직후 영체 상태에서 아마도 저세상으로 향하는 빛의터널을 통과할 때에도

도중에 생겨난 검은 구멍에 빠져버렸을 때에도

어두운 공간속에서 무언가에게 쫒길때에도

결국 붙잡혀 영겁의 시간동안 잘근잘근 씹어먹히며 고통과 공포에 의식이 녹아내릴때 조차.

하지만.


그렇게 사망직후 또한번의 죽음을 맞이하니

당혹스럽게도 환생해 버렸다.




흐릿했던 시야에 주변의 풍경이 맺힌다.

높다랗게 쌓아올려진 벽들이 굽이쳐져 좁다란 길목에.깔려있는 그림자.

느릿느릿 시선을 이동하니 흐릿한 하늘또한 보인다.

눈의 움직임 보다도 더딘 사고의 회전.

감상을 생각해 내 보려 하지만 수많은 단어들은 적절한 짝을 찾지 못하고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진 탓에 결국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다.

피부로 느껴지는 물 웅덩이의 찰랑거림.

차갑게 식어있던 눈가에 맺힌 따뜻한 눈물은 흘러 떨어져 귓가를 적시고

조금씩 활성화 되는 몸의 감각에 맞춰 막혀있던 감정이 입을통해 밀려나온다.


"시발..."


힘겹게 들어올린 왼손.

오물로 더럽혀진 어린아이의 자그만한 손이다.

또다시 입으로 뱉어내는 감정


"...시발"


웅덩이로 맥없이 떨어진 손의 첨벙거리는 소리가 막다른 골목에 울려퍼진다.

빙의... 환생... 아이의 몸...

더듬더듬 생각을 이어나가며 상황을 정리하고싶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거기다 점점 떨어지는 체온.

우선은 굳어있는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목에 힘을주어 일어나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얄팍한 목 주변 근육의 뻐근함을 견디며 힘겹게 상반신을 들어올리자 앙상항 갈비뼈가 눈에 들어온다.

몸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자 최약

소설속 주인공들은 다들 특전을 받아서 환생하더니만 역시 소설은 소설일 뿐인가.

씁쓸해진 기분으로 조금 더 시선을 내리자 하반신에 달린 '그것'이 보인다.

잠시 정적이 흐른후.

감정을 뱉어낸다.


"시...발...최고의...특전..."





오물과 구정물이 뒤섞여있는 좁다란 길을 따라 골목밖으로 향한다.

그런곳에서 뒹굴고 있던 몸또한 말라가는 오물투성이.

혐오감에 등골이 오싹거리는것도 잠시. 피부로 느껴지는 감촉은 말라붙는 진흙과 다를게 없기에 금새 적응되어버렸다.

하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악취에 들숨이 짧아진다.

습기를 잔뜩먹어 썩어들어가고있는 목재가 쌓여진 좁은 모퉁이를 빠져나오자 어두운 골목과는 조금 다른풍경이 펼쳐친다..

길가에 듬성듬성 세워진 골목에서 썩어가고있던 목재와 같은빛깔의 엉성한 나무판자집들

그리고 자신과 별반 다를게 없는 모습으로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사람들.

사람은 있으나 삶의 느낌이 없는 곳이다.

그들에게 연민이 생겨나지만 지금 내 상황에 무얼할 수 있을까.

애석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정보를 얻기위해 진흙탕 길을 건너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향한다.

다가갈수록 더욱 앙상해 보이는 그의 몰골.

움푹들어가 퀭한 눈으로 바닥을 응시하고있는 그의앞에 쪼그려 앉는다.

그런데 말라버린 몸때문인지 그와 시선을 맞추려 할때마다 머리의 무게를 버티지못한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려 한다.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바라보는 그의 눈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에게 반응할법도 하지만 그의 흐릿한 눈동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는다.

앞에 앉아있는 나를 인식못하는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에 홀리듯 응시하고 있는것인지.

저상태로 죽은게 아닐까 싶지만 마르고 갈라진 그의 입술의 튼살이 일정하게 흔들리고 있는것으로보아 호흡은 하고있는것 같다.

애석하게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닌것같다.

떠나기전 그의 시선이 닿는 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는다.


[힘내자]




이곳의 다른사람들또한 반응은 별반 다를게 없었다.

썩어가는 목재처럼 죽어가는 곳.

마을이라 부르기도 뭣한 이곳은 대체 뭘까.

아무래도 필요한 정보를 얻기위해선 이곳을 벗어나야할듯 하다.

뻘같은 길을따라 시선을 옮긴다.

드문드문 보이는 무너진 울타리의 흔적.

자그마한 언덕 뒷편으로 촘촘히 자라난 나무들도 보인다. 숲이려나.

그리고 길 건너 골목에서 뻗어 나오는 벽.

벽은 그리 멀지않은곳까지 이어져 있는것처럼 보였기에 벽을따라가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안가 숨이 차오르고 다리에 쌓이는 피로에 가벼운 몸이 쇳덩이마냥 무겁게 느껴졌다.


'해야할 일 하나 건강한 몸'


무너저내린 돌 울타리에 주저앉으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운다.

필요한건 일단 모두 머릿속 계획주머니에 넣어두고 그중 실현가능성이 높은것을 추려내어 우선순위를 달아준다.

어떻게든 사고를 끊임없이 회전시켜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어두운 감정의 괴물이 자신을 집어삼킬것 같기에.




쉬다걷다를 반복하며 마침내 벽이 끝나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맞이해주는것은 마을로 통하는 굽이진 오르막길과 그 옆에서 흐르고 있는 강줄기.

비록 나무울타리에 가려져 일부분만 보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마을이라니

노력이 보답받은듯한 기분과 더불러 안심감이 들었지만 중요한것은 지금부터지.

나는 아기로 새로 태어난것이 아니라 어린이아이의 몸으로 환생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빙의한것일지도.

그렇기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봐야한다.

혹여나 그런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우호적이길 빌어야겠지.

그리고 언어.

딱봐도 전생에 살던곳과는 풍경이 전혀 딴판인 곳이다.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곧바로 무리없이 소통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졸지에 외국어 공부를 강제적으로 하게생긴거다.


'음 자신없는데'

.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리저리 삐져나온 잔 생각들을 정리하듯 턱을 두세번 쓰다듬자 미간의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우웩"


손에묻어있던 말라버린 오물이 풍기는 코를 찌르는듯한 냄새

손뿐만이 아니다. 이미 온몸이 오물투성이다.

거적데기 하나없는 알몸이라고는 하지만 똥덩어리 알몸보다야 깔끔한 알몸쪽이 좀더 사람 상대하기 쉽지 않을까?

라는 요상한 생각을 하며 강가로 향한다.

연거푸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정신이 아득해진나머지

마을 울타리 너머로 이쪽을 응시하는 사람 그림자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