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면 도시 비트루비우스 상공


연합 특수 작전 사령부 위장 프리깃 CSFS 인듀어런스 - TF E-9 "Nine-Tailed Fox" 모함


A.U. (After Unification) 54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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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회색으로 도장되어 있는 연합 해군 소속 함선들과 달리 인듀어런스는 일반 화물선을 연상케 하는 녹색으로 도장되어 있었다. 군용 함선들이 퇴역 이후 민간 업체에 이양되어 화물선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흔치는 않았으나 그래도 꽤 있었기에 월면 도시 비트루비우스의 시민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약간 노후화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인듀어런스가 나인 테일 폭스에게 배정된 까닭이리라.


인듀어런스의 격납고에는 소형 VTOL 셔틀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종사 한 명과 완전 군장을 갖춘 대원 여덟 명, 그리고 각종 분대지원화기를 실을 수 있는 크기인 셔틀은 본래 특수 작전 사령부 소속의 특수부대들이 투입될 때 사용하는 군용 쾌속 부대 배치 셔틀의 모양새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오히려 골동품 민간 셔틀의 외형을 닮고 있었다. 


잭은 인듀어런스의 무기고 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장비를 점검했다. 새로 지급된 단축형 돌격소총 CFM9A3을 순식간에 분해해 내부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조립하기를 일곱 번, 예비 탄창 세 개의 탄약 상태를 점검하기를 네 번, 그리고 허벅지의 권총집에서 재빨리 권총을 꺼내드는 연습을 하기를 스물네 번. 마지막으로 다시 방탄 조끼 끈을 조이기를 다섯 번. 연합 해병대와 특수 작전 사령부를 거쳐 나인 테일 폭스의 부대장으로 선발된 잭은 지금까지 수십 번의 작전을 수행해 온 베테랑이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부대원들과 실전에 나서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목표 지점 도착 5분 전. 특무부대 에코-나이너의 대원들은 속히 셔틀로 이동해 주십시오."


함의 PA 시스템을 통해 낮게 깔린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른하지만 듣는 사람의 긴장을 풀리게 하는 목소리. 인듀어런스의 함장인 크루코프 중령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잭은 옆에 내려놨던 헬멧을 머리에 쓰고 바닥을 딛고 일어나 소총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무기고 문을 열며 격납고를 향했다. 잭 외에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복도에는 저벅저벅 무거운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연합 특수 작전 사령부의 공돌이 놈들, 소음 없는 최신형 전술 군화라더니 개소리였네, 제기랄,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무표정만을 띤 채 잭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격납고에 도착해보니 그를 제외한 다른 부대원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특무부대 작전복을 입은 여덟 사람을 제외하고도 격납고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으니, 바로 인듀어런스의 함장 크루코프 중령과 연합 특수 작전 사령부의 현장 감독관 로베르트 대위였다.


"자, 모두가 모인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작전 브리핑을 하겠다. 작전 목표는 건물에 있는 지평선 조직원들의 제거와 이들에게 탈취당한 연합 기밀 문서의 회수다. 부대는 건물 옥상에 강하하여 옥상에서 1층으로 내려가며 작전을 진행합니다. 추산되는 지평선 조직원은 44명. 최소 36명은 무장하고 있다. 무장 병력은 연합 예비군 제식 돌격소총 CFM1A2를 포함한 개인 화기로 무장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건물 주위에는 비트루비우스 시 사복 경찰이 잠복하고 있다. 이상. 질문 있나?"

특수 작전 사령부의 남색 제복을 입고 양쪽 어깨 견장대에 금색으로 빛나는 대위 계급장을 패용한 로베르트 대위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길쭉하고 각진 얼굴형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의 희미한 잔주름과 조금씩 보이는 흰머리에서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그의 고요한 눈동자 속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위의 옆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검은색 제복의 남자는 대위와 비슷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베르트 대위와 다른 점은 그가 멋들어진 콧수염과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며, 또한 사무적인 인상의 대위와 달리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긴 하지만 푸근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크루코프 중령은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경례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피어스가 파일럿을 맡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 셔틀에 탑승한다. 목표 지점 상공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신속하게 이동하여 1분 안에 셔틀 출격 준비를 마친다. 실시!"

잭이 뒤돌아 부대원들을 마주보며 소리쳤다.

"예!" 하고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셔틀에 앉을 좌석이라고는 없었다. 다만 천장에 달린 손잡이만이 있었을 뿐. 잭은 돌격소총을 오른손에 옮겨 쥐고 셔틀 가장 안쪽에 달린 손잡이를 왼손으로 잡았다. 나머지 부대원들도 제각기 위치에 서고 셔틀 양옆의 문이 닫혔다. 인듀어런스의 격납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후 셔틀의 엔진이 불을 뿜었다. 

"여기는 컨트롤, 통신 체크 시작."

헬멧의 헤드셋에서 로베르트 대위의 음성이 들려왔다.

"에코 나이너 원, 체크."

잭이 대답했다.

"에코 나이너 투, 체크."

"에코 나이너 트리, 체크."

"에코 나이너 포어, 체크."

"에코 나이너 파이프, 체크."

"에코 나이너 식스, 체크." 

"에코 나이너 세븐, 체크."

"에코 나이너 에잇, 체크."

"에코 나이너 나이너, 체크."

"여기는 컨트롤, ETA 2분. 강하 준비 태세에 돌입하라."

"라저."

셔틀 뒤쪽에서 강하 케이블을 내리는 손잡이가 내려왔다. 그 손잡이를 당기면 오른쪽 문이 열리면서 강하 케이블이 건물 옥상까지 내려갈 것이다. 정적 속에서 제트 엔진의 소리만이 들려왔다.

"여기는 컨트롤, 에코 나이너, 리마 줄루에 도착했다. 강하하라." (리마 줄루 = Lima Zulu. 강하 지점 (Landing Zone) 을 말하는 음성 기호)

"여기는 에코 나이너, 강하한다."

손잡이와 가장 가까웠던 부대원인 마이크가 소총을 든 오른손으로 간신히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오른쪽 문이 천천히 열리며 강하 케이블이 풀려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블의 끝에 달린 금속 조각이 건물의 콘크리트 옥상에 닿아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마이크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강하한다. 실시!"

잭의 지휘에 따라 에코 나이너의 부대원들은 줄을 타고 건물 옥상으로 한 명 한 명씩 낙하했다. 

마지막으로 잭이 건물 옥상에 안전하게 착지하자 강하 케이블이 자동으로 올라가고 문이 닫히면서 셔틀은 인듀어런스로 귀환했다. 나머지 부대원들은 재빨리 옥상 문 근처에 일렬로 집결했다.

"내가 맨 앞, 그 뒤에 나타샤, 알렉스, 안톤이 팀 알파, 펠릭스, 줄리, 마이크, 에단이 팀 브라보. 팀 알파는 나를 따라 이쪽으로 진입하고 팀 브라보는 저쪽의 입구로 건물에 진입한다. 팀 브라보가 가는 쪽에 메인프레임이 있을테니 플래시 드라이브 회수를 잊지 않도록. 무전은 항상 켜놓고 안전장치는 해제한다. 브리핑은 다들 들었지? 작전 개시."

잭이 지시를 내리자 부대원들은 조용히 하지만 신속하게 이동했다. 일반 작전이었다면야 이미 농담 서너 개는 오갔겠지만, 은밀 침투 작전에선 농담을 위한 여유는 없다.

잭이 문을 열고 계단으로 진입하자 바로 뒤에 나타샤, 알렉스, 안톤이 따라붙었다. 건물은 총 5층짜리. 건물 곳곳에 무장 병력이 있으리라.

비상등만 들어온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잭과 부대원들은 빠르게 이동했다. 


5층 문을 박차고 열자 양옆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지평선 조직원 두 명과 마주쳤다. 총을 꺼내들기에는 너무 순식간이고 가까웠기에 육탄전이 벌어졌지만 잭이 오른쪽의 남자를 목 졸라 제압하고 그 사이에 나타샤가 왼쪽의 남자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고 한 차례 발차기로 밀어낸 다음 완벽한 헤드샷으로 왼쪽의 조직원을 사살하자 끝났다. 복도를 따라 이동하자 방금 전의 총성을 들은 탓인지 저편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복도 반대편에서 돌격소총을 든 남자 셋이 나타났지만 그들이 조준하기도 전에 5.56 mm 총탄이 이미 그들에게 도착한 상태였다. 팀 브라보가 짝수 층을 맡았으니 4층을 무시하고 바로 다시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이동했다.


3층에서 계단 문을 열자 5층이나 4층의 누군가가 무전으로 상황을 알렸는지 바로 총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총탄이 열린 문을 맞고 게단 안쪽으로 튕겨져 나왔고 몇 개는 대원들을 스쳐지나가기까지 했다. 총탄 하나는 잭의 헬멧을 맞고 튕겨 나가기까지 했다. 

"내가 엄호 사격을 할테니 알렉스가 먼저 진입한다. 그 뒤에 바로 안톤. 알겠나?"

"예! 대장."

"알겠다, 에코 나이너 원."

"내 신호에 맞춘다. 셋, 둘, 하나!"

"하나" 직후 잭은 소총을 들고 복도 저편으로 3점사 사격을 했다. 물론 적이 안 보이기에 누구에게 맞지는 않은 모양이긴 했다만, 적들이 주춤한 그 사이에 알렉스와 안톤이 신속하게 이동해 복도에 서 있던 적들을 제압했다.

"탱고 다운! 네 명 처리했습니다."

"브리핑에선 최소 서른 여섯 명이 무장해 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겨우 아홉 명 만났다. 1층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니 우리가 뭔가를 놓친 게 분명해. 5층은 확실히 확인한 게 맞나?"

"5층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팀 브라보가 운이 안 좋았나 봅니다."

"한 번 확인해 보지. 여기는 에코 나이너 원, 에코 나이너 트리, 응답하라."

무전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에코 나이너 트리. 무슨 일입니까, 대장?"

"지역 경찰에 의하면 1층에는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인데, 3층까지 겨우 아홉 명밖에 없었다. 그쪽은 어땠나?"

"저희 팀도 2층까지 제압했는데 일곱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실은 텅 비어있었고요."

"이미 알고 나간 건가? 확보한 서류나 생포한 인원은?"

"서류 같은 건 없었고요, 죄다 무장 병력밖에 없어서 다 죽은 상태입니다."

"알았다. 1층에서 만나지."

잭은 총을 고쳐 잡고 계단으로 향했다. 나머지 부대원들이 잭의 뒤를 따라 1층을 향해 내려갔다.


1층에서 팀 알파는 팀 브라보와 합류했다.

"뭔가 이상한데요, 대장. 분명히 앞뒤가 안 맞습니다."

마이크가 말을 꺼냈다.

"미리 알고 나갔다는 것밖에 말이 안 돼. 아마 지역 경찰 쪽에서 정보가 샌 게 아닐까?"

잭이 대답했다.


그 순간, 잭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시각은 저녁 7시 40분. 아직 밖에 사람이 많을 때인데 건물 주변에서는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사복 경찰이 잠복해 있다고 했지만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함정이다, 다들 자세 낮춰!"

잭이 소리치자마자 주변 건물들에서 총을 든 사람들이 튀어나와 부대원들이 있는 건물에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모든 창문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끊일 줄 모르는 총성만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기는 에코 나이너 원, 컨트롤 나와라! 함정이었다!"

하지만 무전에는 침묵만 들릴 뿐이었다.

"놈들이 무전 신호를 차단하고 있어. 지원 병력은 없다! 우리가 여길 어떻게 헤쳐나가야만 한다!"


개인화기는 물론, 들리는 소리 중에서는 50구경 기관총 특유의 둔탁한 소리도 있었다. 뭐라뭐라 고함 소리가 밖에서 들리더니 건물 벽에 무언가 날아와 부딪쳐 폭발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젠장할, 저 소리는 분명 대기갑 로켓이야. 함정에 제대로 걸린 모양이야."

잭은 소리 낮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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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