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좋아하세요? 


길을 가다 어떤 소녀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해봅시다. 당신은 뭐라고 답하실건가요? 아니, 대답 안하셔도 되요. 대부분 "글쎄..." 아니면 "겨울비? 눈 말하는거니?" 라고 대답하시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겨울비란 아마 '그런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무언가', 아니면 '겨울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일 거에요. 한없이 무존재에 수렴해가는 이질적인 그 무언가. 오늘은 겨울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파리 19구역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지만 하루하루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내일 먹을 빵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와 같은 그런 고민이요. 겨울비의 어머니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요. 아, 물론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하녀였어요. 중심가에 있는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19구역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귀족가에 들어갔냐고요? 예뻤거든요. 그 거리 남자 애들이라면 모두 고백은 한 번쯤 해봤을 정도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금화 10개를 주고 팔아넘겼어요. 비극의 시작이었죠. 뒷배도 없이 귀족가에 팔려나간-그리고 그 귀족이 프랑스 전역에 악명이 높은 말종이라면-소녀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몸과 마음이 찢긴 소녀, 아니 여인는 그렇게 다시 19구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어요. 혼자는 아니었어요. 귀족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아이가 태어나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기절했어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자신을 갈가리 찢은 그자의 저주스러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죄가 없음을 그녀라고 왜 몰랐겠어요. 하지만 증오와 연민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아이를 어느 집 앞에 두고 영영 떠나버리게 되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어요.




그렇게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어머니의 온기를 느껴보지 못한 아이는 세상에 툭 던져졌어요. '겨울비'라고 불리면서요. 이야기 속의 계모들이 늘 그러듯 겨울비는 어려서부터 각종 허드렛일에 시달려야 했어요. 빌어먹을 겨울비. 그녀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였죠.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녀의 계모는 언제나 욕을 했어요. 


"빌어먹을 겨울비. 괜히 와서는 손님만 줄게 하고 말이야."


그게 하늘에서 내리는 겨울비인지, 혹은 자신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어요. 둘 모두 자신에게 좋은 뜻은 아니었으니까. 손님이 없으면 손님이 없다고 맞을 것이고, 많으면 일이 칠칠치 못하다고 맞을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에게는 희망이 있었어요. 언젠가 자신을 구하러 마법사가 와 줄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물론 누군가 그녀에게 말해준 것은 아니었어요. 계모가 그녀의 딸 엘르에게 해 준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던 거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소녀는 추운 겨울날 쫓겨나게 돼요. 종종 있었던 일이었어요. 어디 청소가 덜 되었다던가, 먼지가 많다거나, 설거지가 안되었다거나.... 이유야 어쨌든 한겨울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아이를 쫓아내는 건 제정신은 아니었죠. 거리를 떠돌던 소녀는 어느 가게 앞에 쭈그려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비가 한 두방울 떨어지자 추위에 떨던 아이는 머리에 쓴 천으로 손과 발을 감쌌어요. 머리카락이 비에 젖는걸 걱정하기 전에 당장 손과 발에 얼어붙을 것 같았거든요. 


툭. 툭. 떨어지던 빗방울이 느껴지지 않자, 소녀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위를 보았어요. 더러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로브를 입고 우스꽝스럽게 거대한 나무 지팡이를 가진 남자가 있었죠. 


"누구세요?"


소녀가 물었어요.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로브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죠-답했어요.


"네가 기다려온 사람. 다른 사람들은 마법사라고 한다더구나."


"정말요?"


소녀가 말했어요. 그럼. 마법사가 한 대답을 듣지 못했는지 어떠한 답도 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던 소녀는 다시 마법사에게 물었어요.


"그럼 겨울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왜 묻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소녀는 대답했죠.


"제가 만난 그 누구도 겨울비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애... 애매한 존재? 빌어먹을 것?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좋은 뜻은 아닐 것 같았거든요."


마법사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어요.


"아름답다고 생각한단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녀가 다시 물었어요.


"정말요? 눈이 아니라?"


마법사가 웃으며 답했죠.


"의심이 많은 아이구나. 정말로 나는 겨울비를 더 좋아한단다. 아름답고 또 배려가 많은 아이가 겨울비이기 때문이지. 한 번 보련?"


마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두드렸어요. 그러자 내리던 비가 그대로 멈추었어요. 수많은 빗방울 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가스등 불빛을 받아 색색이 빛났어요. 겨울의 이른 저녁에 내린 빗방울은 마치 보석처럼 온 세상을 밝히고 있었어요.


"보았니? 겨울비는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란다. 또..."


그는 자신이 입고있던 로브를 겨울비에게 둘러주며 말했어요.


"배려없는 눈과는 다르게 겨울비는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예쁜 아이란다. 한 번 오면 온 땅을 덮어 만물을 숨쉬기 힘들게 만드는 눈과는 달리 겨울비는 땅 위에 있는 것들을 기꺼이 안아주잖니.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겨울비를 싫어해본 적이 없어."


마법사는 소녀의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어요.


"그러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너를 위해 저 하늘 구름 위에 성을 지어주마."


마법사가 손을 뻗었어요. 겨울비가 손을 잡았죠. 겨울비가 빛나고 있는 뒤로 두 사람이 걸어갔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겨울비의 이야기입니다. 그 뒤 이야기는 어떻게 되냐고요? 그야 저도 모르죠. 나중에 어디 기차역에서 9와 3/4 정류장을 찾아가든 뭐 이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든 뭐든... 아무튼 혹시라도 나중에 한 여자아이가 


"겨울비,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부디 웃으면서 답해주세요.


"그럼. 어리석은 누군가는 눈이랑 헷갈리곤 한다만, 나는 예쁘고 착한 겨울비를 좋아해."


라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