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편한 데 앉으시죠."
그 말에 검열검열이 책상 오른쪽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소파는 책상의 양쪽에 있었는데, 그들을 부른 검열 교수는 그들의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검열이 방 안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신기한 물건들을 보고 감탄했다.
"그건 그렇고, 교수님께서 세계마법협회 소속이셨다니, 놀랐어요."
"별 말씀을요. 원래 이쪽 사람들은 자기가 여기 소속이라는 걸 잘 밝히지 않아요."
"하긴 그렇네요. 그래서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뭐죠?"
영문도 모르고 협회로 불려온 것에 의문을 품운 검열의 물음이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궤멸된 지라 버스를 타고 왔는데, 5호선 지하철의 흔적을 보니 그 시국에서 즐겼던 3번에 걸친 검열과의 추억이 떠올라 다시 입맛을 다셨던 그였기도 했다.
"이유라... 여러 가지가 있죠. 말하자면 그냥 그 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에요."
검열 교수가 자세를 고치더니 말을 이었다.
"어떤 것부터 말씀드릴까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고 그래요."
나쁜 소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검열이 살짝 꺼림칙했다. 혹시 그 날의 일보다 더 참혹한 일이 일어났진 않았을까 하고 조마조마해했다.
"좋은 소식부터 해주세요."
"그러죠. 음, 일단 복구는 성공적입니다. 다행히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우리나라 서울이랑 달의 나무라이브 시 사회 채널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그곳에 집중적으로 인력과 물자를 투입 중이에요. 그리고 그 과학자 분도 협력해주시고 계셔서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완전히 돌아올 거고요."
"하긴 전투도 몇 번 없었고 3일도 안 돼서 끝이 났으니 당연하겠네요."
검열이 그 소식에 안도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긴장되었던 몸을 풀어 다시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댔다.
"그리고 그 살인체스 팀 말입니다. 그냥 편하게 머루, E, 레드, 코더라고 하죠. 그들은 게임 시스템에 따라 80억을 받았답니다."
검열이 그 말에 눈이 번뜩 띄였다. 프리랜서이지만 사실상 백수인 그가 절대 벌 수 없을 규모의 돈이어서 새삼 부러웠다.
"그보다도 그 살인체스라는 시스템 말이죠. 사람들이 혼란을 느낄 때 발생되는 혼잡 에너지라는 게 있는데, 이걸 추출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몰락 소식을 듣고 도주했다가 체포된 검열 박사에게서 들은 말인데, 이게 쓰기 좋은 게 있고 쓰기 별로 안 좋은 게 있고 한대요."
"근데 그 혼잡 에너지는 어디에 쓰이는 거에요?"
"좋은 질문이네요. 과학자 분께서 만드신 관리자 옵션을 삼 왕국이 갈취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돌릴 동력을 구할 수 없어가지고 지구로 간 그의 딸 검열을 세뇌하고 포섭해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어냈죠. 그리고 그 일부 정보들을 바탕으로 억지로 만든 동력원이 바로 이 혼잡 에너지라는 거죠."
"그럼 살인 체스를 만든 이유가 짝퉁 관리자 옵션을 어떻게든 가동시키기 위함이다, 이런 거에요?"
"예, 바로 그거죠. 컴공과셔서 그러신지 이해가 빠르시네요."
검열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한편 그저 근육이랑 이상성욕으로 뇌가 가득 차있는 검열검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 알아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소식이 뭐가 있냐면, 맞다. 우주 단위로 세계 정세가 개편되었어요."
"예? 어떻게요?"
"그러니까 일단 헬드레이크 왕국이... 아, 당신들은 모르시겠군요. 일단 지도 좀 그려볼게요."
검열 교수가 지구 주변 행성들의 대략적인 국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달에는 삼 왕국과 아륵토니아 왕국과 도시국가인 나무라이브 시가 눈에 띄였다. 금성에는 슬레이어 왕국과 마왕성을 크게 그리고 그 옆에 타르타고스, 아인, 네슬리어니언, 가우디아를 작게 그렸다. '크리에트'라는 행성에는 헬드레이크와 루시아가 크게 그려졌고 나머지는 비중이 없는 지 귀찮은 건지 그리지 않았다.
"이 전쟁은 삼 왕국의 성녀 하이렌이라는 자가 시작했어요. 삼 왕국은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나치와 다름없는 막장 국가였죠. 그들이 금성에 있는 마왕성이랑 지구에 있는 검열을 꼬셔서 세계정복을 도모했고요. 참고로 검열을 포섭한 이유는 마침 적절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 어떻게 되는 데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삼 왕국이 몰락했고, 마왕성도 국가 안팎으로 규탄을 받고 있어요. 안 그래도 슬레이어 측의 공략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가 결정타가 되었죠. 그래서 그들이 몰락하자 그들의 경쟁자였던 국가가 떡상했어요. 달에서는 아륵토니아, 금성에서는 슬레이어가 그곳의 명실상부 초강대국으로 거듭났죠. 그리고 크리에트에서는 헬드레이크가 신임을 얻어..."
"죄송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나중에 따로 정리해주세요."
외계 행성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던 검열으로서는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쓰나미와도 같은 양이었다.
"그럼, 화제를 전환해볼까요."

그 후로 많은 이야기가 흘렀다. 검열된 지문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이한서의 정체에 대해 학계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관계자들의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 등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내일 상을 받을 거에요. 온 우주를 구한 공훈으로 이 정도 답례는 당연하죠. 솔직히 살인 체스 쪽이 받은 80억도 공로에 비해서는 너무 대우가 적긴 하죠."
검열검열이 그 말에 정신이 번뜩했다. 드디어 고생에 대한 보상이 온다는 말에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나쁜 소식이 남아있었다. 명예와 보상에 대한 기쁨과 기대의 여운을 실컷 만끽하고 그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 소식을 들을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그래서 나쁜 소식이라는 게?"
"아, 나쁜 소식이요. 어디부터 말할까... 아, 그래요. 일단 질문으로 시작할게요. 생각해보면 온 우주를 구한 것 치고는 보상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잖아요. 그게 무엇 때문인 것 같습니까?"
검열검열이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뒷공작이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죠?"
"땡, 틀렸습니다. 어차피 모르실 것 같으니까 말해드릴게요. 장의민 기관사 기억 나시죠?"
"예, 기억 나죠."
검열이 무언가 미안한 게 떠올라서 움찔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건가 하고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는 장의민 기관사가 세 번의 축소 중 첫 번째 축소 때만 목격했다고 생각해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가설은 이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그 분이 아직도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세요. 나무라이브 시에서 있었던 마지막 전투에서 크립토 윌 가동을 위해 납치되셨던 게 그의 마지막 위치였는데, 그에게서 혼잡에너지가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를 발견하고 바로 치료에 들어갔는데, 그 어떤 의술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PTSD에 가까운 증상이 나타났고 언어능력 등 대부분의 사고가 마비상태이십니다. 무슨 마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아서 상 드리는 날을 계속 미룬 거죠. 아무래도 모두가 같이 서야 더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이유가 마법에 의한 것이라던가 그런 건가요?"
검열이 자신의 가설을 부정하기 위해 질문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전투에서 이거랑 비슷하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김초은이라는 여고생인데, 전국학생제육력대회 결승전에서 저희 측에서 검열했던 마법을 써서 그 부작용으로 음란한 생각만 할 수 있게 되었죠. 이거는 악마소환술의 부작용이라 원인을 알 수는 있었습니다. 치료법이 없다는 게 확정되긴 했지만요. 그런데 장의민 기관사의 경우에는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이 없는 건지도 딱히 모르겠단 말이죠."
"그러면 혹시 언제 그게 시작되었는지요?"
"저희도 역학조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겨우 역학조사를 끝내고 그 정신 상태가 언제 발발했거나 가중되었는 지 알아내었죠. 최초 시작은 신길역이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종로3가역, 그리고 그 다음은 R-2번 건물 인근의 한 골목길이었죠."
검열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고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 3번의 시점은 전부 그가 축소되었던 때였다. 가슴 깊은 곳부터 수치심과 죄책감이 느껴졌다. 설마 그 3번을 다 목격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검열검열의 팔을 톡톡 쳤다. 그의 입으로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검열도 뭐가 뭔지 파악했는 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알 수 없을 오묘한 표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거 전부 검열이가 작아졌던 때에요."
"아."
검열 교수가 그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단말마를 하고는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상상한 듯 얼굴이 일그러지고 썩어갔다. 일반인들이 버티기 힘든 것을 3번이나 보았으니 정신이 멀쩡할 리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그러면 말이 되네요. 그걸 3번이나 봤으니..."
검열 교수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말을 수차례 늘어뜨리고 더듬었다. 검열은 생각 이상으로 당당해보였지만 검열은 그 자리에서 붉어진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더 흘렀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던 그 고요를 깨뜨린 것은 검열이었다.
"그러면 나쁜 소식은 이게 끝인 거죠?"
"아, 아니에요. 하나 더 있어요. 사실 여기로 부른 가장 큰 이유가 이 이걸 말씀드리려고 한 거에요."
검열이 뭔가 더 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침을 꼴깍 삼켰다. 뭐가 나올 지 몰라 몹시 불안했다. 그러는 한편 서론이 이제야 끝났다는 것에 참 오래도 했다 생각했다.
"검열 아시죠? 그 작아지는 약물을 만들었던 회사요. 거기가 이번에 연루되면서 기업이 아예 공중분해됐어요. 주식이 폭락하고 기업은 해체되고 경영진과 연구원들은 바로 구속되었죠. 파보니까 분식회계니 뭐니 하는 범죄들이 엄청나더라고요."
검열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소식에 얼굴이 펴졌다. 아니, 오히려 화색하기까지 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의 최후가 이보다 더 통쾌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잘 들으세요. 서울 전투 도중에 검열의 건물이랑 연구소가 폭파되었는데..."
검열이 이제 본론이라는 직감에 몸이 다시 경직되었다.
"...그 작아지는 약의 백신을 연구 중이던 모든 자료들이 날아갔습니다."
"안돼!"
검열이 바로 책상을 두 손으로 쾅 짚으며 벌떡 일어섰다. 쌀 때마다 작아져야 하는 그 굴레에서 곧 벗어나겠지 싶었는데 사실상 영원히 못 돌아간다는 통보는 그를 괴롭게 하기 충분했다.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고 턱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바로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예술이었다.
검열 교수가 그걸 보고 유감스러워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격려의 말을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가만히 두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검열철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느꼈던 기쁨들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큰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것보다 검열과 영원히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더 흔연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검열검열을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날렸다. 검열은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 교수에게 울고불고 매달려 간곡히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검열 교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하, 하, 하 하고 연신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