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느낌은 퍽 유쾌하지는 않다. 화이자 사의 졸로푸트정 100mg 두 알, 그것이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가로 13.3mm, 세로 5.4mm의 흰색 장방형 필름코팅정이다. “설트랄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그 알약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다른 말로 항우울제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 약을 먹어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위장에서 녹은 알약이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 기분을 조금은 나아지게 한다는 안도감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설트랄린과 나의 인연은 아마 4년 전부터였을 것이다. 오토 바이닝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천재가 아니면 죽음을!”


나는 천재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어쩌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나를 즉시 가까운 신경정신과로 데려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늙고 머리가 벗겨진 의사가 나를 맞이했다. 네모난 안경을 쓴 채로 나를 바라보는 의사 뒤에는 아프리카의 아이를 후원한다는 증서와 교회에서 보내준 카드가 있었다. 아마, 하나님이 구원이라도 해주리라 믿나 보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믿기엔 심신이 이미 지쳐버렸다.


“희성 씨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목 매달려다 들켜서 친한 형이 끌고 왔어요.”


정적이 흘렀다. 의사는 수기로 차트에다 무어라 적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된 방식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컴퓨터로 다 하는 시대인데, 귀찮지도 않나 보다. 의사는 볼펜으로 무언가를 적은 후 내게 물었다.


“왜 자살을 하려고 했나요?”


“그러게요.”


부러 이런 대답을 한 것은 아니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체로 우울에는 이유가 있다 하던가. 실연, 사업 실패 등등. 나는 딱히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통 부정적이고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것을 뭐로 설명할지 모르겠다.


“딱히 이유가 없나요?”


“모르겠어요.”


그렇게 한참 동안 의사는 애써 친절하게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의도치 않은 내 냉소적인 태도는 이 상담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했다. 의사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듣더니 대충 진단을 마쳤다는 듯이 항우울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얘기했다. 아마 3주 정도는 복용해야 효과를 볼 거라 했다. 그러면서 약은 단 일주일 치밖에 주지 않는 것은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으나,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설트랄린을 먹었으나, 기분이 나아지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냥 그러리라 믿는 것에 가까웠다.


의사가 약속한 3주가량이 지나니 아마 죽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은 준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멍했다. 약을 먹으면 멍하다. 우울하다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놔서 그런가,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고 심심하다, 무료하다는 감정만이 남아 멍하게 어딘가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푸른 하늘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 여름날 뜨거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별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며 감상에 젖지라도 않으면 이 무료함을 떨쳐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날 탄식하게 했다.


그래서, 4년이 지난 지금은 나아졌는가?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일상생활을 조금이나마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차이점이었다. 그러나 그 일상생활이 무료와 권태로 차있다면 별다른 의미가 있겠는가? 나와 설트랄린은 공포로 이어져 있다. 이 약을 의사의 허가―그가 뭐라고 내게 이런 권위를 갖는단 말인가―가 없이 끊으면 어딘가가 잘못될 것이라는 경고는 나로 하여금 이 약을 강제로나마 먹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어차피 살 생각은 없었고, 강제로 살게 된 삶이라 그럴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이건 아니다. 막스 슈티르너는 말했다, 이 세상엔 오직 나(Ego)만이 존재하고, 그 외의 것은 적극적인 반란행위로 소멸되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 설트랄린을 향한 적극적인 반란행위를 선포한다. 이 작은 알약 때문에 제약된 내 자아를 되찾고, 그것의 결과가 삶이든, 죽음이든 받아들이겠다. 어떤 반란을 시작해볼까 고민해보다가 든 생각은 음주였다.


간만에 전화기를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곱창에 소주나 한잔하자.”


“니가 무슨 일이냐?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대던 애가.”


“그냥, 생각이 나서. 내가 서울로 갈게.”


친구를 만나러 옷을 차려입는 중에, 나는 주머니에 조금이나마 두 알을 챙겼다. 약을 거부하는 것만이 반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의사는 내게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술을 끊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술을 얼마만큼 드신다고요?”


“저녁에 맥주 한 캔 정도 먹죠. 가끔 친구랑 소주도 마시러 가고.”


“술 드시고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그냥 별거 없어요. 자거나, 노래 부르거나.”


“저번에 같이 오신 지인 분이 말씀하시기에는 술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신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그러셨다는데요?”


“그런가요? 그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알겠습니다. 당분간 술은 드시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지금 약이랑도 안 맞고요.”


“네.”


그렇게 4년가량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나는 이 설트랄린을 단순히 먹지 않는 회피를 넘어 의사가 설정한 금기, 그것을 깨부수는 것으로 설트랄린을 이겨낼 것이다. 서울의 밤거리는 추적추적하다. 현란한 밤거리를 거닐다 보면, 아!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나 싶었다. 이유는 몰라도, 이곳에만 있으면 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그저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려나, 아니면 설트랄린에 대한 반항심이 나를 이겨낼 수 있게 하려나, 여러 가지 상념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곱창집에 도착했다. 나는 술잔에 소주를 따라놓고, 설트랄린의 캡슐을 열어, 가루를 탈탈 털어 술에 녹인 후 들이켰다. 약의 쓴맛 때문인지 평소보다 술이 더 썼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움켜쥐는 듯한 두통이 찾아왔으나, 좀 기다리니 잠잠해졌다. 술을 몇 잔 더 마시니까 친구가 왔다.


“뭐야, 먼저 마시고 있었냐? 안주도 없이?”


“어.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


“야야, 한 잔 따라줄게.”


그렇게 나랑 친구는 평소보다 조금 무리해서 마셨다. 둘이서 소주를 한 7병 정도로 마셨다. 나는 마시는 속도가 빨랐고 친구는 느렸으니 아마 나 4병, 친구 3병을 마신 듯했다. 만취하니 기분이 좋을 줄만 알았다. 정작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불행하다. 정확히 말하면 가게를 나오고,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설트랄린이 아니라 메스암페타민을 술잔에 탔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돌아올 때였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전철에 기대어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할 수는 있었으나, 생각하는 것은 나를 더더욱 불행하게 하므로 억지로 내 생각을 눌렀다. 문에 몸을 기대다 보니 가끔 승강장 너머로 빠질 뻔했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짐칸에 실린 짐짝처럼 실려나가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1호선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서울에 더 남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지, 취기를 이겨내지 못한 탓인지 서울역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대합실의 롯데리아, 카페, 빵집,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안 타는 노선의 승강장을 구경했다가, 이유 없이 KTX 승강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요즘 표 검사를 하긴 했던가? 벌금을 내더라도 아무 KTX나 타고 훌쩍 떠나버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KTX 승강장에 도달하니, 나는 하나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웬만한 열차 승강장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KTX 승강장에는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이대로 몸을 확 던져버릴지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본능이었다. 마침 KTX가 5분 뒤 들어온다고 전광판에 쓰여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뛰어내리자. 저 멀리서 기차가 하얀빛을 비추며 다가올 때, 한 마리의 새가 날 듯 뛰어내리자.


그렇게 멍하게 기차가 들어오는 곳만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좀 지나니 기차가 빛을 뿜으며 오고 있었다. 나는 냅다 몸을 날렸다. 가볍게 몸이 바닥을 향해 고꾸라지던 느낌도 잠시, 내 옷을 누가 거칠게 잡으며 뒤로 당겼다. 나는 그만 넘어졌다. 그 후 고함이 들렸다.


“학생! 어휴, 술 냄새…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학생 방금 죽을 뻔했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내가 내린 결정이, 설트랄린을 이겨내고 내린 결정이, 저 오지랖 넓은 중년의 참견 때문에 깨졌다. 나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을 맞고 쓰러진 남성의 얼굴을 향해 한 대, 두 대, 세 대…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나의 행위는 주변 행인의 신고로 인해 출동한 역무원이 나를 잡아끌며 제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경찰서로 끌려가 유치장에 들어갔다. 아마 술이 깨면 취조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겉옷을 벗어서 대충 접은 뒤 베개 삼아 누웠다. 우울감과 무력감 때문에 밀려오는 피로와 취기 때문에 나는 금방 잠들어버렸다.


“…성 씨, …희성 씨, 최희성 씨!”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켜 형사 앞에 가서 앉았다. 이름, 직업 등 간단한 것을 물어보고 난 후 본격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왜 사람을 폭행했느냐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몰랐다. 설트랄린과 내 인연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서론은 다 잘라내고 그냥 자살 기도를 방해한 것에 욱해서 그랬다고 해야 할까. 아마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 또 정신질환자의 흔한 난동으로 취급할 테니 간단히 설명했다.


“전 그날 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막아서서 술김에 그랬어요.”


“젊은 분이 왜 벌써부터 그러셨어요. 다행히도 피해자분이 훈방조치 해주길 원하신다 하셔서 그냥 훈방조치 해드리겠지만, 다음부터 술 적당히 드세요.”


“네.”


경찰서를 나오는 길에 생각했다. 술을 마시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설트랄린과 불편한 동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저번의 실패는 내가 취해서일 수도 있었다. 집에 들어간 나는 남아있는 설트랄린을 모두 변기에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며칠이 지나있었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몸을 겨우 일으키니 눈앞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의 이상함을 느꼈다. 우울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정서적 불안정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소리가 들릴리는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기괴한 소리, 마치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내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로 옷을 차려입고 거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렀을 수도 있겠다. 내 몸도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주변에선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겠지만, 그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 같으니 그저 말을 마치겠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 보니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동네의 공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눈앞이 흔들리면서 머리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는 고통의 단말마를 내뱉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깨어난 곳은 어느 대형병원의 응급실이었다. 깨어나자 젊은 의사 한 명이 와서 내게 물었다.


“혹시, 항우울제나 그런 거 복용하세요?”


“네. 졸로푸트요.”


“네, 아무리 봐도 증상이 항우울제 금단 증후군 같아서요. 자주 다니는 병원이 어디세요?”


“XX 신경정신과요.”


그 후 의사는 내가 다니던 병원에 연락하더니 내가 평소 복용하던 약을 처방하더니만, 절대 복용을 중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음에도 이런 증상을 보이신다면 병동에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설트랄린을 이겨내는 데 실패한 것인가?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설트랄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보면, 설트랄린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게 그렇게까지 좋은 일인지 또한 의문이었다. 내가 설트랄린과 함께한 것도 주체 못할 우울감 때문이고, 그것이 이번 사건에도 사고를 친 원인이었다. 어쩌면 설트랄린과 함께하는 무기력한 일상은 내게 일상을 주는 대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따윈 거부할 수도 있었다. 사실 차라리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 또한 내게 자유를 주지는 못하리라. 죽음도 쉽지 않은 세상 속에, 나는 어쩔 수 없이라도 살아야 했다. 그러니, 그 대가로 무기력한 삶 정도는 내가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가로 13.3mm, 세로 5.4mm의 흰색 장방형 필름코팅정 두 알을 삼키며 나는 홀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너와는 평생 함께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