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의 시

시를 쓰고 지우기를
여러번,
하얗던 종이엔
검게 그을린
고뇌의 자국들이,
좁은 책상 위의
재떨이에선
비탄의 안개가 피어오른다.

종이에 담기엔 벅찬
이 시는 결국,
글이 없고
화자가 없으며
시가 없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정열이,
만물에 대한
감상이,
그대를 향한
감정이 남아,

그렇기에 쓰이지 않은
종이 위엔
백지장의 시가 쓰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