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이 게이임 동성애적 요소 조금이라도 싫어하면 뒤로가기 ㄱ ㄱ < (성적 묘사 X)


재미로 첨쓴 소설인데 가볍게 봐주셍용


[ 1 ]


오늘은 수능. 그러니깐 고3인 형에게 아주 중요한 날일것이다. 물론 이날은 가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날이였다. 가민은 17살이다. 17살인데 왜 중요한 날이냐고? 곧 수능을 본다는 긴장감? 개뿔 아니다.

이날은 가민이 형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을 하겠노라 결심한 날이였다. 형을 만나게된지 어연2년. 가민은 형을 처음 만났을때 한눈에 반했었다. 구질구질하게 살던 가민에게 만화처럼 형이 등장해서 빠밤 하고 후광을 내뿜었다나 뭐라나.. 

그런데 왜 하필 망할 수능날에 고백을하냐고? 이 난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작년 이맘때로 돌아가야한다. 


가민은 언젠가 부터 늦게 다니기 시작한 형에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늦게오냐고, 형은 방긋 웃으며 곧 수능이라는 것을 보고, 수능은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해주는 중요한 시험이라서 학교에서 야간자율 학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곧바로 미리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형은 알아듣기 쉽게 친절하게 가르쳐 줬지만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가민이 수능에대해 단번에 알턱이없었다. 가민은 골똘히 생각하다 결론을 냈다.


 "어쨋든 형한테 엄청 중요한 날인거네 !"


가민은 형에게 중요한 날 이라는 존나게 단순한 이유로 이날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형에게 중요한 날 (수능날)에 고백이라니 어떡해어떡해 너무 멋져~ 라며 얼굴이 빨개져서는 자기혼자 김치국을 연신 원샷해댔다.


[금빛 고등학교] 2년전 가민은 형을 마중나가러 이 학교에 처음왔었다.이름만 듣고는 금빛으로 찬란할것같은 고등학교를 상상한 가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고등학교였다. 교문에 자리잡은 쓸데없이 거대한 철 문은 녹이 슬어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끼이이익 소리가 났고 검푸르스름하게 얼룩덜룩했다. 학교 외벽은 넝쿨이 지저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거기다가 알수없는 쓰레기들이 뒹굴던 바닥은 아주 그냥 금상첨화 였다. '금빛' 이라는 말과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순 뻥쟁이라고. 가민은 늘 생각해왔다.


 이날도 가민은 녹슨 철문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풀고 고백할 말들을 되새겨 봤다. 가민은 형이 자신의 고백을 받아주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나를 보러달려와서 연인으로서의 사랑도 나누고, 같이 맛있는것도 먹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로맨스 소설속 주인공처럼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말이다.




가민이 손자손녀까지 보는 망상을 하는 틈에 학교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방긋 웃으며 형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우리 학교의 자랑 왔네!' 같은 오글거리는 말을 형에게 아무렇지도않게 하면서 말이다. 푸근한 인상과 둥글게 튀어나온 뱃살이 마치 곰돌이 푸를 연상시켰다. 고백할 말을 되새기며 긴장하고 있던차에 갑작스레 나타난 곰돌이 푸 때문에 가민은 당황했다. 가민이 뭐라 운을 떼기도 전에 곰돌이 푸는 대뜸 형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교문 쪽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


입을 턱벌린채로 눈이 똥그래진 가민을 뒤로하고 곰돌이 푸는 형에게 곧 시험이 시작하니 빨리 들어가라고, 그동안 수고했다, 너만 믿는다, 와 같은 쓸데없는 말을 연신하며 형의 등을 팡팡 쳐댔다. 노란 곰탱이의 힘에밀려 형이 가민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형은 그와중에도 미소짓고있었다. 가민은 아무한테나 웃는 형이 늘 짜증났다. 웃는 얼굴은 자기한테만 보여주길 바랬다.


가민의 계휙은 교문앞에서 형한테 로맨틱하게 고백하는 것이였다. 좋아한다고. 처음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쭉. 형을 만난뒤로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이 멍청이는 교문의 왁자지껄한 풍경을 배경으로 고백을하는, 로맨스 소설같은 상상을 늘 해댔다..) 그런데 가민의 알찬 계휙들이 망할 노란 곰탱이때문에 폭망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한테 고백이든 뭐든 좋아한다고 준비한 말은 해야겠다 싶었던 가민은 우물쭈물하며 입을뗐지만 가민은 전날 종일 상황극까지 하며 연습한 말이 아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 형 나.. ..사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파이팅 해..?"


라는 괴상한 문장과 함께 버퍼링걸린듯 버벅거리는 주먹이 불쑥 튀어나와 어색하게 아자아자 포즈를 만들어냈다. 아 미친.. 거기서 응원을 왜해.. 가민은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맥아리없는 파이팅 대회 라는게 만약에 열리면 가민이 1등을 차지했을것이다. 꽉 쥔 가민의 주먹이 처량하기 짝이없었다. 점프 소년만화도 아니고 이런 추태를 부린 가민은 쪽팔림이 몰려오기시작했다.
아 개망했다.. 라고 가민이 생각하기도 전에,


“그래 고맙다 .” 


형의 입꼬리가 피식, 웃으며 교문을 지나쳐갔다. 


맥아리없는 파이팅에 버벅거리는 어색한 주먹이라니. 민트와 초코가 만난것처럼 최악의 조합이라고 가민은 생각했다. 


가민은 허탈한표정으로 떠나가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교문앞에 털썩 쭈구려앉았다. 이 모든상황을 지켜보던 선생이 재밌다는듯 킥킥대며 "동생?" 이라며 호구조사하듯 말을걸었다. 가민은 굳은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그토록 싫어하던 녹슨 철문 구석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곰탱이 선생이 가민을 응시하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눈썹을 찡그리다가 이내 다른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민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민은 낯가림이 매우매우 심해서 얼굴도 잘 기억나지않는 엄마나 형 말고는 편하게 이야기해본 상대가 없었다. 그게 어느정도냐면 3달째 알바를 하고있는곳에서 다른 알바생들과 말을 트지 못하는 정도였다. 가끔 다른 알바생들이 가민에게 선뜻 말을걸면 가뜩이나 인상이 사나운 가민이 무표정으로 네, 아?, 어. 라는 캔음료뽑듯 나오는 대답만 주구장창 해댔으니.. 말을 걸었던 사람들마다 뒤에서 가민이 싸가지 없다고 평가해댔다. 가민이 트리플A의 소심한 성격일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사실상 더러운인상이 한몫 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가민을 멀리했다. 형만빼고.


가민이 구석에서 멍하니 서있다 갑작스레 왕왕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놀란 고양이처럼 몸을 크게들썩여버려서 누군가 봤다면 우스꽝스러운모습이었을 것이다. "에이씨.." 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1학년 2학년인지.. 어쨌든 학생들이 모여서 [수능 대박기원] 팸플릿을 이리저리 흔들며 장구를 쿵덕쿵덕 치고 있었다. 옆으로 시선을돌리자 초콜릿과 사탕을 수험생들에게 건네는 학생들이 보였고, 걱정스러운 표정인 학부모들, 학생들을 통솔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문제의 확성기가 보였다. 한 학생이 확성기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잡음때문에 잘들리진 않았지만 아마 시험을 응원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쿵덕쿵덕 장구의 소리와 확성기의 째지는 잡음들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소음을 만들어냈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한데 엉켜있어서 도떼기 시장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필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해했다. 가뜩이나 정신없던 곳이 더욱 정신없어졌다.


가민은 철문 구석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있었다. 자기딴에 좀 고급진말로 비유하자면 이 교문은 무질서 속의 조화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며 주절대던 양아치들에게서 듣게된  자투리 지식이였다. 그들도 뜻을 정확하게 모르는것 같아서 가민도 정확한 뜻을 알려하지않았다. 그냥 오 멋진말인데? 라며 언젠가 쓰겠노라 다짐했을 뿐이였다.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가민은 자신이 문학인이 된것마냥 뿌듯해 하고 있었다. 이런 망상도 잠깐동안 이였고, 시끄러운 것이라면 질색하는 가민에게는 저 소리들이 너무 거슬렸다. 가민의 뿌듯한 표정이 거둬지고, 다시 찌뿌둥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빠르게 주머니속의 이어폰을 꺼내들어 귀에 꽂아넣고 패딩 주머니에 두 손을 팍 집어넣었다. 그리고 철문 한쪽에 등을 기댔다. 날씨때문에 차갑게 식은 철문에서 찡한 느낌이 들었다. 패딩을 넘어선 차가운 온도가 가민의 등을 타고 쎄한 기분을 들게 했다. 

보통 사람들은 차가워서 등을 뗐을 텐데, 가민은 그 쎄한 기분이 묘하게 나쁘지않아 등을 떼지않고있었다. 그러곤 형을찾기위해 시선을 교문쪽으로 돌렸다.  

형은 누군가 건네는 간식을 받아들고 뭐가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가민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채로 형이 들고있는것이 뭔지 알아내기위해 눈을 가늘게떴다 .  [로이스 초콜릿] 이었다. '헉' 자기도모르게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가민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기억이 희미한 어렸을 적 가민이 엄마와 공항 면세점에서 처음 만난 로이스 초콜릿은 환상과도 같았다. 가민은 그중에서도 녹차맛을 가장좋아했다. 엄마가 사준 녹차맛 로이스 초콜릿을 안에 들어있는 얇은 포크로 찍어올려 입에 살포시 넣으면 입천장에 초콜릿이 달라붙어 씁쓸하고 텁텁한 느낌과 동시에 사르르 녹는 달달함을 가민은 좋아했다. (변태) 가민이 입에 초콜릿을 가득넣고 우물거릴때 엄마는 늘 싱긋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가민이 품고있는 과거의 유일한 행복 이였다.
지금은 로이스 초콜릿도, 엄마의 손길도 초콜릿이 입속에서 녹아 없어지듯이 모든게 환상인것마냥 사라져 버렸다.

복잡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와중에도 형이 손에 쥐고 있는 얇고 반듯한 초콜릿 박스가 햇빛에 반짝이며 가민의 눈에 아른거렸다. 쩝, 나중에 하나만 달라고 해야지.

형이 가민의 시선을 느꼈는지 뒤돌아서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가민도 초콜릿에게 뿜어대던 뜨거운 시선을 거두고 벌떡일어나 멋쩍게 웃으며 따봉을 날렸다. 형이 또 피식 웃으며 가민에게 시선을 떼고 다시 갈 길을 갔다. 하아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가민은 철문에 철푸덕 기댔다. 다시 기댄 철문은 가민의 체온 때문에 차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여름날에 땀 흘리며 운동한 뒤에 마시는 미적지근한 물처럼 찝찝했다.


형의 웃는 잘생긴  얼굴을 가민은 좋아했다. 형이 웃을때 검은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하얀 양볼에는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뭐든지 다 들어줄것만같은, 보듬어줄것만 같은 표정이라고. 가민은 늘 생각해왔다. 형의 웃는 얼굴은 가민의 유일한 위안이 이였다. 가민이 형이 아무한테나 상냥하게 웃는것을 싫어했던이유가 이것이다. 형의 웃는얼굴을 독차지하고 싶어했다.


 찝찝한 철문때문인지, 형의 웃는얼굴 때문인지, 가민은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어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볼륨을 높이자 바깥소음때문에 잘들리지않던 음들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버즈의 [ 가시 ] 가 이어폰을타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 차라리 앓고 나면 그만인데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은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


가민이 의미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기억이 어떻게 가시처럼 깊게 박히지? 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있을때, 멀리서 보이는 형은 선생님들과 다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수능날 후배에게 비싼 초콜릿을 받을만큼 형은 인기가 많았다. 형은 또래 남자애들보다 얌전하고 성적도좋고 얼굴도 훈훈하고 예쁘장 하니 고등학교 내내 선생님들은 물론 다른 학생들에게도 늘 의도치 않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 분명했을것이다.

형은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등 데이가 붙은 날에 항상 초콜릿이든 사탕이든 쿠키든 간식 더미를 매번 한 아름씩 받아들고 왔다. 형은 달달한 것들을 싫어해서 그것들은 모두 내 차지였다. 먹을 것과 함께 편지봉투들도 많았는데, 형은 편지들조차도 진부하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른사람의 관심을 받는걸 좋아하지않나? 적어도 가민은 그랬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가민은 늘 외로웠을것이다. 남들이 퍼다주는 많은 사랑들을 다 밀어내버리는 형을 가민은 이해할수 없었다.

가민의 시야에서 형의 등이 점점 작아져갔다. “형 끝나고 연락해!” 손으로 간이 확성기를 만들면서까지 불렀건만..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너무 멀어져서 그런지 형은 듣지 못한 것 같다. 형이 아까처럼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길 바랬다. 가민은 형의 멀어져 가는 넓은 등만 바라봤다.


[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아파와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데  ]


멀어지는 형과 동시에 이어폰에서 귀로 흘러오던 노래도 끝나갔다. 핸드폰에 저장된 마지막 곡이였는지 다른 노래가 재생되지않았다. 

비가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제 할일을 다한 이어폰의 적막속으로 타닥타닥 빗소리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구해온 우산을 나눠쓰기 시작했다. 가민도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차가운공기와 빗물 때문에 코끝이 시려웠다. 

11월의 손끝이 어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날 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