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의 시 11선이 꽤나 반응이 좋았기에 이어서 수필, 소설에 대해서도 한 번씩 적어보려 함.

두 번째 주자는 어찌저찌해서 수필이 되었음.

사실 수필은 뭐 평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솔직히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이나 작자의 솔직 담백한 사상을 담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수필이기 때문에 딱히 잘 썼다, 못 썼다가 구분되지 않는 장르라고 생각함.

다른 사람의 삶의 경험이 여실히 담겨져 있기 때문에, 비록 시보다 선정된 작품 수는 적을지언정 나는 각각의 작품에서 시 보다도 훨씬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얻어갈 수 있었음.

그러나 그 중에서 주제가 나에게 더욱 더 와닿았던 그런 수필들 몇 가지를 꼽아서 이곳에 나름의 한줄평을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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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멋진 글을 쓰고 싶어 - @아린#18211772


올라오기는 시로 올라왔으나, 내용 자체가 수필에 더 가깝기 때문에 수필로 분류함.

내가 글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것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크게 서너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죄와 벌을 읽고서 "나도 저렇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쓰기 시작한 것도 있음.

나에게는 아직 그 잔혹한 결과가 면전으로 들이밀어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어쩌면 내가 그냥 너무나도 자명한 그 결과에게서 도망치는 것일수도 있겠지), 이 수필은 나와 비슷한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사람이 이런 결과를 마주하고, 또 그것으로 좌절하는 과정을 여실히 담았기에 더욱 더 가슴에 와닿았음.

'어린 날 한 줌 동경의 대가는 너무나 비쌌다'

이 한 구절이 정말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어중간한 재능은 저주다 - @밥자루


딱 봤을 때 바로 위의 수필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

사람이 어중간한 재능이 있을 때, 주변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더 재능이 있어서 나름의 자신을 갖고 있지만 사회 전체와 비교했을 때는 한낱 범재일 뿐이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본인이 깨달았을 때.

정말 그 충격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 같음.

"내 천직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이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월등히 더 잘 한다고?"

정말 세상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일 거임.

공부나, 그림이나, 글쓰기나, 체육이나 모든 것에서 자기가 경험하는 사회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자신보다 잘해 보이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이고, 그런 때에 얼마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관철해나가는지, 또는 안 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얼마나 빠르게 정신 차리고 다른 길을 물색하는지가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함.

그 길이 무엇이든 간에.

이 글의 작자처럼 그래서 나도 격려를 잘 안 함.

'내가 어중간하게 격려를 했다가 저 사람이 패망의 길로 빠져들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항상 있어.



지식과 재능, 가난과 사랑 - @침착친절치의


작자의 어머니가 저렇게 좋은 분이시라니, 축복받으신 겁니다.

"엄마는 열심히 살았구나. /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구나. /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너무 좋아."

나도 엄마에게 저런 말 한두마디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우리 엄마도 이 글의 엄마처럼 나 하나 키우느라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겪어오셨을텐데.. 

나는 저지른 것이 오직 불효밖에 없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되네.

참.. 뭐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가슴 한 켠이 시려오는, 그런 가슴 뭉클한 경수필.



명작은, 전례없이 새롭되 기성언어로 기술되면서 탄생한다. - @LaidDog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 내용은 비단 창작물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함.

옛 로마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도 내용은 굉장히 애국적이고 당시 로마에 필요한 것이었지만, 원로원에게 형식적인 인준을 요청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서 막무가내로 추진됐기 때문에 그것에 원로원이 반발하여 실패할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음.

항상 모든 개혁이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틀이나 수단을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그것을 통해 시도하고, 그것이 실패했거나 그 방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실적을 거둔 이후에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본문에서 언급한 피카소나 프린키피아도 정말 똑같은 일이지.

제목부터 끝까지, 전부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없었던 중수필.



아버지는 운동권이었다 - @심해드라군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과 처자식들이 생기면 젊은 시절만의 패기를 버리고 안전하게, 보수적으로 살고자 하는 기질이 있음.

무슨 영화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영화에서 어떤 커플이 아이를 출산하고 나오자 병원까지 가지고 갔던 오토바이는 다 팔려있고 새로이 태어난 아이를 위한 세단이 준비되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음.

그것처럼, 사람은 자식이 태어나고 지켜야만 할 것들이 생기면 자신의 소신과 아름다운 청춘, 그리고 젊음을 바쳐가며 그것을 지키려고 하게 됨.

이 글 작자의 아버지도 딱 그런 케이스이신 거 같음.

작자를 지키고, 또 작자에게 좋은 것만을 보여주기 위해서 젊은 시절, 자신의 소신에 따라 과격하게 행동하던 자신은 잠시 넣어두고 작자를 위해서 작자에게 집중하신, 좋은 아버지시겠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식들 고생시키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좋은 아버지는 아니겠지.)

마지막의 익살스러운 결말에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됐음.

어느 화목한 가정의 하루라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