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는 그야말로 사방에 마법과 무기가 날아다니는 개판이었다. 검열 인력사무소 소장 김정철은 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쿼티 나스호르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세계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음모라는 것이 맞는 말 같이 들렸다.
애초에 그는 크립토 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고만 들었을 뿐 크립토 윌이 세계 정복에 쓰이는 물건이라는 것은 듣지 못했다.
산양은 그런 그가 심적으로 동요되어 날뛰지 않도록 저지하고 있었다. 산양은 쿼티 나스호르의 말에 계속 반박하면서, 병사들이 의문을 사지 않고 쿼티 나스호르를 족치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하게 했다.
"정신차려! 쿼티 나스호르는 선동됐어! 전부 다 드워스터 레나의 계략이라고!"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드워스터 레나가 이쯤하면 됐겠지 생각하고 검열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몸으로 돌아갔다. 마력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뻐근했다.
검열은 드워스터 레나가 일깨워준 진실에 의해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의 눈은 가느다란 눈물을 흘리며 볼을 촉촉히 적셨다.
"드디어 일어났네. 빨리 쏴!"
난리통에서 드디어 일어난 검열을 보고 검열가 재촉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을 향해 마법이 마구잡이로 발사되고 있었다. 그 양이 너무 많아서 한 명 한 명의 힘이 절박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검열검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말을 거부하고 절대자를 검열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오랜 동료였기 때문이었을까, 손가락은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갑자기 총부리가 겨누어진 검열는 잠시 당황하더니 검열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검열의 팔을 세게 쳤다. 검열의 손에 든 절대자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검열가 그 절대자를 집어들고 검열의 다리를 걷어차 무릎 꿇게 했다. 오랜 동료였지만 생존본능이 먼저 나왔다. 그녀는 절대자를 검열의 머리에 겨누었다.
"넌 또 왜 이러냐?"
"......"
"어이, 말 좀 해봐."
"아버지가 했다. 절대자와 크립토 윌. 당신들은 도난하고 아버지는 이민했습니다. 들어가는 우주선에 서울로 착지. 사회를 자칭한 자들은 나를 속였다."
검열의 입술이 심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장착된 번역기를 통해 무감각한 기계음으로 바뀌었다. 표정과 목소리가 매치되지 않았다.
"삼 왕국에 경의? 발전이 덜 된(검열) 상상. 나를 당신들은 속였다. 아버지 피해 나쁘다. 속였다 검열 송구하라. 나를 이용."
분노에 찬 말투에 의해 번역의 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교류해온 검열는 그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절대자를 안전 상태로부터 풀고 총알을 장전했다. 그리고 검열의 이마를 제대로 겨누었다. 손에 힘을 꽉 준 그녀의 눈은 혐오와 경멸로 차있었다.
검열이 죽음을 직감하고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기서 죽어라."
검열가 서서히 방아쇠를 당겼다. 검열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자신을 지구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었던 검열에게 미안했다. 삼 왕국에 속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 때 꽝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검열은 이제 죽었다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느껴보니 머리에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검열이 눈을 떴다. 그러자 피로 물든 곤봉을 들고 선 김정철이 보였다. 나무라이브 시의 경비대들이 들고 있던 그 곤봉이었다. 사람을 해한 것에 움찔하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앞에는 정신을 잃고 피를 흘리고 있는 미모의 여자가 보였다. 김성희였다.
김정철이 검열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몸을 홱 돌려 옆에 있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크립토 윌 가동률 94%를 앞두고 있던 그가 화들짝 놀라 옆으로 피했다.
"넌 또 왜 이래?"
"그래, 어쩐지 뭔가 꺼림칙하더라. 이름 없는 이상한 인력사무소에 갑자기 검열이라는 대기업이 큰 돈을 주고 의뢰한 것부터 수상했어. 뭘 만드는 건지 알려주지 않았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김정철이 자신을 이용했다는 분노에 다시 한 번 돌격했다. 그러나 일개 소시민인 그가 산양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산양이 갑자기 꺼림칙한 미소를 지었다. 김정철 정도는 만만하다는 여유에서 나온 것이었다. 산양이 비웃는 어조로 작게 말했다.
"아, 너도 눈치챘냐?"
김정철의 생각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정철은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그래, 막아봐라! 어차피 가동률은 94%. 넌 나를 절대 이길 수 없어! 지금 생각해보니 너한테 무기 안 주기 잘 했네!"
"산양인지 사냥인지 네 년이 그러고도 살아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곤봉이 다시 세차게 휘둘렸다. 그러나 산양은 나비처럼 피해 벌처럼 김정철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김정철이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산양이 절대자를 꺼내 김정철에게 망설임 없이 쐈다.
탕.
김정철이 절대자에 맞아 몸이 원자 단위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곧 머리 전체가 허공에 흩어져 날아갔고 몸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내 절대자가 한 번 더 날아오더니 그의 몸이 다시 조각조각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쏜 사람은 검열이었다. 검열은 또 다시 그것을 발사해 산양의 절대자를 맞췄다.
"아, 맞다. 네가 있었지. 너도 죽여야겠다."
산양이 김정철이 들고 있던 곤봉을 집었다. 그리고 곤봉을 던져 검열을 맞추었다. 검열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 사이 산양이 빠르게 착지해 검열을 공격했다. 검열이 반격하려 했지만 넘어지면서 절대자를 떨어뜨렸다. 산양이 그 절대자를 집어 검열을 저격했다.
그러나 산양이 타격을 받고 넘어지면서 검열에 명중하지 못했다.
"휴, 아슬아슬했네."
드워스터 레나가 착지하면서 말했다. 방금 막 자신의 현으로 전향시킨 사람을 잃어버릴까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
"드워스터 레나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 피해!"
갑자기 드워스터 레나를 향해 거대한 마법이 날아왔다. 그 마력은 엑셀시온 왕자와 쿼티 나스호르를 능가하고 있었다. 드워스터 레나는 간단한 마법으로 그곳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흑마법인 혼령마법을 쓴 상태라 드워스터 레나의 마력은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제1서부기지 총대장 드워스터 레나! 너는 여기까지다!"
성녀 하이렌이었다. 그녀는 난장판 가운데서 적을 빠르게 찾아내곤 수많은 공격을 퍼부었다. 역시 달의 최강의 마법사들 중 한 명이었다.
드워스터 레나는 온갖 마법을 맞으면서 고전했다. 마력이 부족해서 제 힘을 쓸 수 없었다. 만약 마력이 있었다면 필히 그녀와 비등비등하게 싸웠을 것이었다.
그녀가 크립토 윌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정신을 차린 김정철이 있는 힘껏 중단시키고 있었다. 크립토 윌 개발에 참여했던 그였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전적으로 산양과 캐롤라인의 영역이었기에 진행도를 늦추는 게 다였다. 김미영 팀장의 압박으로 시간이 줄어들어 일부를 날림 제작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때 쿼티 나스호르가 포효하며 성녀 하이렌을 공격했다. 성녀 하이렌은 간단한 방어술식으로 막아내었으나 아군의 공격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 눈치였다. 그녀도 이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죽더라도 너는 죽이고 가야겠다 이 십팔련아!"
쿼티 나스호르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성녀 하이렌에게 온갖 고급 마법들을 갈겼다. 성녀 하이렌이 반격하면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치열한 공중전 끝에 쿼티 나스호르가 1분도 되지 않아 땅에 처박혔다.
성녀 하이렌이 크립토 윌을 쳐다보았다. 현재 가동률 99%. 김정철이 막아섰는데도 저 정도의 진행속도인 것을 고려하면, 곧 그녀의 세상이 열릴 것이 확실했다.
"이제 끝이다."
성녀 하이렌이 드워스터 레나에 지금까지 했던 마법들 중 가장 강한 마법을 날렸다. 드워스터 레나가 피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드워스터 레나는 맞지 않았다.

크립토 윌이 치지직 거리더니 가동률이 99%에서 순식간에 숫자들이 바뀌면서 40%, 20%, 10%... 아예 숫자가 아닌 알파벳이나 이상한 문자들 등을 표시하며 격렬한 오작동을 보였다. 그리고 장치가 점점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것처럼 뿌옇게 흐려지더니 마침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곳 사방의 군사들의 몸은 마비된 듯 움직이지 못했고, 폭발 이후에는 그곳 일대의 시간이 아예 정지하였다. 혼란의 삼 왕국의 시간도, 초조한 김정철의 시간도, 추락하는 쿼티 나스호르의 시간도 얼어붙었다.
성녀 하이렌은 당혹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완벽한 계획이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으면 온 세상이 바뀔 것이었다. 그러나 크립토 윌은 폭파되었다. 모든 계획이 엎어졌다.

성녀 하이렌이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한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완벽한 형태의 관리자 옵션 창을 가지고 있었다.
"휴, 다행히 늦지 않았다."
그다지 정돈되지 않은 옷가지와 씻지 않은 듯한 몰골을 가진 사내의 말이었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다가 하늘에서 성녀 하이렌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래, 성녀 하이렌! 네놈의 음모는 여기서 끝이다! 각오해라!"
과학자의 외침이었다. 과학자는 그 말을 하고 바로 관리자 옵션 창에 무언가를 빠르게 써내려갔다. 성녀 하이렌이 바로 반응하여 마법을 쏴갈겼지만 카일라와 이스밀라의 방어마법과 이민의 검열에 의해 막혀버렸다. 루보의 무효화의 목걸이는 과학자가 써야 했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다.

마침내 과학자가 모든 코딩을 완성했다. 성녀 하이렌의 수십차례의 공격이 있었으나 과학자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성녀 하이렌이 과학자를 계속 맞추지 못하자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감지했다. 그녀는 분을 삭이면서 빠르게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마법이 느린 속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과학자는 엔터키를 눌렀다. 

코드가 작동되자 성녀 하이렌의 주변에 붉은 빛이 돌았다. 성녀 하이렌이 마지막 발악을 하였지만 그게 먹힐 리 없었다. 그녀는 결국 서서히 먼지가 되었다. 고운 가루들이 바람에 휘날려 흩날렸다.
드워스터 레나 일대의 전장에는 시간이 다시 감돌았다. 삼 왕국과 마왕성 등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지 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 간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학자가 그들을 모두를 세뇌에서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루티온과 이민 등 일부를 시작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 기쁨은 금새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온 군사들과 일행들이 부둥켜 안고 행복해했다.

그러나 단 두 명, 카일라와 이스밀라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야! 이거 안 막아져!"
카일라가 소리쳤다. 노란 빛으로 오는 느린 마법은 그녀의 그 어떠한 마법으로도 막아지지 않았다.
"에이, 막아지겠지."
비트립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나 방어할 수 없는 것은 이스밀라도 마찬가지였다.
"진짜야! 전혀 꿈쩍도 안 해!"
이스밀라의 다급란 외침에 과학자가 무슨 일이지 하고 상태창을 열어 간단한 코드를 짜서 없애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과학자가 분석에 들어가자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쟤네들 말이 맞아. 이건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어!"
과학자가 위급하고 허탈하게 말했다. 그리고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저건 어딘가에 맞으면 사방 100km가 전부 폭발하는 흑마법 중에 흑마법이야. 너무 위험해서 저런 속도로 쏴도 시전자가 3분 내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강한 마법이지."
"젠장, 그럼 같이 죽자는 거잖아!"
카일라가 성녀 하이렌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끝까지 뒤통수를 치는 얄팍한 선택을 하다니, 그녀의 인성에 다시 한 번 혈압이 올랐다.
"그럼 어떻게 막는데요?"
비트립이 과학자에게 물었다. 과학자는 수심에 찬 어조로 답했다.
"누군가 한 명이 대신 맞아야 해. 대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음에 이르겠지."
그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죽어야만 한다는 점이 아주 잔혹한 시련이었다그러나 혜움은 그곳에서 정답을 알고 있었다.
"이민, 딱 알맞은 사람이 한 명 있어."
"뭐? 누군데?"
"이한서. 너랑 같이 온 사람."
"뭐? 야, 그렇다고 걔를 희생시키면..."
"괜찮아. 이한서는 죽는 게 이득이야. 왜냐하면 쟤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은 이 세계에 로그인한 게임 유저야. 크립토 윌 때문에 로그아웃이 막혀있어서 죽어야만 나갈 수 있어."
이민이 잠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이내 받아들였다. 그는 미안산 마음으로 이한서에게 갔다.
이민이 이한서에게 자신이 아는 것과 그가 해야할 것을 전해주었다. 이한서는 그 말을 듣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긍정의 메시지를 주었다. 그리고 다짐한 듯 모두에게 소리쳤다.
"제가 죽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괜찮겠어? 죽는 건데?"
"괜찮습니다. 저는 원래 다른 세계의 사람. 죽어야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몸입니다."
이한서의 놀라운 선언에 모든 이들이 깜짝했다. 그는 바로 마법을 맞으러 인파를 헤치고 나왔다.
"여기에 있어서 즐거웠고 이 세계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비장한 마지막 말과 함께 노란 빛을 내는 흑마법은 이한서의 몸을 맞추었다. 이한서의 몸이 노란색으로 서서히 물들더니 이내 노란색이 검은 빛으로 바뀌었다. 이한서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온 몸이 흑요석처럼 굳어가더니 이내 별빛처럼 반짝이며 산란했다.
이한서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희생에 뭉클해졌다. 특히 이민은 그 자리에서 울음지었다.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드워스터 레나 쪽에 있던 사람들도 노란 섬광이 사라진 것을 보고 무슨 일이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 소녀는 그곳에서 반가운 사람을 맞을 수 있었다.
"아버지?"
검열이 과학자를 발견하고는 울면서 달려들었다. 과학자는 그를 품 안에 반겨주었다. 삼 왕국에 속아 앞잡이가 되었던 그녀는 하나의 소녀로 돌아와 눈물을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