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2월 1일, 대한제국군 사령부

바로 전날,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포격당했다. 비록 도시 하나를 완전히 지워버리진 못했지만, 중화민국의 지도부가 완전히 소멸했고, 충격파로 인해 난징의 중화민국군 5000명이 즉사했다. 이로인해 남은 중국군은 저항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결국 13로군 사령관 장광나이가 항복하면서 중국 전선은 종결되었다. 그리고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상륙, 현지의 독립운동 새력이 일제히 봉기하면서 결국 두 국가도 항복했다. 이로써 길었던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었다.

''하하, 대승입니다! 대승!''

''수고했소, 모두 장군들의 용단 덕이요.''

''아닙니다. 그때 폐하가 아니었으면 전멸했을겁니다.''

이우와 각 군 사령관들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모든 병사들이 기뻐했다.

''저, 폐하. 궁금하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말이요?''

''중공은 우리에게 항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자들과 함께 쓸어버리신 겁니까?''

한 장교의 말에 이우가 답했다.

''공산주의는 위험한 사상이오. 모든 민중이 차별없이 잘먹고 잘살수 있다는 말에 평범한 국민들은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오. 이제 중국을 9개의 국가로 쪼갤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아국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국가가 공산화 될수 있을것이오. 그래서 미리 싹을 자른 것이고.''

1936년 2월 3일, 중화민국 난징

미국, 영국, 소련, 독일 등등의 국가가 참관하는 가운데 대한제국과 일본 공화국, 티베트, 대몽골국의 대표단과 중화민국은 수뇌진들이 마주앉아 있었다. 중화민국측 인물들은 침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협상은 얼마안가 채결되었고, 항복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난징 조약>

1조. 중화민국은 양쯔강 이남 8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

1조 1항. 중화민국은 이들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이를 어길시엔 강남 8개국은 선전포고로 받아드릴 수 있다.

2조. 중화민국은 대한제국에 20년을 기한으로 미화 800만 달러를 배상한다. 

3조. 중화민국은 티베트, 몽골, 일본에 각각 미화 300만 달러를 20년을 기한으로 배상한다.

4조. 중화민국은 대한제국에 산동성, 허베이성, 산시성, 허난성을 영구히 할양한다.

5조. 중화민국은 티베트 왕국에 칭하이성을 영구히 할양한다.

6조. 중화민국은 대몽골국에 내몽골 자치구를 영구히 할양한다.

7조. 중화민국은 일본 인민 공화국에 하이난 섬을 영구히 할양한다.

8조. 중화민국의 수도는 시안으로 한다.

9조. 중화민국과 대한제국, 티베트 왕국, 몽골국, 일본 공화국, 강남 8개국은 불가침 조약을 맺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상호간 발전을 도모한다.

10조. 위의 내용중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을 시 대한제국및 다른 국가들은 중화민국의 선전포고로 간주할 여지가 있다.

1936년 2월 3일

전쟁 당사국: 대한제국 황제 이우

전쟁 당사국: 일본 인민군 사령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전쟁 당사국: 티베트 국왕 달라이 라마

전쟁 당사국: 몽골 대칸 카야트 요스 칸

전쟁 당사국: 중화민국 임시 총통 리셴후이

공증국: 미합중국 주한 대사 호머 헐버트

공증국: 독일국 수상 아돌프 히틀러

공증국: 소비에트 연방 외무부장관 바체슬라프 몰로토프

이로써 정전 협정이 채결되었고, 전쟁은 끝났다. 이제 중국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대한제국의 영향력은 더욱 넓어졌다. 인도네시아는 위임통치하던 오세아니아 섬들과 통합하여 남양 연합주라는 이름의 식민지로 삼았고, 동남아는 호치민을 주석으로 하여 연방국가를 세웠다. 이는 사실상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대한제국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갔다는것을 의미한다. 이제 도약을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