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 1장 보러가기


"형님 금방 오겠다고는 하는데, 금방 오겠어요? 아주머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골목 들어오다가 가게에 아주머니 앉아있는 거 보고 뒤돌아서 도망치겠네. 허허허. 그냥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날도 추운데 여기서 기다리지 마시고."


할머니는 수호 아버지의 설득에 겨우 집으로 향한다.








"저녁 때 다 됐는데 왜 아직 안 와!"

"지금 가."

8시 넘기 무섭게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귀가를 재촉한다.


딱ー


전기밥솥은 커녕 코끼리밥솥도 없이 아직도 한결같이 압력밥솥으로 밥을 한다. 아마도 맨 밑에 눌어붙는 누룽지를 좋아하시는 탓에 그럴 것이다.


삑-삑-삑-삑-


분을 삭이려 한숨만 푹푹 내쉬며 냄비만 바라보는 할머니였지만 할아버지가 비밀번호를 들어오는 소리에 현관 쪽으로 나간다.


"경로당이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어! 가뜩이나 돈 없는데 가게는 왜 차지하고 앉았어!"


할머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애써 8시 뉴스에 집중하려고 한다.


"누가 또 오라고 꼬드겼어? 신순갑이 놈이 그랬어? 누구야?"

"신순갑은 오늘 나오지도 않았어ー."

"아니 어디 놀러 다니는 거 좋아. 그런데 그 인간들 맨날 당신 뜯어먹으려고 부르는 거 몰라? 맨날 술 사라, 밥 사라, 팔십 먹은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순 나쁜 놈들이 말이야."


치이익ー


김치찌개 국물 넘치는 소리에 할머니가 급히 부엌으로 달려간다. 김치찌개 덕분에 둘 사이의 말다툼, 아니 할머니의 일방적인 잔소리가 끝났다.






방 안에 누워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그 가게 덕분에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다 시켰는데 언제 가게가 그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을까하는 생각에 할머니는 안타깝다.








"지난 16일부터 시작된 부산에서의 소요사태는 벌써 3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만, 아직까지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17일 오전 부산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으나 상황이 가라앉지 않고 폭동은 더욱 거세져 파출소 21개소와 차량 12대가 파괴되었습니다. 정부는 오늘 오전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얘들아 7시다! 일어나!"


명자의 입에서는 한숨만 나온다. 뉴스에서 나오는 부마항쟁 소식 때문에는 아니었다.


"여보, 오늘은 답십리에 일자리 맡아놨으니까 가봐요."


남편은 석유파동으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근무하던 방직회사에서 잘리게 되었고, 명자가 잘 아는 동네 유지에게 사정사정해서 공사장 감독관 같은 남편이 일할 일용직 자리를 받아온다.


"연희 아버지.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요. 애들은 계속 커가는데... 에휴..."

"여보. 나도 장사를 한 번 해볼까?"

"우리가 무슨 밑천이 있어서 장사를 시작해요."


남편 역시 등교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만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편은 출근, 아이들은 등교하고 자신은 남편의 일감을 알아보기 위해서 또 다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갑을 열어보고 돈을 세어본 후 다시 닫고 눈을 감는다.


"다시 열었을 때 천원 한 장이라도 더 있었으면..."


어림도 없지.


동네 유지인 구 사장네 집으로 올라간다. 구 사장의 모친은 명자에게는 먼 친척고모 뻘이 되시는 분으로, 이 인연 덕분에 그나마 일용직은 받아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있다.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살펴가요."


장을 보려고 구 사장의 집을 나서 고개 너머 동네 바깥으로 나간다. 버스비 아까우니 오늘은 그냥 걷자.


"응?"

옆으로 인기척이 느껴지기 무섭게 누군가 주머니에서 명자의 지갑을 빼낸다.


큰 딸 연희보다 키가 좀 더 컸다.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스쳐 지나가듯 명자의 지갑을 빼내어 달아난다.


"얘! 얘!"


오늘 왜 이 모양인 거야. 아니, 내 인생은 왜 계속 이 모양인 거야.


충청도에서 만석꾼은 아니어도 천석꾼인 아버지의 맏딸로 자라난 명자였다. 오빠들 말로는 일제 말엽에 좀 굶었다지만 해방된 것이 세 살 때의 일이니 어차피 그 전은 기억도 안 나고, 6.25 때 좀 굶은 것 빼고는 쌀을 가마니로 쌓아두고 먹던 집에서 자랐다. 서울에 산다는 남자가 혼처로 들어왔길래 주저 없이 선택했다. 이야기 들어보니 시부모님도 안 계시고 큰 시누도 이미 혼인해서 나갔다고 하니 시집살이는 없겠다 싶었다. 결혼 당일 처음 얼굴 보고 결혼하고 남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처음 와보는 서울, 여기가 서울이구나... 남산에서 서울을 내려다 볼 적만 해도 얼마나 기뻤던지. 남편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니까 밑에 딸린 동생이 3명이었다. 그래도 동생들도 아주 어리지는 않아서 봉급은 알아서 벌어왔고, 밥만 잘 해주면 되겠구나. 남편은 말수는 적었어도 착해서 좋았다.


이제는 남편의 모든 면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착한 게 아니라 우둔해 보였고,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이 때부터 할머니의 갈굼은 근 40년을 이어진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봉급은 적었어도 그래도 알뜰살뜰 아껴서 잘 살았는데... 이렇게 최악인 시기가 또 있을까? 또 어디 가서 외상을 할까.


고갯길 중간에서 서러운 마음에 대성통곡을 했다.


"연희 아니냐?"


옛 동네의 아줌마들이 무릇 그렇듯 본인 이름보다는 큰 딸 이름으로 불리거나 딸 없으면 큰 아들 이름으로 불렸다. 연희 엄마라고 안 부르는 걸 봐서는 나랑 꽤 가까운 사람이 날 부른 것 같은데... 고갯길에서 엉엉 우는 꼴이나 보이다니. 그냥 뒤돌아서 도망 갈까? 그게 더 이상한가?


고개를 들어 보니 구 사장의 모친이었다.


"당고모님..."

친척고모뻘이라도 촌수로 따져봐도 아버지의 6촌이니 너무 멀기도 하고 항상 신세 지고 있는 분이라서 명자가 구 사장의 모친을 부르는 칭호는 당고모'님'이었다. 어려운 관계지만 9년 전에 작고하신 어머니 대신 서울에서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지내는 어른이다. 충청도 본가에 계시던 친어머니도 원래 엄하신 성정이라 어렵기도 했거니와.


"왜 여기서 울고 있어?"

"그냥 서러워서..."

"왜? 아까 집에 찾아갔을 때 경식이가 너한테 매몰차게 대하든?"

"그럴 리가 있나요. 구 사장님께서."

"일단 집으로 내려가자."






"뭐라도 내드려야 하는데 집에 아무 것도 없어서 내드릴 게 없네요. 죄송해요."

"응. 괜찮아."


"있잖니. 우리 집 옆으로 가게 자리 두 개 새로 내려고 하잖아."

"네."

"거기서 장사할 사람 찾는다고 했더니 글쎄 뭔 깡패 같은 놈들이나 그리로 하겠다고 들어오는 게 아니겠냐."

"아무나 들이시면 곤란해요. 깡패라고 하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잖아요. 세 밀렸다고 나가라고 해도 되려 협박이나 하려고 들텐데..."


"연희야. 너 장사해 볼 생각 없냐?"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죠. 안 그래도 아침에 연희 아버지가 장사나 해볼까 하는 걸 뭔 말을 하는 거냐고 타박했는데..."

"우리 가게 자리로 들어오지 않으련?"

"들어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세를 내기가 힘든 걸요."

"아니, 무상으로 자리를 내주겠다는 말이야."

"네?"


너무나도 갑작스레 생긴 호재에 명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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