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묘사하기 위한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Die Knechtschaft dauert nur mehr kurze Zeit

예속은 오래 못간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1947년 4월 9일


"동원령은 전쟁이 아닙니다. 동원령은 현 상황에서 평화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전장에 나가기 전 처음으로 독일군 포로들을 봤다. 하나같이 잿더미처럼 창백한 얼굴에 겁에 질려 비트적비트적 걸어간다. 나는 놈들이 부러웠다. 놈들에게 전쟁은 이미 끝났으니까. 


1947년 5월 16일


"이 해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이다."


 해안은 참상으로 가득했다. 불을 뿜는 탱크, 담요와 잡낭 더미, 시체, 시체의 일부... 옆에 있던 동료 하나는 포탄에 몸 절반이 날아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저들은 미친게 분명하다. 우리 총구 바로 아래에서 불타는 바다를 건너 해안까지 헤엄쳐올 셈이란 말인가? 정원용 호스로 물을 뿌리듯이 기관총 총알이 위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오늘 나는 혼자서 1만 2천 발을 쏘았다.


1947년 5월 17일


"어제 독일군이 도버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밤 독일군은 헤이스팅스를 공격했습니다. 어제 밤 독일군은 브라이턴을 공격했습니다. 어제 밤 독일군은 포츠머스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독일군은 켄터베리를 공격했습니다. ..... 그러므로 독일은 영국 남부 전역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서식스 출신의 폴은 집에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입대했다. 성실하고 근면한 영국 남자였던 그는 동원령을 당연한 규율으로 여겼다. 독일군의 후방을 조준한 대포를 죽어라고 쏘는 심정이 이해가 될것 같았다. 그의 아내는 어떻게 됐을까? 나치 놈들에게 잡혀갔을까? 아이들은?


1949년 6월 24일


"독일 놈들아, 피켈하우베를 네 입속에 처박아주마!" 


 대포야말로 전투의 승자였으며,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가장 무시무시한 상처를 입히고, 가장 큰 두려움을 자아내는 무기였다. 폭발력 강한 포탄이 계속해서 날아드는 가운데 무력하게 엎드려 있다 보면 살아남은 사람조차 미쳐버리곤 했다. 아! 저 포화 속에 나쁜 사람들이 들어가 버렸으면 한다. 앨런 브룩도, 영국 총리도, 롬멜도, 히틀러도, 그리고 나를 세상에 내놓은 내 어머니조차도! 나도 미쳐가나 보다.


1947년 4월 29일


"그의 이마에 뚫린 다이아몬드 모양 구멍으로 뇌가 약간 흘러나왔다. 안구는 아래로 매달려 있다."


 콜린은 바리케이드에 꼭 붙어 앉아 시체에 꼬인 구더기와 검정파리를 바라보았다. 몹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그는 고향에서 낚시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차가운 강물에 맥주를 담가두고, 낚싯바늘에는 미끼를 꿰어 던진다. 그렇게 가만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면... 시체를 보고 그런 상상을 했을까? 설마! 순간, 놈들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의 몸뚱아리는 눈 깜짝할 새에 산산조각났다. 


1947년 7월 30일


"만일 이 섬나라의 장구한 역사가 끝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자기 피에 질식하여 땅바닥에 거꾸러진 후의 일일 것입니다."


 어머니, 절망적입니다. 모두들 아무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앉아있는 니스던 거리의 바리케이드에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병사들로 가득하지만 아무도 그들을-처칠의 표현을 빌리자면-'나치에 찬동하는 제5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분대의 4분의 3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병사는 7명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아직 저를 죽일 독일 총알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겠죠? 


...그는 이렇게 멋진 표현을 발견했음을 자랑스러워 했다. 여기까지 써 내려간 그도 그날 밤 전사했다. 증언에 따르면 그를 죽인건 영국제 .303 브리티시 총알 열두발이었다.


1947년 8월 2일, 대영제국은 독일군이 니스던을 점령함으로써 패망했다. 역사에 패배자로 기록된 정치인들과 영국 왕실은 이제 그 가치를 잃은 '홈 플릿'에 48만명의 국민들을 싣고 캐나다로 도망쳤다. 히틀러는 이 날을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불렀다. 이 상징적인 사건은 세계 정복 전략의 승리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