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밤을 기다리는 족속들이 있다.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비추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자기네 둥지로 유혹한다. 노래방, 클럽, 술집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곳, 내가 처음으로 보는 이곳은 그런 곳들과는 격을 달리했다. 후미진 골목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문 하나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그 문 위, 푯말엔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빡촌.”


밤의 눈들이 자신들의 어둠을 흥겹다느니 즐기라는 표어로 가릴 때 이 가게는 그런 허영심을 버렸다. 빡촌이라는 단어 선정이 그 가게가 호객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멀뚱히 그 푯말을 보다 어느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은연 중에 매캐한 담배 내음이 코를 찔렀다. 안은 꽤나 넓었다. 성인 15은 들어갈만한 곳이었다. 빙 둘러보다가 문 바로 오른쪽 카운터에서 날 빤히 바라보는 한 여성을 발견하였다. 


“어서오세요. 체크인 하시게요?”


길게 내린 금발에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은 여자였다. 얼굴엔 떡진 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네.”

“한 시간에 5만원입니다.”


나는 외투속에서 주섬주섬 5만원권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처음 오시는 분이죠?”

“네.”

“일단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여자의 말에 따라 나는 잠자코 그녀를 따랐다. 길게 늘어진 복도를 따라 문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여기 쓰세요.”


여자가 가리킨 곳은 303호였다. 


“우리 직원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이나 행동, 폭력을 쓰시면 경고없이 경찰에 신고할 거고요. 책상 위 타이머 보이시죠? 직원이 오면 한 시간 맞출테니까 시간 맞춰 끝내시면 되요.”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여자가 나간 뒤 나는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은 꽤나 깔끔했다. 방 가운데엔 휴지와 ㅋㄷ이 놓인 책상이 있었고 벽면에는 소파가, 그 맞은 편엔 TV가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은은한 조명탓에 화면에 비친 얼굴이 일그러져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왠지 거부감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들어갈게요.”


때마침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백발 머리에 리본을 묶은 여자였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미소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이 그녀의 연륜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다 태평양마냥 거대한 가슴 두 덩이는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날카롭지만 또 가녀리면서도 귀여움이 느껴지는 여자의 목소리는 그녀의 완숙함과 완전히 대비되고 있었다. 아름답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온 분이시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셋입니다."

"어머 완전 애기잖아."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어깨를 가까이 했다. 알싸한 향수내가 풍겨왔다. 암컷의 냄새였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기분이었다.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오랜만에 애기가 왔네. 잘 대해줄테니까 누나 말 잘 들어."


여자가 내 귀를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짜릿한 전류가 팔을 타고 온 몸에 작렬했다. 생각이 멈추고 뇌는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나를 상상케했다.


“잠시만요.”

“응?”

“저는 오늘 그런 목적으로 온 게 아요.”

"그럼 뭐하러 왔니?"

"저, 누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여자는 이미 상의를 반쯤 내렸다. 어깨 선 위로 핑크색 브래지어 끈이 보였다. 나는 시선을 TV로 돌렸다. 


"누나는 이 일을 만족하세요?"

"으음? 그건 왜?"

"제가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소설?"


TV에 여자의 얼굴이 비췄다. 그녀의 눈동자엔 선명한 빛이 어려있었다. 


"작가니?"

"아뇨 작가 지망생이에요."

"뭐야 그거 웃기네. 그래서 소설에 창녀라도 등장하니?"

"네."

"멋지네."


여자는 내 배를 손가락으로 슥 그었다. 그 자리가 마치 화상을 입은듯 뜨겁게 느껴졌다. 


"만족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니?"

"왜 만족하냐고 물어보겠죠?"

"그럼 만족 안 한다면?"

"왜 안 하냐고 물어보겠죠."

"하하, 완전 애기네 애기."


여자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네가 여자가 돼봐.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아무래도 싫겠죠?"

"아니 마냥 그런 것도 아냐."

"그럼요?"

"꿈을 꾸는 거지. "


여자는 어느새 내 팔에 가슴을 딱 달라붙였다.


"언젠가 더 나아지겠지. 더 좋은 게 오겠지. 그런 상상말이야."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기다리세요?"

"내 나이에 그런 걸 믿을 거 같니? 언젠가 나를 손에 쥐고 흔들어줄 남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거야."

"손에 쥔다고요?"

"그래."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에요?"

"응? 그건 모르겠지만 말야. 여자는 원래 그런 법이야. 사랑에 목말라서 남자를 말려죽이지."

"그런가요?"

"그래."


여자는 내 어꺠에 머리를 기댔다. 무언가 추억에 빠진 듯 몽롱한 눈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전남편이 있지, 참 멋진 남자였어. 그는 배 타는 사람이었는데 한 번 하면 동 틀때까지 활기찼지. 난 그 남자에게 잔뜩 사랑을 받아냈어. 근데 말야. 그 남자가 어느날 나를 버렸어."

"왜요?"

"그 남자한테 새로운 여자가 생긴 거였지. 나는 몰랐어. 그 년말야. 같은 배 선원이었어. 그 남자보다 8살 연하였지. 여우같은 년이었어. 그 남자 팔짱을 끼고 나타난 날 그년 눈깔을 뽑아줬어야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죠?"

"결국 이혼했어. 평생 내게 사랑을 주는 줄 알았는데. 결국 떠나가더라. 지 손에서 열심히 갖고 놓고는 말야."


여자의 목소리는 한층 차분해졌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괴로웠겠어요."

"아냐."


여자는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왔다. 


"느껴져 심장 박동이?"

"미약하지만 느껴져요."

"그럼 됐어. 내 이야기는 끝이야. 날 하룻밤 사랑해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빨리 관계를 끝내라는 암시인지는 몰랐다. 허나 확실한건 그녀는 날 원하고 있었다. 전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손 위에서 갖고 놀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키스를 해주었다.


"이야기 고마워요. 오늘은 제가 사랑해 줄게요."

"고마워."


지갑엔 20만원이 있었다. 동틀녘까지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