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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처음에 내가 그를 믿지 못했던 것처럼 그도 날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자 아래로 엿보이는 표정이 그렇게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해는 간다. 은가비의 발광에 틈타 자기자신에게 데미지를 입혀 투명화 상태로 전환해서 손쉽게 그의 뒤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걸, 단번에 받아들이긴 힘들다는 것 정돈 잘 안다. 그래도 난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제대로. 예그리나가 이끝내 용기를 내어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묵묵히 묵묵히, 견뎌내며 필사적으로 감추려하던 자신만의 비밀을 다는 아니라도 우리에게 밝히려고 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가 우리를 어떤 걸 계기로 그랬는지 몰라도 힘겹게 도움을 요청해줬다. 용사라는 직무 이전에, 부응해주고 싶었다. 동료들이 애타게 우릴 기다리겠지만, 확실히 해두고 길을 나아가겠다. 결코 거짓말이 아님을 그가 보여주려고 일부로 뒤에 물러서서 조심히 설득했던 것과는 반대로, 내가 한발짝 앞으로 다가서서 증명해보이겠어. 물론 서있는 자리에서 보여주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볼까. 고리걸은 손가락을 꺼내어 현실과 마주잡아서, 정면으로 부딪쳐 주겠어.



- 믿기지가 않지, 예그리나? 【LV.0/용사】


- ····잘은 모르겠소. 안타깝게도 그대가 하신 문장들을 받아들여 보자니 겨우 연장해가는 순시만으로 부족하다고 들긴 하오나. 【LV.39/음유시인】


- 괜찮아. 이해못하는 게 당연한 거야. 이해해. 나도 처음엔 내게 일어난 이 변화가 아직도 실감나지 않거든. 그런데도 당신을 이기고 나니 조금은, 적응될 것 같기도.


- 그렇군요. 알겠소. 후에 차분히 알아갈테니 그대의 선약대로 이만 움직이도록 하지요. 시간이 다 되었소. 그들이 곧 찾아올거요. (천천히 걷기 시작하며)


- 알겠어. 그러기 전에 하나만 더, 빠르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어. 


- 또 무슨 말씀이 거 남으신 건지. 승부에 응해주기만 승패 상관없이 조용히 따라와 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용사여. 그대의 동료분들이 난전을 해탈한 선인 마냥 보고만 있을 작정이요.


- 그래서 말해줬잖아. 나는 동료들을 믿는다고. 그리고 이번 건, 어쩌면 중요한 사안이 될지도 몰라.


- 그런건 나중에 해도 늦지않소. 계속 받아준다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지체하시면 저 먼저 가 있겠—


- 아까부터 내 검이 끊임없이 울려대는 게 신경쓰여서 말이야. (한배검을 앞으로 내밀며)



우우웅— 우우웅—



- 하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군. 검이 울린다니?


-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그럼 다시 정정할게. 현재 이곳에 검은 요정하고 동등한 무언가가 가까이에 있어. 어딘가에 계속해서.


- (멈칫) ·····그게 무슨 소리요, 용사. 서투른 농담은 삼가하시죠.


- 농담 아니야. 사실 이 단검은 마물들이 근처에 나타나면 울리는, 직역하자면 사악한 기운을 감지하고 진동으로 내게 알려주거든. 덕분에 많은 사건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지.


- 그렇다는 건 그대의 얘기는 이주변에 그들이 있다는 거요. 아아, 그만 억지 부리시길. 그랬다면 그들이 벌써 달려들고 남았을 거요. 그들의 특성상 살아있는 생명에 즉시 달려드니까. 장담하길, 현재 여기엔 우리 밖에 없다오.


- 그럼 답 나오네. 검은 요정이 주위에 없다면 남은 건. (쓰윽)


- 왜 이쪽을 쳐다보시는 거요. 하, 그런건가. 탐탁히 여기지 않으셨으면 돌려서 말하지 마시지. 이런 말트집은 안 좋아하는 편이라오.


- 이쯤에서 보여주도록 할까. 가까이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앞에두고



“지나간 과거와 고립된 현재를 동시에, 증명해보이겠어. (척)”


“(!?) 잠시만, 지금 뭐하시려는—!”



동굴 쪽으로 걸어나간 그의 앞에 적나라하게 내 자신한테 힘껏 검을 내리쳐, 『아스라이 모드』로 전환. 그러자 귀신이라도 앞에 나타난 것 처럼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에게로 곧장 달려나간다. 안보이는 육체를 방패삼아 일로매진하게 뛰어가는 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쏴아악



베어버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렸다.

되감아보면, 코앞까지 다가선 그를 향해 칼날이 드러냄과 동시에 베는 순간 그의 커진 동공과 나의 눈동자가 서로 맞물리며 스쳐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회심의 일격에 방심해서 아무것도 할수없던 그, 모르게 꿇어버린 무릎, 한 발 늦은 손, 감싸드는 팔. 하지만 그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애초에 베인 대상이 달랐다. 방금 전 베어넘길 때, 펄럭이는 판초 안으로 무엇인가 엿보였고, 그것은 처음 우연치 않게 봤던 거와 동일했다. 흩날리는 천조각에 고이고이 숨겨놓은 그의 몸에는 식물의 줄기가 돋아나있고, 끝부분에 연결된 유독 돋보이는 저 뭉텅이, 즉



식물 줄기에 감싸여진 까맣게 피어나있던 ‘그’를, 보고야 말았기에.











제 27화. 그것이 진실, 그것이 거짓











철컥 철컥



“····무슨 짓거릴 한 거요. 방금 검으로 누구의 목숨을 거두려고 했냔 말이요!!! (버럭)”


“····.”



이성을 잃어버린 그, 예그리나. 예전에는 보지못했을 표정과 그의 질려버린 눈동자 속에 비춰진 나는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은 하였지만, 가느다란 두 자루의 총구가 나의 가슴에 맞닥뜨려 처절히 굳어진 모습이었다. 이를 악물고 한껏 거칠어진 차가운 숨을 천천히 내쉬며 튀어나온 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위협 만을 반복, 또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의 분노를 일으켰는지 까진 잘 안다. 아주 잘. 그렇다고 내가 한 일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근처에 있던 공허한 동굴에서 조차 세차게 울려퍼져 고막이 연속 진동을 해 죄를 부추겨 오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대답없이 바라만 보는 내게로, 정면으로 제대로 쪼아붙이자 낯간지러워 끝내 입을 때어본다.



- 묵인한다고 용납하지 않는다오! 당장, 그 입술을 때지 않으신다면, 첫 접전 때 당신 말대로 빗나간 버린 최후의 일격을. 이번에야말로 정식으로 선사시켜주지. (퍼뜩)


-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말하지만, 난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 그따위 횡언을 들으려고 입을 때란 게 아니잖소! 언제부터 알았지. 역시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목적을 갖고 접근한 거군. 아아, 제 자신이 너무 안이했어. 섣불리 판단내리는 게 아니었는데!!


- 당신이 뭘 듣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몰라도 그건, 당신의 뒤로 다가설 틈에 알게 된 거야. 맹세하지.


- 적의 맹세따위 듣기 싫소. 정원 주위에 꼬인 벌레 한마리를 무심코 놓아두고 만 있던 정원사가. 어느날 시들어버린 고약한 꽃 몇송이에서 벌레의 채취가 남아있어. 아, 해충을 보았구나, 하고 정원사가 뒤늦게 아나니. 다듬던 가위가 한순간에 수벌의 흉기가 되어 단재된다. (철컥)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오. 옛정을 생각해서 경청해줄 테니.


- 그럼 다시 한번만 확인해줘.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죽는 건 억울한 일이니까. 아, 단검은 내려놨어, 봐. (척)


- 실속없는 유언이군. 자신이 꺾은 꽃으로 환기시키려 하니 좀 불쾌하군.



“그런다고 이걸로 하여금 달라질거란 생각은—····”



처음에는 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스라이 모드』를 앞에서 시전하기에 이르러서 알게 됐다. 전투중에 난데없이 단검이 울려왔고, 왠지 그에게로 한발짝 가까이 갈수록 진동음도 미세하게 커져가는 걸 알아챘을 때, 궁금증이 피어났고, 모드 시전 상태에서 그의 곁으로 다가설때 몰래 수색차 들춰보다가, 그제서야 단검이 울려됐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잠시동안 바라본 판초 안쪽 모습은 상체 우측 하단에 왠지 모를 억센 줄기가 길게 나있어, 주욱 이어진 데를 따라가보니 허리춤에 다다른 끝부분에는 여러개의 줄기들이 한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어, 그렇게 이루어진 형상이 마치 덩굴 뭉텅이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미심쩍지만 문제는 그다음, 달려있는 뭉텅이 안으로 둘러싸여진 검은 요정과는 달리 거무스름한 살갗이 돋아 있는 작은 요정이 나를, 소리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줄기가 그 요정의 입을 재갈처럼 틀어막고있어 때어냈다간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자세하겐 아니라도 짐작이 갈 정도로, 저 요정도 그들처럼 오염에 노출됐다는 걸. 사정은 모르겠으나 시인은 이미 요정들의 사회에 깊히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간다. 그저 거기에 나는 잠깐 어울려 준 것 뿐이지.



찰나였지만, 요정에게 파고든 접마(接魔)를 갈라버리자 잠이든 요정이, 미소를 지어준 건 기분 탓이었을까.



- 이···· 이게···· 어찌된 거지·····? 요정님이····· 요정님의 검게 얼룩지신 상처가····· 말끔히.


- (새근새근) 【LV.28/수피아(요정)】


- 초면에 실례했지만 확실히 베어냈지. 단도 한배검이 지닌 또다른 능력 중 하나, 그것은 적의가 없는 대상에겐 주는 데미지는 0. 그덕에 요정을 재치고 요정 몸에 꿀럭거리던 걸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지.


- 사라졌다고···! 저··· 정말로···!


- 후우, 그러게 내가 말했지.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앗다고. 그래도 다행이야. 혹시나 해서 한 거지만 이렇게 결착내서.


- "엥? 멋모르고 저지른 짓이야?? 잠깐 그전에 정리 좀 해보자. 방금 베어넘긴 게 쟤가 아니라 요정이고, 정확히는 요정이 아니라, 잠식되어 있던 마흔(魔痕)··· 그런건가?" 【LV.15/용사의 수호령】


- 아아··· 곤히 주무시고 계셔··· 아아···.


- 응. 간신히 통한 것 같네.


- "아마 그들처럼 완전히 지배당하기 전이라서 가능했던 건가, 음. 그래도 그렇지 이거 무모하다······ 아악! 너무 급작스러워서 혼란스럽지만, 난 보지도 못했다구! [아스라이 모드시 일시적으로 소멸됨] 그건 그렇다치고, 너도 참 통찰력이 대단하다. 어떻게 한번 보고 단번에 그런 결정을 내리냐. 누가 주인공 아니랄-읍읍!" (윽, 위험했다;)


-글쎄. 그냥 그러고 싶었달까. 모르겠어. 요정 몸에서 들썩거린던 걸 우연찮게 인지할 수 있던 거고, 이어서 검의 본질이 떠올랐달까.


- "그래. 개연성이 없어보이지만 상대가 멀쩡해졌으니 다행이네. 그런데 쟤는 고맙다고 말은 못할 망정 쏘려고 하다니. 뭐 검의 기능을 몰랐으니 충분히 그럴-”



척척



순간, 뒤로 물러나서 요정을 확인하고 있었던 예그리나가 다시 앞으로 다가오더니 등을 꼿꼿이 세워 우뚝 선다.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선 그였지만, 총을 쥐고있지 않았고, 정작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품에 안더니 긴 머리를 길게 늘어놓은 채로, 입을 땐다.


"소인이 입은 크나큰 은혜를 영원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또르륵



당황했다. 그리고 다시한번, 당황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늘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여지는 눈물에 젖은 가련한 안면에 두 뺨을 적시며 선을 그으며 내려가는 물줄기가 턱선에 맺히더니, 똑똑, 한방울씩 한방울씩 땅에게도 적셔댔다. 기쁨에 겨워 주체못한 자신의 감정을 눈물로 승화하여 대지로 전해진다. 이제야 모든 의문들이 서서히 풀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의 의문. 내가 같이 짊어질 수 있는 역경과 그동안에 아픔을 보이고, 느끼고, 받아주는 순간.

참으로 길게 끌었구나, 음유시인 예그리나.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는데, 오늘이 되서야 기회를 잡아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런데도 실체 앞에선 장사 없구나. 그 누구의 눈물이든 쓸모없이 흐르는 건 없다. 구제가 됐든 배척이 됐든, 우연이 됐든 필연이 됐든, 명목이 됐든 무의미가 됐든, 승리든 패배든, 절규든 환희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뭐든, 모든 시행착오가 이끌어준 종착에 끝에서 있는 난 그 눈물을 닦아낼 준비가 되어 있



- 하아···.


(역시 적응 안되네. 오글거리는 내 생각. 너무 작위적이야. 누가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겠어. 정말로 소설 속 세계라는 건가)


-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사죄 드리겠습니다, 용사님. 이런 몹쓸 천한 것이 감히 용사님께 흉기를 겨누다니, 신벌(神罰)을 받아도 마땅하오. 요정 분들께도, 용사님께도 저란 존재는 역시···. (글썽)


- 이제 그만 고개 들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가자고 하지않았어?


- 억지부려 떠맡는 강요 따위가 선듯 베풀어주신 용사님의 자비로움에 어찌 반하겠습니까? 당장 선처하는 바입니다. (꾸벅)


- (태도가 확 변했네) 별거 아니었어. 그냥 하고싶어서 한 거고, 그 뜻은?


- 그대께서 꼭 벌을 내려주시길 바라지만, 그대의 의덕이 걸릴정도로 드높아서 이도저도 못하는 한낮 죄인이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 (이거 어째 처음때하고 똑같아. 그보다 저러고 있을 시간이)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겠단 뜻인 거야?


- 벌이라면 기꺼이.


- 으음; 그러면 (척) 이거 한번 쥐어봐.


- 예? 이건 용사님의 검이신데 이걸 어찌 저같은. 


- 당신이 내게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그리고 그 존댓말은 안쓰겠다고 한다면, 일단, 검의 손잡이를 잡아줘. 이게 내가 내리는 처벌이야.


- 그러시다면 잡아보겠습— 아니 잡아보겠소. (꽈악) ㅇ? 잡았는데 이제 어쩌면 되는 거요?


- 단도 한배검이 지닌 마지막 능력. 내게 악의를 품고 검을 잡은 자는 막대한 데미지를 받게 돼. 오래전에 들은 얘기지만.


- (!) 그렇다는 건.


- 이상이 없는 걸 보면 맞겠지. 그럼 가자. 혼자 싸우느라 가지못했을 그들의 핵심지를, 원초를 확실히 끝내러 가자고. 왜냐면 더이상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



(현재. 나간의 서식지, 폐허 동굴 부근)



이상해. 역시 뭔가가 잘못됐어.


아까부터 이상하단 조짐이 엄습해왔다. 전장을 누비며 이전 전투보다 몇배에 달하는 나간과 검은 요정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어 상황에 압도당한다. 본거지 근처로 접근해서인지 더욱 강렬하고, 날렵해진 타격, 그에 맞서는 나와 마법사 리내를 비롯한 힘든 기색없이 묵묵히 상대하던 예그리나까지 사격보다는 회피하는데에 심혈을 기울이며 모두가 난전에 숨을 가쁘게 쉬어댔다. 동분서주 움직이며 부딪히던 육체는 지쳐만 가자, 정신을 부여잡던 나의 두뇌에서는 눈으로 들어오는 전장상에서 위화감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일치되어야 할 진언이, 하나둘 어긋나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확실치만은 않다. 그럼에도 난 내게 든 의문점을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곧 상대편 적들의 공방이 처음보다 잦아들게 되면서 어느정도 숨을 고를 틈에 여지껏 곁에 있어준 수호령 혜움에게 의문점을 끄집어 내본다.



- 하아아···· 하아, 혜움. 나 좀 도와줘.


- “에··· 잠깐 나? (화들짝) 잠깐잠깐 용사; 설마 나보고 전투에 개입하라는 말이야?! 아니, 진짜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이 상태에서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처지가;”


- 그런게 아니라, 하나만 물어볼게 있어. 대답해주기만 하ㅁ—읏! (챙)


- “물어볼거? 자칫 한눈 팔다가 방금처럼  쓰러질 뻔한 판국에 생뚱맞게 왠 질문?”


- (댕겅) 어. 나만 그런 건지, 아닌지만 부디 듣고 싶어.


- “응? 그런 게 뭔데?”


- 그건— 타앗! (뛰어오르며) 먼저, 촌장님하고 마지막에 나누던 대화들. 아직도 기억해?


- “그 이례적인(*아스라이 모드) 경우만 제외한다면 뭐든 기억하지. 알아. 그게 왜?”


- 하앗! (급강하) 그 당시, 촌장님께서 하신 말씀들 중에 ‘요정의 비밀’을 거론하신 적이 있었잖아.


- “생명 에너지로 태어난 존재라, 불사신이다···· 뭐 그런 거?”


- 그래. 그 다음에 이런 질문을 했었잖아. 그럼 나간과의 종전 이후 특전병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냐.


- “그야 당근 얘네들에게 당해서 겠지. 딱 봐도 저 불쾌한 마흔(魔痕)에 사로잡힌 거잖아. 오염된 에너지는 그들을 쇠약하게 만든다니까.”


- (챙챙) 여기서부터 잘 들어봐. 우리가 처음, 마을에 방문시 촌장님께서 들려주신 나간족과의 전투, 기억할거야.


- “촌장님의 만류에도 스스로 자진한 일부 수피아 특전병들의 값진 희생덕에 수십년만에 종결됐다는 이야기 말이지.”


- 거기서 부터 이상해. 촌장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와 지금과 확연히.


- “이상하다니, 뭐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게 특전병들이고, 그들이 저리된 경위는 아직 불명···”


- 아니, 잘 봐봐. 그리고 떠올려 봐. 현재의 요정들과, 과거 당시 보낸 요정들이 만류에도 뿌리친 당시 상황을.


- “당시 상황이라니. 요정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갔다고 했잖아. 그 선두에 선 게 치이의 언니인, ‘치레’라는 특전병이 처단법을 알아냈다면서 정예를 꾸리고 갔다는데 여기서 뭘 더···(!)”



챙!



- “그러고보니, 분명히 ‘소수정예’로 보냈다는데···· 지금 숫자가!


- 맞아. 우리가 맞서는 요정들의 수와는, 소수라기엔 너무 많아.


- “아니면 이전에 보낸 요정들이 라던가, 그런건—“


-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촌장님이 사상자도 없었고, 중상정도로 돌아왔다고 했을리가 없지. (휙) 밀려가던 사태속에 섣불리 움직이면 안된다 판단해 보내지 않으려 한 건데.


- “소수로 맞서겠다는 긴 설득 끝에, 어쩔수 없이 보냈다···. 아니, 그런!”


- 우린 오래전 얘기라 잠시 잊고 별 의심없이 싸웠던 거야. 수십년 전에 막을 내렸다던 전쟁을 알리가 없을 예그리나는 혼자서, 구제하려고 노력한 거고.


- “그럼 우리가 상대해온, 그가 상대해왔던 요정들은 다···.”


- 확실치 않지만, ‘가짜’일 가능성이 높아. 하물며 저렇게 많은 숫자가 몇년을 걸쳐서도 줄지 않았단 건, 어디선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을 가능성도.



댕겅



- “양산이라면—(!) 그럼 저 동굴에서!”


- 이것도 내 예상이지만, 그 당시엔 요정들은 없었고 (홱) 지금 여깄는 나간들만 있었을지도 몰라. 현 특전병들이 별 낌새없이 휴양 중이면, 적어도 같은 종족끼린 알아볼 텐데 가짜 요정이 활보치는 데서 평화롭게 보낼리가 없지.


- “그럼 수십년에 걸쳐서 요정까지 양산해왔다는 건가. 그렇지만 이상한데. 몇십년 전에 끝났는데 가짜들이 요정 마을을 아직까지 못 들어온 것도 그렇고, 처음으로 돌아와 대체 어떤 식으로 요정들을 양산한 거지?”


- 크으읏! (챙강) 허어억···· 헉··· 그래서 그걸 찾아봐야 하는데, 지금 당장 마을에 가서 알려서라도 알아야 되는데. 도중에 가는 건···!


- “흐으음, 몬스터의 양산 방식을 어떻게 해서···· 아, 맞다! 그게 있잖아. 『몬스터 도감』!”


- 몬스터···· 도감?



『몬스터 도감』이라면 전에 소마(=슬라임) 건으로 필요해서 상점에서 무녀 제나가 구입했던 서적으로써, 각종 몬스터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어, 보스전에도 유일하게 사용되어진 물건. 원래라면 제나가 갖고있어야 하지만 어찌저찌 흘러가다보니 내 손에 들어오게 됐고, 후에 제나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그냥 내가 소지하고 있으라며 내가 주었다. 이전에 나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제나가 책을 꺼내줘서 읽어주지 않았더라면 나간의 모습도, 책의 존재도 영영 모르고, 지금도 까먹고 있다가 혜움이 알려준 덕에 알게 되었다. 그러면··· 헉헉··· 도감만 꺼내서 단서만 알아낼수 만 있다면, 역전할 승산이···!



- “어때, 도움이 됐지? 것봐. 이 몸이 없었다면 지금쯤 넌—(!) 잠만, 용사! 앞을 봐! 앞!”


- 하아아···· 어?





•••



“마법구술 『매록』 제 2장의 복 『결초회생(結草回生)』—!



번쩍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감겨있던 눈이 번쩍 떠지더니 순간 막혀있던 숨이 다시 뚫리는 거와 같이 정신이 재가동 되어간다. 눈을 떠보니 촘촘히 짜여진 가시 철장···· 어라? 그러고보니 나 언제부터 누워 있던 거지? 어, 저건 리내? 리내가 왜 내 머리 위에 있-



- (!) 멀똥멀똥 뜨고만 있지 말고 당장 일어나지 못해! 언제까지 그렇게 퍼질러져 있을 거야, 이 멍텅구리 용사야!


- 앗! (벌떡)


- “오, 빨리도 일어났네. 회복 속도 장난 아니네. 나간에게 한방 맞고 기절하더니 체력도 한방에 완전 회복이냐? 체력치가 적긴 적나보네.”


- 뭐, 뭐? 나 방금, 기절해 있었던 거야?


- “그래, 네가 틈을 보이는 바람에 딱 한방 맞고 나가떨어졌지. 그런데도 나간이 쓰러진 네게로 동시에 달려들려던 절체절명의 위기에, 예그리나하고 리내가 도운 덕에 간신히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 뭐, 한눈판 내게도 책임이 없는 건 아ㄴ-“


- 당연하잖아! 무리해서 싸우지 말고, 그한테라도, 적어도 나한테 만이라도 도움을 청했어야···



정말로, 일어난 주변을 살펴보니 몬스터들과 첫 접전에서 리내하고 내가 잠시 실랑이를 벌인 사이, 예그리나가 우리에게로 쐈던 가시 철장이 그대로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바깥에는 수십마리의 나간때와 요정 때가 우릴 노려보며 바짝 붙어있었다. 덕분에 적들의 공습 없이 무사히 리내의 치료를 받고 일어난 것 같다.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 그러면, 이 타이밍에 몬스터 도감을 읽을수 있잖아. 좋아. 그렇지만 밖에서 거세게 두드리고 적들에 의해 철장이 부서질 것 같으니 이 틈에 어서!



- 그러니까 조금은···· 어? 용사! 내 말 듣고 있어!


- 여깄다. (덥썩) 그럼 어서 해결책을.


- 혼자서 다하려고 들지 말고, 도움을 요청할 거면 요청하라는 거야. 듣고는 있는 거야? 용사. 용사!


- (펄럭펄럭) 그러니까 나간과 요정에 대한 내용이 어딘가에···.


- ···.



덥썩



- (깜짝) 왜 그래, 리내야. 갑자기 손을 잡아 끌고; 놀라서 책을 떨어뜨렸네. 아, 혹시 상태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괜찮아, 네가 치료해준 덕에 아주 멀쩡—


- 왜 자꾸만····.


- 어; 뭐라고 했ㅇ


- 왜 자꾸 혼자서만 하려고 해, 왜! (버럭)


- 뭐?? 아니 그게 난 해결책을 찾으려


- 용사 너는 왜 자꾸 모든 걸 자기 혼자서만 떠맡으려고 해! 해결책이든 뭐든 말도 없이, 계속 너만 힘들려고 하냐고!


- 아, 아니야. 나 전혀 안 힘들어. 되려 네가 치료해줘서 펄펄하다고, 봐봐!


- 그럼 또 너 혼자 가버리겠단 거야, 말도 없이?


- 에, 아니 그건 비상 사태여서, 중요한 거여서;


- 솔직히 말해줘, 변태 용사. 내가···· 필요없어?


- ····뭐??


- 내가 래버력도 낮고, 무력하고, 쓸모 없어서 나한테 그 중요한 일 하나 맡길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서··· 그런 거냐고.


- 절대로 그럴리가 없잖아; 오히려 내가 더 나약하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또— (!)


- 그러면 (손을 마주잡고) 곁에서 돕게 해줘. 네 래버력하고 상관없이 함께 하고싶어. 네가 무리해서 힘들어하고, 애써준다고 분주하는 그 모습이 더, 그게 더 신경쓰인다고. 아니 싫다고!


- 리내야···.


- 내가 할수있는 데까지 도울게. 그러니까 힘들거나 지치면 언제든 말하라고. 혼자서만 짊어지려 하지마. 의지해도 된다고! 왜냐면 난 네 동료고.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니잖아!”


“····알겠어. 걱정 끼쳐서, 미안해.”



난 리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다. 저 말은 예그리나와 단둘이 있을 때 그에게 해줬던 말과 똑같았다. 그가 계속 내 말을 무시하고, 맘대로 판단내리고, 혼자서만 있으려고 했기 때문에 권했던 말인데, 정작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내가 잘못됐다. 그렇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동료들의 입장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놈이었던 거다. 동료들이 당하면 책임 방향은 오로지 내게로 향한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그렇기에 누구보다 겁먹어서는, 뒤로 물러나서는 안됐다. 나로 인해서 모두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건 내 자신이 견딜수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도리어 그게 상대를 기만하는 꼴이었다. 상대를 위하려던 일이 자존심만 곧세우는 줄도 모르고, 고난을 대신 받아주는 일이 상대방이 생각하는 시간조차 뺏는 일인지도 모르고, 저지른 거다. 정작 나 자신부터가 되먹지 못했는데 누구를 가르치려 들다니, 한심했다. 세상에는 옳은 일과 아닌 일이 있고, 그 옳은 일에도 옳은 뜻과 아닌 뜻도 별개로 존재한다. 내가 해줬던 옳은 일들이 꼭 좋다고 볼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대마다 보는 각도가 다르니까. 그래서 결국 리내한테 잔뜩 혼쭐났다. 내가 보지 못하는 각도를 보고있었다면, 납득이 간다면, 이번엔 내 각도를 바꿔 서롤 마주보기로 한다.

리내에게 책을 보려던 이유와 원인을 곧이곧대로 전했다. 그걸 들은 리내는 잠시 고심하였지만, 결국 납득해줬고 떨어진 책을 주워주곤 같이 논의해 본다, 해결책을.


찾았다. 나간족에 대한 주요 정보와 뜻밖에 사실들까지 같이. 우리는 우글거리는 수십때의 적들을 헤쳐나가는 방향으로 작전을 짰고, 나아가 동굴 입구까지 가야하는 발판을 마련해 본다. 완벽한 계획이나 방안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체할 시간이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이 순간까지 그는 홀로 입구 부근까지 전진하고 있는 상태였고, 당연하지만 자신들의 거처에 가까워진 만큼 호락호락하게 비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적들이 그쪽으로 대부분 쏠려있는 상황. 한시라도 빨리 동굴 안으로 납치됐을 검은 요정이 되지 않은 유일한 생존자, 진짜 요정을 구출하는데 중점에 두고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실행하자. 후에 닥칠 문제는 그때가서, 어쨌든 가자!



- 리내, 지금이야!! (팍) 【아스라이 모드 ON】


- 알겠어! (척)



“마법구술 『진홍』 제 3장의 격 『휘날리는 성익(聖翼)』—!”



아스라이 모드를 전환함과 동시에 거의 다 쓰러져 가는 가시 철장 꼭대기를 향해 쏘아올린 맹염의 불줄기. 얼마나 강력했는지 철장에 부딪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 탁한 기류를 뛰어넘어 하늘 꼭대기 까지로 솟아올라 화려하게 터져가는 화염 구체. 철장에 부딪혀 튀겨대는 불씨의 조각들로 가까이에 있던 몬스터들을 분산시켜 거리를 떨어뜨려 놓고 천공에서 터진 돋보이는 불꽃의 파편들은 뒤로 물러난 나간들의 머리를 스쳐, 저만치서 떨어져 있는, 그가 있는 곳까지 쏟아져 내린다. 물론 아무데나 떨어지는 파편들은 그들을 쓰러뜨리는데 한참 못 미쳤지만, 우리의 목적은 전부 쓰러뜨리는 게 아닌 동굴 안으로 향하는 것. 

촤아악! 나는 수렴되어 있었던 한산해진 전방에 조목조목 보이는 몬스터들을 베어넘겼다. 모드와 격퇴를 3-4번 연계해가며, 달려간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서둘러 가까워지는 입구를 앞에 두고, 뒤에선 곧장 반격해오려는 무수한 적들. 그리고 입구에 다다를 때, 무사히 입구 안쪽에 접전을 펼치고 있던 그에게로 힘껏 외쳤다.



- 우리가 들어가는 순간, 가시 철장으로 입구를 막아줘! (타닷) 지금이다!


- 본부대로. (철컥)



“아크로 드 로즈 [갈애(渴愛)를 속삭이는 어리석은 바람둥이]”



예그리나는 자신이 들고있던 총구를 어퍼컷을 날리듯 쑤셔넣음과 동시에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그로 인해 위로 피격으로 튕겨져 날라가는 몬스터들을 가로질러, 간신히 안으로 발을 디딛는데 이른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온 걸 확인한 그는 뒤이어 라카즈 아 르 푸를 외치자 입구 전체에 가시 철장이 쳐졌다. 더이상 한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철장에 옴짝달싹 못하고 부릅 노려볼 뿐이었다.



- 됐어. 이제 구하러 가면 돼! 예그리나, 길을 안내해줘. 남은 식물의 줄기로도 요정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지!


- (깜짝) 그걸 어째서 알고 계시죠!?


- 도감에서 봤어. 그 식물의 줄기, 사실 요정이 품은 씨앗에서 자라났단 걸. 죽어가는 생명과 시전자의 생명을 연결해 치료해주는 역할이고 시전자와 적용자는 이어져 있어 멀리 있어도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 맞소. 정확하오. 그럼 시급하니 빨리 탑승하셔서 그녀를— (척)



“너희들은 먼저 가있어. 나 혼자 여기 남을게.”



- 무슨 소리야, 리내? 당연히 같이 가야지! 빨리 가자!


- 아니, 여기 남아서 저들을 마저 막을게. 그러는 편이 나아.


- 그러는게 낫다니····. 리내. 네가 분명 그랬잖아. 함께 하자고. 곁에서 도와주자고!


- 그래서 그런 거잖아, 바보야! 저렇게 몰려드는데 고작 철창 하나 쳤다고, 수십때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올마나 버티겠어. 금방이라도 격파될 게 뻔해.


- 그럼, 진짜 혼자 막겠다고!? 그건 너무 무모해!


- 아니, 그렇지 않아. 뒤늦게 접해들은 그 요정. 지금 여기 가까이서 느껴져.


- (!) 그게 참말이오!


- 응. 탁한 기운 속에서 유일하게 느껴지는 맑은 에너지가 뚜렷이 나타나. 만약 철창을 그냥 두고 갔다간 부숴지기라도 했다간 설상가상, 더 위험해질거야.


- 꼭 있어야만 해? 같이 막으—


- 난 늦게 요정에 대해 접해 들어서 아는게 없어. 도감 설명만으로 턱없이 부족하고. 그런데 너와 그는 다르잖아. 너흰 너희만이 할수있는게 있고 나는 나만의 일이 가능한게 있어. 내게는 제나가 준 힘이 있어. 막을 방법도 있다고! 【LV.31/마법사(식신 상태)】


- ····혼자 하실수 있겠소?


- 어. 스스로에게 내린 판단이야. 후회는 당연히 없지. 오히려 도와줄수 있어서 (씨익) 기쁘다고. 자, 어서가. 시간 없어!


- 알겠소. 부디 무사하시길. (꾸벅) 그럼 갑시다, 용사님!


- ····.



“마법구술 『청남』 제 5장의 주 『야상미무(夜想迷霧)』!”



멀어지는 그녀와의 거리에서 나지막히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끝으로 잠시후, 시끄럽던 적들의 괴성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난 리내가 그렇게 믿음직한 면모를 갖고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평소엔 그저 쌀쌀맞게 구는 구석이 느껴졌는데, 지금와서 보니까 현재 그녀는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 동료가 이리도 든든한 존재였다니. 지금에 와서 깨닫는 내가 어리석기만 하지만, 확실히 와닿았다. 이제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전부 동료들이 조용히 도와줬기에 가능했다는 걸. 내가 한 일보다 오히려 도움받은 게 많단 걸, 새삼. 리내가 그랬지. 너는 너, 나는 내가 할수있는게 있다고. 그럼 내가 할수있는,

내가 할수있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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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지마! 크윽!”


“키에에엑—!!!”


“당장 거기서 떨어지시오! 라비앙 딥 키스 샷 [일순간 달아오르는 끈적한 사랑]—!



끼에에엑! 저멀리서 보이는 수많은 요정들을 향해 그는 총알을 발포했다. 그렇게 쏘아진 총알은 요정 하나를 피해서 정확히 뒤에 검은 요정의 본체에 그대로 적중. 정해진 대상만을 뒤따라가 꿰뜷는 탄환들로 달려가면서 저격했고, 간신히 적들을 처치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어느샌가 홀로 남은 한 요정이 총소리에 잠시 굳어있더니 이윽고 어둠속에서 드러내는 그를 보곤 도망치려 하던 요정은, 갑자기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랜다.



- 자, 잠만 너는 예그리나!!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분명 가라고 했는, 읏! (머리를 감싸쥐며)


-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정말로···. 그리고 소인은 당신께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씻을수 없는, 대죄를.


- 후~ 진짜 너구나. 너야말로 무사해서 다행이야. 죽는줄 알았는데, 깨어나보니 그 괴물들이 날 덮치려고 해서, 간신히 부리나케 도망쳤는데— 근데 어떻게 산 거지. 난 분명, 큿!


- 이제 무리하시지 마시고. 지금도 밖은 위험하니, 불편하시겠지만 제 품에 꽉 붙어있으시길. 아직 회복이 덜 됐을 테니. (펄럭)


- 잠만, 그건 『수피아의 기적』···· 설마 이걸 써서!


- 설명은 나중에 꼭 드리겠소. 어떻게든 꼭 살아남아서 갈 텝. 가, 가겠습니다! (쓱)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있어, 억지로 흘리지 않고 꾹꾹 참는 모습이, 이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런 재회의 현장인지 일깨워준다. 합류한 요정을 가슴에 품고 음유시인은 허공에 퍼져가던 애환(哀歡)의 팡파르를 제쳐두고 마지막 길목에 들어선다. 다그닥 다그닥. 점점 근접해질수록 빛이 희미하게 커져감에 따라 내부는 폐광의 이미지보다 막 무너진 건물 내부와 가까웠다. 길도 상당히 복잡한지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었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없이 어딘가에 멈춰선다. 보고있던 손등을 내리자 펼쳐지는 광경은, 천장과 대지를 크게 이은 두꺼운 콩나무 한그루를 중심으로 저만치 떨어져서 보고있는 몬스터들. 그리고 그들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 이게 몇년만인지. 그래, 불안했겠지. 그동안 마음대로 안되서 꽤나 노했을테니.


- 크르르르르···. 【LV.48/???】


- 안심하시오. 이제 그 불안에 떨리는 눈을 감겨드릴테니. (철컥) 결착을 내주지, 호브 나간.



[호브 나간 - 거적(巨賊) 몬스터 / LV.30 - 35]

나간들의 수장이자, 나간중에서 가장 강하고 욕심이 많은 보스 몬스터.

보통 어린아이 키에 외소한 체격을 지닌 일반 나간들과는 달리 성인의 신장을 능가하고 다부진 육체를 가지고 있어 쉽게 처치가 가능한 나간들보다도 훨씬 위협적이다. 나간족 무리당, 단 한마리 씩 존재하며, 그들의 중심에 서서 무리들을 이끌며 생활한다.


지금 보이는 것이 저 몬스터, 『호브 나간』. 확실히 수마리의 요정과 나간들 사이로 풍기는 자태로 보스 몬스터란 걸 즉각 알 수 있었다. 거칠게 숨결을 내쉬어대며, 뚤린 천장 틈 사이로 내리쬐는 옅은 빛줄기에 흉측한 외형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곧바로 달려들지 않는다. 곁에 서있던 몬스터들도. 마치 틈을 노리는 수장과 명령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는 수하처럼. 예그리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주로 인적이 드문 폐허나 폐광, 던전등에 깊숙한 곳에서 자리잡고 있으며, 가끔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있지만 경계가 심해 대개 출몰하는 일이 적고, 직면해도 먼저 공격을 가하는 일도 만무하다. 단, 자신이 정한 범위 안으로 들어올 시,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였다. 몇보 걸은 예그리나에게로 순식간에 달려드는 나간들을 바로 반응하는 그는 높이 박차올라 기습을 피했고, 이번엔 공중으로 다가오는 요정들에게 탄환을 두여발 쏘아맞혀 적들을 막아섰다. 이미 이럴거란 걸 전부 예상한듯이 재빠른 견제로 그들에게 반격을 가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적들을 손쉽게 대적하자, 갑자기 거대한 사방팔방으로 율려퍼지더니 그의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적으로 인지한 상대를 향해 드센 완력과 뛰어난 속력으로 부딪쳐 온다.

호승적인 성격이라 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수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그림자를 피해가자 뻗어오던 날카로운 발톱이 지표면으로 내리꽂힌다. 그 발톱의 주인은 거적(巨賊) 호브 나간. 뒤이어 휘몰아치는 연타에 마갑의 발굽을 굴려 속속히 피해가는 예그리나. 하지만 머리카락 끝이 발톱에 스쳐 잘려나갈 때 그가 상대하기는 벅찬 상대였단 걸 암시해온다.



하지만 직접 나선다해도 수장답게 무리들을 선동하여 대적하기에 뒤로 물러서 있는 경우가 잦다.

무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으로서 바깥일도 거의 졸개 나간에게 시키는데


도저히 속공을 멈출 기미가 안 보이는 호브 나간에게로 폭발탄(아크로 드 로즈)을 날려보지만 잠깐 공격을 멈추는데 그치고, 아랑곳하지 않게 전투를 다시 재개한다. 그때 지켜보던 적들은 눈 깜짝할 새에 달려들어, 그는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꿋꿋이 대항한다. 하지만 체력은 점차 깎여가지만, 그렇지만



사리사욕이 가득하여 도적질까지 일삼는다. 특히 요정들이 타깃이며 따라서 요정족과 나간족은 서로 적대관계에 놓이게 된 거지만, 기생 관계에도 속한다. 이유는 스스로 생식이 불가한 그들은 요정이 품고있는 ‘씨앗’으로 하여금 생식하며 수장이 이를 관리한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의 퇴치보다 그들이 우릴 의식하며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이유, 뒤에 크게 솟아나있는 콩나무를 소멸시키는 게 급 우선이었다. 저것이 수십년동안 요정들을 향해 다가오려던 암영의 원초이자, 양산의 근원이었다. 그렇기에 불온한 기운들을 거둬드리려면 저걸 파괴해야 되는데 빈틈이 없다. 역시 무리였던 걸까···!



 라락—!



“요, 요정님—!!”


“내가 주위를 끌테니 그사이에 어서—!!”



그의 품자락에 튀어나온 자그마한 생명이 날개를 저편으로 날아올랐다. 작은 빛을 쫓는 가여운 그림자가 눈길을 돌릴 때, 이상의 읊조림 없이 한눈 판 호브 나간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머리 위에다 발포, 철창이 내려오기전에 반발력으로 회피, 포획, 마침내 가둬두는데 성공한다. 무수히 쏟아지던 난타와 비수, 숨막히는 기류 속에서 호브 나간은 철창을 부수고 금방이라도 나올 기세였지만, 그렇다면 계획대로다. 왜냐면 한눈팔고 있는 적의 뒷편으로 이전부터 그의 갑옷 위에서 칼날을 숨기던 용사가, 철장 안으로 검을 드러내는 순간이니까. 동시에 그도 종장의 탄환을




철컥, 철컥. 장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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