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샤프와 볼펜

그리고 두꺼운 책들로 베를린 장벽을 쌓아

독서실 한 공간의 요새를 만든 나


오늘 공부할 것은 문학

문학 지문들이 뭉친 벽돌을 꺼내

작은 창을 들어 백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책을 창 끝으로 유린하나 

머리도 창 끝에게 유린당해

나의 문학이 무참히 무너진다


오늘 공부할 것은 독서

사람의 사고부터 의학적 기술 경제학 이론 등

백과사전처럼 사방팔방의 지식을 담은 벽돌을

베를린 장벽에서 꺼내 다시 창 끝으로 유린한다

창 끝에서 새어 나오는 피가

흑백의 화면에 스며들면서

나의 두뇌를 혼란스럽게 하고

나의 문학을 포위해 공격한다


오늘 공부할 것은 영어

국경이 있지만 없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애증이 담긴 존재를 처리하기 위해

장벽에서 다시 벽돌을 꺼내 창을 든다

방금 전 독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국적인 문장이 창 끝의 피로 무참히 유린 당하면서

나의 이성이 만든 진영을 붕괴시키고

나의 문학의 세계를 억압한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이 다되어서 장벽을 가방에 담아

터덜터덜 집으로 가다가 강물에 비친 조각배를 바라보며

나의 근심도 발트해로 흘러 보내달라 빌다가

강물에 비친 모습을 보니 

창 끝에서 나온 피와 같은 색의 물질이

내 얼굴을 뒤덮어

하나의 야차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