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집으로 되돌아 온 후 조부모님 두 분만 남겨진 집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지.






서울의 시간은 전국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흐른다. 어제 찾아갔던 곳이 오늘 보면 또 낮선 도시. 그렇기에 어느 것에도 익숙해질 수 없는 서울 사람들은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없어 늘 붕 뜬 기분으로 살아간다.


나는 그런 삶에 지치면 봉은사를 찾는다.

밤에 봉은사 대불 앞에 앉아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에 파묻혀서 요란하게 찬란하고 웅장한 코엑스 건물과 자동차들이 시원스럽게 달리는 봉은사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와 시간이 단절된 느낌이 든다.


그런 서울 사람들이 잠시라도 마음 붙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놓으려고 한듯 서울에도 다른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무언가에 둘러싸여 교통이 닿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 그런 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마련이다. 90년대에 태어난 나지만, 나의 외가가 사근동에 있었기에 나는 할머니의 30대를, 엄마의 유년을, 뭇 어른들이 그리워하는 70년대와 80년대를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었다.


사근동은 서울 외곽에 있는 그린벨트 같은 지역이 아니다. 서울에서 번화한 곳이라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왕십리역과 한양대 바로 뒤쪽에 있는 등잔 밑 같은 작은 동네다. 한양대 캠퍼스와 야산에 가로막혀 개발의 광풍도 사근동을 비껴갔다. 완전히 갈아엎은 적이 없어 사근동은 1950년대부터 여러 시대가 무지개떡마냥 켜켜이 싸여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을 가득 싣고 한양여고를 지나 500년 전 남이 장군이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사근고개를 넘나들던 노란 도색의 77-2번 버스는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번호도 2220번으로 새로 바꿔 달았고, 노인들만 싣고 다니는 노선이 되어버렸다.


동네는 변하지 않았어도 사람은 많이도 늙었다. 골목골목 넘쳐났던 아이들은 모두 고개 너머 바깥 세상으로 나가버리고 늙어버린 사람들만 남았다. 사람이 늙으니 동네도 늙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벽화가 그려진 아파트 옹벽에 기대놓은 어느 낡은 짐바리 자전거 위로 낙엽만이 쌓이고 있다.


"멍이야."

"어, 이걸 못 봤구나. 참."


왕십리역에서 고개 넘어 들어오는 이 2차선 도로는 약 20여년 전 새로 난 뚝방길을 제외하고서는 동네에서 가장 큰 길이다. 청계천 쪽을 바라보고 두 동짜리 아파트단지 정문 앞에서 좌회전을 해서 오른쪽에 아파트 옹벽을 끼고 한 삼십보 들어오면 나오는 골목길 삼거리에는 낙엽 쌓인 자전거가 아파트 옹벽에 기대고 있고, 그 앞으로 40년 간 그 자리에서 동네의 중심을 지켜온 쌀가게 하나가 있다.


풀칼라로 보고 있는 풍경이 흑백 아날로그 화면처럼 느껴진다. 1980년대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 가게에 걸린 달력은 위화감 넘치게 2019년 11월을 가리키고 있다. 미래에서 온 달력이 덩그러니 걸려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쌀가게였지만 근처 왕십리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오고 나서는 손님이 매해 줄더니 그래도 대형마트 가지 않고 매일 같이 이 쌀가게를 찾아오던 늙은 손님들마저 하나 둘 노환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파리 날리게 된지는 10년이 되었다. 저기 쌓여있는 쌀포대들, 언제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다.


천장까지 쌓아올린 쌀포대들 안쪽으로 골방 하나가 있다. 아는 동네 사람이 이 가게 앞으로 지나갈까 아는 척하고 인사라도 하려는 마음에 날도 추운데 골방 문을 활짝 열고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다.


"아이 최 사장님! 날두 추운데 왜 그 문을 그래 활짝 열고 있어요! 문 닫고 난방 따시게 틀어놓구 계시지!"

"문 닫고 있으면 답답해기만 하지 뭘. 영규 엄마는 어딜 가요?"

"잠깐 동회에 볼 일 있어서 올라가요. 이 회장님은 집에 계셔요?"

"몰라. 나갔는지 집에 있는지."


결혼하고 53년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노부부는 서로에게 무심하다. 이 가을이 지나면 여든셋이 되니 이제 가게 문 닫고 집에서 쉴 때도 되었으련만 할아버지가 아직까지도 자전거 타고 직접 쌀 배달하면서 여태 가게를 지키는 이유는 두 사람이 집에 하루죙일 같이 있으면 서로 쳐다보면서 복장 터질 일만 남겠구나 하는 부부 공통의 생각 때문이었다.


뭐 꼭 그런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53년 동안 같이 살아오긴 했지만 아직 별로 친하지 않은 부인보다는 쌀가게를 사랑방 삼아 동네에서 삼사십년 알고 지내온 친구들과 노는 게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좋았던 것이다. 그 덕에 집은 할머니가 자기 친구들을 불러모으는 할머니의 사랑방이 되었고.


사실 지금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는 다른 할아버지는 아주 순수한 의도로 할아버지와 친구를 하는 건 아니다. 할아버지가 팔십을 넘기셨다 보니 이제 몇 년 안으로 장사를 접고 지금 쌀가게 있는 자리를 비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장사를 접으면 쌀가게 자리를 자기한테 양도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 거의 매일 찾아와 할아버지와 놀아주는 것이었다. 물론 할아버지도 알고는 계시지만 그냥 알면서도 놀 친구가 없으니까 같이 노시는 거고.


문제는 그 쌀가게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그 사람 뿐이 아니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알면서도 반갑게 여기고 같이 노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그 사람들과 노시는 걸 매우 못마땅해 하여 그동안은 할아버지 전용 사랑방이다 생각하고 건들지도 않았지만 1년 전부터는 '가게에서 매출도 안 나오고 전기세 통지서만 날아오니까 그만 접자'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


"야 지금 몇 시냐?"

"지금 4시. 왜?"

"경로당에 지금 다 모여 있겠다."

"에? 나도 가."

"너는 나 갔다 올 동안 가게 좀 지켜."


같이 장기 두던 수호 아버지는 가게 봐주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아도 이것도 할아버지 인심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봐주겠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 경로당 가고 나면 골방에 누워서 잠 자기 바쁠테지만.








"수호 아버지! 수호 아버지!"

날카로운 음성이 수호 아버지의 귓속으로 꽂힌다.


"에?"

"에는 무슨. 우리 연희 아버지 어디 갔어?"

철모머리의 여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수호 아버지에게 따져 묻는다. 산책 나온 쌀집 사장의 부인인 할머니가 우연히 쌀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혼자 골방을 차지하고 누운 수호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응. 배달 갔지 뭐."

"배!달 같은 소리 하네! 어디 배달 가는데 배달 자전거도 놓고 가! 그 이 또 수호 아버지한테 가게 맡기고 경로당에 갔지?"

"하하하 아니 형님도 참... 자전거를 두고 경로당을 가면 아주머니 올 때 내가 뭐라고 변명을 해주냐고. 경로당 갈 때 자전거도 가져가야 내가 감쪽같이 뭘 덮어주든가 어쩌든가 하지 허허."

"이 인간이 또 가게 비우고 경로당엘 갔어! 내가 미쳐."


가뜩이나 전기세만 나와서 가게 없애고 싶은 것을 할아버지가 놔두고 싶어해서 없애지 않고 있는데 그 가게를 비우고 경로당에 갔다니. 할머니로서는 괘씸하기 그지 없다.


"수호 아버지! 연희 아버지한테 전화해봐! 또 경로당에서 그 한량들이랑 술이나 퍼 마시고 있겠지."

수호 아버지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건다.


뚜루루루루ー 뚜루루루루ー


"왜. 가게에 뭔 일 있어?"

"뭔 일 있지. 아주 큰 일 났지."

"뭔 일?"

"지금 이 회장님 오셨어. 형님은 경로당 갈 거면 자전거나 가지고 가지. 왜 그냥 갔어. 허허허. 들켰어, 들켰어."


"당장 오라고 그래!"

옆에 있던 할머니가 소리 친다.


"들었지? 지금 당장 오라시네."


전화를 끊은 수호 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으며 할머니에게 금방 오겠다는 할아버지의 익숙한 거짓말을 전한다.


회광반조 2장 이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