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업도 다 끝났겠다, 기숙사에서 간단히 짐을 싸서 가방을 메고 나왔다. 도서관 앞길을 지나, 인문사회동을 가로질러, 융합빌딩 앞 샛길을 가로지르니 버스 정류장이 늘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남은 시간은 10분.
'음……. 바깥이라 유튜브는 안 되고, 음악이나 들어 볼까.'
무작위 재생을 눌러 아무 음악이나 들으면서 동문 앞 도로를 쌩쌩 지나가는 차를 보는 게 지겨워지던 무렵, 파란색 도장을 한 버스가 왔다. 조용히 남색 카드지갑을 꺼내 펼쳐 한 쪽 날개를 단말기에 갖다 댄다. 지갑을 펼치지 않으면 그 짜증나는 '카드를 한 장만 대 주세요'라는 말을 또 들어야 할 테니까.

 이번 정류장은 구성삼거리…… 대전지방기상청…… 금강유역환경청…… 국립중앙과학관…… 서구보건소…… (이 때쯤 슬슬 내릴 타이밍을 보기 시작했다.) 선사유적지…… (이미 자리에서 일어섰다.) 통계센터……. (하차 태그를 해 놓고, 열린 문 사이로 가뿐하게 뛰어내린다. 저상버스라 안 아프다.)

 버스에서 내리자 보인 건 커튼 월 양식의 고층 빌딩들과, 대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이마트 폴사인이었다. (이마트만 빼면) '업무지구'라고 불리는 곳의 흔한 풍경인 것이다. 도로는 널찍하고, 차는 (여기서도) 쌩쌩 달린다. 신호를 받는 데 오래 걸렸지만, 초록불은 언젠간 켜지기 마련이었고, 길을 건너 '정부청사 3'이라고 세로로 쓰여 있는 폴사인 옆에 있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으, 다리 아파.)

 계단을 계속 걸어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3-1'이라 쓰인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었다. 적당히 자리가 날 것 같은 1호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냥 기다렸다. 개찰구 쪽에 걸려 있는 TV엔 '판암행 6분 후 도착'이라 쓰여 있는데 믿어도 되겠지. 지루함에 지쳐 스크린도어에 붙은 각종 광고들을 보다, 열차가 바람소리 비슷한 구동음을 내며 들어왔고, 나는 플랫폼에서 열차 바닥으로 건너갔다.

 문이 닫히고 조금 뒤.
"튀김소보로~ 얼큰이칼국수~ 대전, 대전에서 만·나·요~…… 이번 역은 시청, 시청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역시 '시청'역이라 그런지 홍보 노래가 자주 나온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전의 찬가'가 나왔는데 이번에 '대전 방문의 해'라고 새로 노래를 만들어서 틀고 있다. 솔직히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대전은 얼마나 내세울 게 없길래 '특정 빵집'의 메뉴를 특산품으로 들고 온단 말인가……. (물론 그 '특정 빵집'이 엄청 유명하긴 하다. 엄청.)

 그 뒤로는 딱히 노래는 안 나왔고, 대신 "대전의 대표 한방병원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으로 가실 분들께서는……" "척추디스크를 수술 없이 치료하는 자생한병원으로 가실 분들께서는……" "더 정밀하게, 더 안전하게! 여러분과 함께하는 충남대학교병원으로 가실 분들께서는……" "귀금속……" 식으로, 상당히 낯간지러운 광고가 많이 나왔다. 운영수입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니 뭐 이해는 간다만.

 그러다 뭔가 다른 노래가 나왔다. 애시당초 소리라는 것을 글로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가 들어도 흘러간 시대의 노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노래. 위키에는 이 노래 제목이 '대전 부루스'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나오는 안내 방송:
"이번 역은 대전역, 대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BRT나 철도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이번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대전 지하철에서 승객이 가장 많은 역은 단연 대전역이다. 물론 대부분은 철도공사 열차를 타려고 내린다. 그 덕에, 판암역으로 가는 열차는 대동·신흥·판암역에선 매우 한적하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대전역에서 내려야 했기에 그 한적함을 누릴 수 없었다.

 전동차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빠져나온 관계로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으로 꽉 찼고, 에스컬레이터에 사람 빠지기를 기다리는 게 지겨워서 나처럼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난히 깊은 역을 계단을 올라가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버틴 끝에 4번 출구로 나와 내가 본 것은, 평소처럼 푸른 유리로 된 건물이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웬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면서 공양을 받고 있었고(스님, 죄송합니다만, 목탁 소리가 너무나 청아합니다.) 선상통로로 바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는 누군가 예수님을 믿으라며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랬다. 오늘도 어김없이, 대전역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바로 타고 올라가려다, 다른 생각이 있어 몇 걸음 옆에 있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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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화 후기:
처음 써 보는 글이라 미흡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_ _)
이 글은 제가 집에 가는 과정에 나름대로 살을 덧붙이고 시간대를 섞어(?) 소설처럼 쓴 글입니다. 지금 대전역에 도착한 만큼, 집으로 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