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Knechtschaft dauert nur mehr kurze Zeit

예속은 오래 못간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노인이 죽었다. V-B 데이, 전승기념일 전날이었다.


먼저 서술자를 밝혀 두자면, 나는 그 노인의 심부름꾼이던 아이이다. 노인은 갓난아기처럼 머리가 벗어졌고, 배는 불뚝하게 나왔다. 외출할 때는 옛 영국 해군 정모를 쓰거나 양키 모자를 챙기기도 했고, 집에서는 보일러공 의상처럼 상하의가 붙은 '슈트'를 입었다. 어떨 땐 그저 목욕 가운만 걸친 채 손님을 맞으면서 "내가 자네에게 숨길게 뭐가 있겠나?" 하면서 웃음지었다.


그는 여든 살이 훌쩍 넘었지만 몇년 전 뇌졸중으로 생긴 가벼운 경련 외에는 다른 병증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 병이라면 병이었을 것이다. 고집 세고, 불같이 성내고, 때로 울보가 되는 귀찮은 성격에 친구는 있을까-본인 말로 친구들은 다 총살당했단다-싶었다. 축구나 크리켓(요즘 이것도 인기가 시들하다)같은 스포츠를 즐기지도 않았고, 재미삼아 던지는 농담도 대개 재미없거나 근거없이 여겨지는 이야기 뿐이었다.


노인의 집은 런던 교외에 있었다. 노인의 집 역시 19세기에 날림으로 지어진 건축물으로 밖에서 보기에는 좁아 보였지만 실내는 여러 방이 연결되어 있고 옆 거리까지 뻗어가 꽤 넓었다. 그의 서재에는 커다란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고 책장은 대부분 역사책과 자료들로 빽빽했다.


노인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 또는 글 쓰기였다. 그는 전쟁 전부터 <영어 사용 국민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영국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는데, 전쟁 후에는 수치스런 두 장을 추가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내게 페르시아에서 런던으로 보내던 전보 요금이 얼마인지 묻거나, 정말 소나무 뿌리에서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들을 묻곤 했다. 새벽 2시까지 '취미 생활'을 하며 심부름꾼을 괴롭히던 귀찮은 늙은이였다.


언젠가 나는 노인에게 전쟁 전에 살던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우닝 가 10번지."


...그날의 화제는 '위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노인과 나는 체커스의 유명한 언덕으로 소풍을 가서 이야기했다. 거의 마무리된 원고의 제목을 보며 내가 물었다.


"올리버 크롬웰이 누구죠?"


"위인이지. 너 역사 공부를 게을리 하는구나."


"그럼 윌리엄 3세와 메리 여왕도 위인이에요?"


"그렇지."


"존...처칠 경은요?"


"가장 위대한 영국인중에 한명이지. 장의 제목은 왕의 이름이나 위인의 이름으로 짓고 있잖니. 그럼 마지막 장의 제목은 뭐가 좋겠니? 어디 들어보자." 노인이 자랑스레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요! 히틀러 총통은 위인인가요?" 노인이 평소에 히틀러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히틀러 총통에 대한 한마디의 칭찬을 기대했다.


"천만에! 그는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 그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옛날 이야기를 해주마. 혹시 시사에 관심이 많니? 이제 현실에 눈을 뜰 때란다."


"누나는 무척 좋아하지만 저는 별로."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래전 일이야. 영국과 독일은 동맹이었단다. 러시아가 핀란드와 폴란드를 침공하자 뜻밖에 독일이 재빨리 전쟁에 발을 들였거든. 대영제국 군인들은 전쟁의 처음 이틀을 빼고 내내 전장을 지켰지. 독일이 러시아로 공격해 들어갈 때도 동료 독일군과 모스크바까지 진격했어. 러시아 지도자가 유능한 장군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도망치기 바빴던 거야. 


무르만스크! 레닌그라드! 민스크! 키예프! 스탈린그라드! 모스크바! 아르한겔스크! 나폴레옹의 대육군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글쎄, 독일군은 6천 5백 대의 티거 전차로 눈으로 덮인 들과 축축한 늪지를 돌파했어. 전쟁해군의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제트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수백 발의 로켓이 러시아 공장을 두들겼지. 


경제 대공황에 이은 어려운 시기였어. 36년인가 7년인가... 성숙한 금융시장과 정부재정이 나란히 붕괴하자 불황이 덮쳤어. 식료품점의 물건이 동나고, 군비도 크게 줄어들었지. 거리에 실업자와 전선에서 돌아온 상이군인들이 넘쳐나는 시대였기에 호의를 베풀던 독일은 영국의 든든한 친구로 여겨졌어. 


하지만 나는 독일이 해협 건너를 넘보고 있으며, 히틀러가 게르만 우월주의, 반유대 인종주의적 망상에 빠져 많은 사람을 학살할 것이라고 주장했지. 그때 나는 잡소리만 해대는 귀찮은 늙은이 취급을 받았어." 노인은 시가 한대를 빨고 이야기했다. 노인은 아무 때나 시가를 피우는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어서, 평생 20만 대는 피웠다고 말한 정도였다.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속은 거야. 유럽을 스탈린에게 넘겨주는 것보다 히틀러에게 넘겨주는 게 수십 배 더 위험하다는 걸 몰랐지. 러시아가 항복하자 독일은 프랑스로 칼을 돌렸어. 내 말이 맞았던 거야. 그래서 내가 다우닝 가로 이사했지. 전쟁이 시작됐어. 


아르덴 숲을 장갑차로 통과한 독일군은 낫질하듯 프랑스군을 와해시켰고 러시아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밀어붙여 32만 8천여명을 해안에서 전멸시켰어. 알겠니? 이놈아, 무려 32만 8천 명이라고!" 


"전쟁은 학교에서 배우잖아요. 롬멜이니 만슈타인이니 지겹고 어려운 이름들을 꼭 외워야 해요? 그 내용은 전승기념일에도 틀어주는데요!" 나는 항변했다.


"이놈아, 내가 말했지. 나는 혜안을 지닌 예언자라고!" 노인이 킬킬댔다.


"내가 <역사> 를 쓰는 이유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에도 언젠가 정의가 주목받게 됨을 알리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우린 영국인이다. 비록 불쌍한 당나귀꼴이 되긴 했지만, 패전이라는 실수로부터 배우는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독일 놈들이 V-B 데이라고 크게 떠들어도 우린 그래선 안되는걸 알잖아." 그리고는 시가를 물었다.


1972년 5월 런던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TV에 나와 손을 흔드는 늙고 뚱뚱한 저항군 지도자의 말보다는 테이블에 뛰어올라 소리치는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은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모든 나라의 승리입니다, 대의의 승리입니다, 자유의 승리입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우리는 이보다 더 위대한 날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당이나 계층의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 대영제국 전체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섬에서 독재자의 폭거에 맞서 칼을 뽑은 최초의 국민이었습니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영국 병사들은 며칠 밤을 쉬지 않고 위험한 바다를 건너, 33만 8천 명의 사람들을 옮기며 구조해 냈다.'


'히틀러가 잿더미로 만들겠다던 런던에서 영국 국민들은 꿋꿋이 버텼으며, 독일은 영국을 굴복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노르망디에 감행한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프랑스 전역을 탈환하였으며 히틀러의 몰락도 시작되었다.'


'1945년 5월 8일은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날이다. 버킹엄 궁전에서는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후가 총리와 함께 발코니 앞에 나와서 승전을 축하했다. 총리는 승전을 영국 국민들에게 바쳤다.'


일어났어야 했으나 일어나지 못한 건지, 일어나지 못했어야 했기에 일어나지 못했는지 모르는 역사의 변곡점들이 나의 눈앞에 흩뿌려졌다. 혼란스러운 생각에 노트에 적힌 정갈한 글씨가 덧씌워졌다.


'네가 어떤 세계를, 어떤 시대를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기억해라. 이 세계에 언제나 어둠만이 있는 것은 아님을.'



노인이 죽은 다음 날, 영국인들은 하켄크로이츠와 플래시 깃발을 들고 피카딜리 서커스부터 런던 거리를 메웠다. 기념일은 상류층에게 재앙과도 같은 날이지만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는 즐거운 공휴일이다. 거리의 거대한 디스플레이에는 게르마니아 의사당에서 연설하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모습이 비쳤다. 윈저 궁에 모여든 군중들은 에드워드 국왕과 심프슨 왕비를 보고 환호했고, 에드워드 모즐리 총리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주인을 잃은 노인의 집에는 조용함만 감돌았고, 조문을 오는 손님도 드물었다. 부고 기사도 다른 많은 이들의 소식과 함께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와 <타임스> 지 6면에 실렸다.


노인은 니스던 레인의 조용한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는 이러했다. 


WINSTON LENARD SPRNCER-CHURCHILL 

November 30, 1874 ~ May 7,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