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탁류였다.

근처의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으 찔러가며 겨우 얕은곳을 찾아내 발을 담근다.

맑은 물이 아니라 꺼림직 했지만 다큐에서 종종 나오던 탁한 강물로 목욕도하고 빨래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오물이 씻겨져 나갈수록 확연히 들어나는 앙상한 몸


'대체 얼마나 굶어야 이렇게까지 깡마를수 있는거지'


그렇다고 당장 배가고픈것도 아니고 어지러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깨어난직후 머리가 멍하긴 했지만 차차 나아지고 있는상태

보기보단 양호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씻으며 알게된 거지만 눈에띄는 상처나 문신같은것도 없었다.

소설속의 누구는 용사의 증표라면서 태어날때 몸에 문신이 떡 하니 그려져 있더만

이건 그런것도 없이 밋밋한 몸 뿐이라니.

뭐, 문신이 있어도 알고보니 노예의 증표였다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슬쩍 하반신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래도 이것 만큼은 용사네.'


스스로 '용사의 증표'로 삼은 '그것'를 유심히 바라보며 흡족해 하는 와중

자갈끼리 부딛치는 듯한 충격음과 함께 눈앞이 번쩍거린다.

곧이어 몰려오는 후두부의 극심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

욱씬거리는 머리를 감싸쥐며 뒤를 돌아본다.





아이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내려온것일까.

드디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저 멀리 날아가는 뒷통수의 통증.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아이들의 손에. 하나둘씩 돌이 쥐어져 있다.


'느낌이 쌔한데...'


가장 덩치가 커다란 아이가 무어라 외친다.

화가난듯 한껏 치켜진눈에 목에 힘을주어 외치는 말

거기에 삿대질까지 곁들여져 자신을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 또렷히 느낄 수 있다.

절망이 온몸을 때리는듯한 감각

이이들의 반응 때문이 아니다.

아이가 외친 말.


'모...못알아 듣겠다'


아니길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힘껏 뭉게버리듯 외쳐대는 아이들의 말은

짧은 지식을 총 동원해 보아도 알고있는 언어들중 비슷한것 조차 없었다.

적잖은 충격으로 점점 새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릿속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들의 외침에도 그저 멍하니 서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손에 쥐고있던 돌을 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돌은 허벅지에 적중하자 던진녀석이 기세등등하게 환호성을 지른다.

날아갔던 뒷통수의 통증이 돌아와 새로생겨난 허벅지의 통증과 통성명을 하려는듯 격통이 퍼져나간다.


'아 젠장! 꼬맹이들한테 화를낼수도 없고, 아니 그전에 왜 빡친거야 저놈들은?'


혹시 강물에서 씻으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건가?

왜지? 마을의 식수원인가? 근데 마을로 흘러가는게 아니라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방향이라 상관없을꺼 같은데?

아니 그전에 이렇게 드러운물을 마실수는 있나? 그야 다큐에선 마시더만. 끓여마시나???

도무지 원인을 알수가 없기에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킨다.

하지만 납득될만한 이유는 도무지 생각나질 않고.

제대로 묻지 못한 분노는 인내심을 뚫고 서서히 흘러나온다.


'아니 그렇다고 다짜고짜 돌부터 던지냐?'


그리고 방금전 허벅지에 돌을 맞춘녀석.

브로콜리를 닮은 머리모양의 녀석은 약올리듯 실실 쪼개기 까지 하고있다.

뭐 연장자로써 꼬맹이의 철없는 도발쯤이야 인내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용사의 증표'가 깨져버릴뻔...아.

다시 생각해보니 소중한 '(자칭)용사의 증표'가 위험했던 상황.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저나가는 분노에 인내심의 리미터가 터져버린다.


"이 시발 브로콜리 새끼가?!"


변성기가 오지않아 갸냘픈 목소리와 의미를 알수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녀석들.

하지만 본인을 향해 묵직히 뻗어나오는 그 기세에 눌려 브로콜리 녀석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물론 그정도로 겁만주고 끝낼생각은 없지.

강바닥의 진흙을 양손으로 퍼올려 녀석들에게 있는힘껏 던진다.

갸냘픈 팔에서 던져진 전혀 위력적이지 못한 진흙.

하지만 녀석들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기위해 던진것이 아니다.

이런팔로 돌을 던져봤자 위력적이지 못할것은 불보듯 뻔하기에

그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고통을 주기위함이다.

목적은 바로 녀석들의 옷.

대낮부터 더러워진 옷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반길 부모는 흔치 않을것이다.


'자, 집에돌아가서 신나게 쳐맞아라! 애송이들!'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피해가며 몇번 더 진흙을 퍼올려 던지자 체력은 금새 바닥나 버린다.

가장 눈엣가시같은 브로콜리 녀석의 반응을 확인한다.

아 역시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로 질질 짜고있다.

허벅지의 통증이 날아가버린듯한 느낌

돌은 던지지 않고 덩치큰녀석 뒤에서 숨어만 있던 녀석은 당황한듯 옷을 털어내고있었다.


'친구를 잘못만난 탓이다 원망하지 마라'


다른애들보다 덩치도 작고 생긴건 유약해도 울거나 하진 않는것이 내면은 강인한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덩치큰 녀석의 상태를 본다.

중앙에 자리잡고 서있던 녀석. 아무래도 아이들 패거리의 대장일듯 하다.

까불면 한대 맞는다란 위압감을 내뿜는 녀석은 옷에 묻은 진흙에 울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뻘건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올뿐


'그렇겠지...? 열받는게 당연하겠지...?'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은 돌보다 큼직한 주먹을 쥐고 힘껏 휘두른다.

피할 체력도 없었기에 녀석의 주먹을 안면 꽉 차게 받아들인다.

이번엔 돌이 부셔지는듯한 호쾌한소리와 함게 새하얗게 변하는 시야.

가벼운 몸은 그대로 날아가 풀밭에 고꾸라져 버린다.


"흥"


콧방귀와함께 손을 탈탈터는 녀석은 이쪽을 쏘아본뒤 진흙범벅인 아이들을 추스려 마을로 돌아갔다.




녀석의 눈빛에 머리가 식어간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


'이건 뭐 그냥 꼬맹이네...'


아이의 몸으로 변했기 떄문일까.

조금 더 신중히 행동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녀석들과 친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래선...'


꼬르륵

공복은 후회와 함께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