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고자 충량한 너희 대한 국민에게 고한다...."


"日本国独立万歳!(일본국 독립 만세!)"


 동경부 중앙 광장이 울려퍼졌다. 대한제국이 패망하고, 일본이 독립을 맞이했다. 광천 8년, 즉 1945년 8월 15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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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께서 세자가 도통 고기를 먹지 않으니 이번은 반드시 고기를 먹이라 명하셨다.'


 세종은 고기를 싫어했다. 왜인지 고기를 싫어했다. 운동하길 좋아하고,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조선의 왕족 혈통이 장수 집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무예에 능하고 건강했다. 물론, 독서를 사랑하고 학문을 닦는데 열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읽는 것은 지독히도 싫어하여, 매일 10시가 되면 잠에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했다.


 '아침 경연에서 좌의정이 상왕께서 말씀하시길 상을 치를때만큼은 고기를 가까이 하여 옥체를 보존하라 하셨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주상께서 이번 만큼은 고기를 내라 하셨다.'



 또한 세종은 학자를 들이는데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누구인들 마다하지 않았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궁중에 들이자 대신들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직접 벼슬을 내려주고 놀라운 발명을 이어나가자 반대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집현전에서 새로운 수학 방식을 내놓기를, 정현(正弦)이라 하여 일하는 자와 그 쟁기의 길이의 비를 대어놓고 이가 일정함을 보였으며, 여현(餘弦)이라 하여 땅과 쟁기의 길이를 대어놓고 이가 일정함을 보였으며, 정접(正接)라 하여 땅과 일하는 자의 길이의 비가 일정함을 보였다. 이를 이용해 길이 하나와 벌어진 각의 크기만 보이면 나머지를 모두 알 수 있다 아뢰었다. 이에 대신들이 혼란해하고 주상께서는 크게 기뻐했다.'


 세종이 대한의 글자만 만든것이 아니었다. 악기, 수학, 천문학과 같이 모두 아울렀으며, 이 삼각형을 이용한 계산법을 통해 기계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것 말고도 북방의 여진을 토벌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삼았다.

 세종은 서기 1418년에 즉위하여 철저한 건강 관리를 통해 70대까지 살았으며, 1470년에 세종의 장자인 문종이 즉위했다. 문종 또한 자기 관리가 철저했으며, 형제인 수양대군을 등용해 군사와 수취제도를 정비했다. 문종은 선왕인 세종의 일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새로운 무기도 발명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무시무시한 불꽃과 굉음과 함께 쇠구슬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벽에 박히고, 이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외적의 방어에 용이하게 되었다. 이를 작은 대포와 다름없다 하여 소화포이라 이름붙이고, 국경에 보내 방어에 용이하게 하였다.'


 문종은 너무 강해진 양반들의 힘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수양대군의 상소를 보고 전국적으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 쓰고, 적어도 모두 한자로 쓰는 일은 없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지방 각지의 양반의 반발을 불러왔으나, 공문서 만큼은 한문 혼용으로 쓰게 하고 양반들의 사문서만 한문으로 쓰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온 문서는 보통 이렇다고 한다.


 '民이雲같이來서言하길協商은今日이末이다....'


 문종대에는 또한 세금 제도를 바꾸어 국가 재정을 조금씩 더 확대했으며, 반발이 심했지만 기근이 든 한해에 모아둔 쌀을 꺼내어 구제하자 반발이 수그러들었다. 문종은 아버지가 오래 살았던 탓에 환갑을 넘긴 나이에 죽었지만 9년밖에 재위하지 못했다. 이후 1479년에는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즉위하게 된다. 단종은 이 시기를 이어나가는데 힘썼다고 전해진다.


 이후 역사는 순탄하게 진행된다. 중간중간의 일들은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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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国独立万歳!"


 분주하게 도망가는 대한인들이 보인다. 일본인들은 기뻐서 광장에서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다른 도시도 이럴 것이다.



 "그대들, 대한 국민들은 짐의 이러한 뜻을 잘 새겨두어 지키길 바란다."


 방송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