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 https://arca.live/b/writingnovel/873609




 같은 일상 같은 것이 한 번 반복되고 3월 4일 목요일이 되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제 슬슬 친해진 무리가 있는 지 우리 반은 삼삼오오 모여서 떠든다. 오늘은 웬일로 민수가 일찍 와서 봤더니 자고 있었다. 앉으려니까 부스럭소리가 들렸는 지, 일어나서 하품을 쩍 하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하아아암.. 왔어?"

 "어, 응."

 "지금 몇 시냐.. 아우... 32분이면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민현, 어깨 좀 빌릴게..."

 "그게 무슨 소.."

 말을 채 이어나가기도 전에 머리를 내 어깨에 얹어버렸다. 따뜻했다. 그 몇 초 새 깊게 잠든 것 같아서 민수의 머리를 무릎으로 옮긴다. 다행히 잠에서 깨지는 않는다.

 20분 쯤 지났을까, 선생님이 오시는 게 보이길래 어깨를 살짝 툭 쳐서 깨우니 부스스 일어나려다 책상에 머리를 부딪친다.

 "아! 아야..."

 "괜찮아?"

 "어.. 일단 고마워, 덕분에 좀 잤네."

 그리고서 하품을 크게 한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한다.

 "내일 끝나고 시간 돼?"


 솔직히 영문을 잘 모른 채 서로 딱히 아무 말도 않고 금요일 방과후까지 꾸역꾸역 버텼다.

 "너네 집으로 갈까?"

 "지금 집에 아무도 없기는 한데.."

 "그럼 가자."

 학교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내 집에 가게 되었다.

 "어디 초등학교에서 왔어?"

 "성호초등학교."

 "성호초? 조금 멀리서 온 거 같은데 굳이 여기로 온 이유가 있어?"

 "뭐.. 여기 옆에 고등학교 가려고. 고등학교 때 오면 절차가 번거롭다고 해서."

 "여 옆에 고등학교가 좋은 고등학교야?"

 "어. 이 도시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라던데."

 "그런가.."

 걷다보니 벌써 내 집 앞에 도착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에 왔다.

 "뭔데 집이 아파트 꼭대기에 있냐.. 나중에 시간 나면 계단으로 올라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너무 높네."

 "운동도 적당히 해라, 키 안 큰다.. 근데 어젯밤에 뭘 했길래 오늘 아침에 그렇게 잤어?"

 "아.. 그냥 어제 좀 잠이 안 왔어서. 집 좀 둘러봐도 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가방과 패딩을 소파 위에 벗어놓고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보일러를 다시 틀고, 계절상 봄이지만 아직 날씨가 추워 몇 겹씩이나 껴입은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아직 내겐 어색한 교복을 거의 다 벗어갈 즈음에 창가에서 민수가 날 불렀다.

 "저기."

 "저기 뭐 있어?"

 "중학교 옆에 저 옥탑방이 내 집이야."

 "저기구나.. 근데 옥탑방 치고 넓네?"

 "아, 저기 건물이 내 건물이라서."

 순간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 있는 이 친구는 진짜로 소설에서 사기캐로 나올 법한 남자다.

 "너네 가족 소유가 아니라 너 소유?"

 "정확히는 우리 엄마아빠가 가지고 있긴 한데 돈이 나한테 들어와. 보통 잘 얘기 안 해 주는데 너는 여기 와서 만난 첫 친구라 특별히 말 해 주는 거야."

 "근데 굳이 옥탑방에 사는 이유라도 있어?"

 "그냥. 내가 여기 살고 싶다고 했어."

 "저 6층을 매일매일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다리가 이렇게 튼튼해지지..."

 "무슨, 저거 갖고는 안 돼. 더 해야지."

 민수는 웃어보였다. 나는 입학식 날 첫 등교할 때 이후로 가장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이럴 때는 난 진짜 운이 좋은 것 같다. 허구한 날 내기하면 만날 지더니 액땜이었나보다.

 "내일은 우리 집으로 올래?"

 "어, 왜?"

 "오늘 갑자기 예고도 없이 너네 집으로 왔으니까 우리 집도 예고 없이 가야지."

 "그러면 뭐, 내일 갈 게. 몇 시 쯤에 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는데 민수는 갑자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표정에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에, 진짜로?"

 "그 반응은 뭐여.."

 "진짜로 갈 줄 몰랐지... 사실 나 내 집에 친구 부르는 게 처음이라서."

 "읭? 초등학교에서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친구야 뭐 적지는 않았지, 근데 학교하고 집이 멀리 있어서 애들이 잘 안 오려고 해서 그렇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소파에 앉았다. 나는 폰을 가지러 내 방으로 가고 있었는데 민수가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부모님 몇 시에 오셔?"

 "두 분 다 7시 넘어서."

 "그러면 6시까지 여기 있다 가야겠다."

 "2시간 동안 뭐하려고?"

 "글쎄..? 너 즐겨하는 게임 같은 거 있어?"

 "어, 근데 나는 리듬 게임만 해서 너가 재미있어 할 지 잘 모르겠어."

 "괜찮아, 나도 RPG나 FPS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 나랑 안 맞는다고 하면 맞으려나? 아, 그리고 너네 집 와이파이 비밀번호 좀."

 "'수호랑'을 영어로 한 거."

 "땡큐."

 그 이후로 같이 게임을 했다. 나는 원래부터 하고 있었다고 쳐도 이 놈은 오늘 처음 하는 건데도 나랑 비등비등했다. '얘는 뭐 게임도 잘 하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갈 즈음, 민수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말을 시작했다.

 "여섯 시다, 이제 슬슬 가야 겠네. 내일 몇 시에 올 거야?"

 "한 12시 쯤 가도 돼?"

 "어. 새벽 3시에 와도 되고 밤 10시에 와도 돼. 나는 부모님이 서전에 출장 가 계시거든. 근데 오늘 저녁에 형이 온다고 했었나.."

 "형이 있구나.. 형은 무슨 일 해?"

 "방송 쪽에서. 근데 아마 내일은 피곤해서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올 것 같아."

 "오.. 그러면 내일 11시 반 쯤 갈 것 같은데, 괜찮지?"

 "어. 그 때 와."

 "빠이~."

 "안녕."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친구 민수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던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던 오락실 건물이 민수 건물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폰에서 진동을 내뿜었다. 확인해보니 민수가 톡을 보냈다.

 - 진짜 올 거야?

 - ㅇ

 - ㅇㅋ

 아무래도 민수는 아까 내가 가겠다고 한 말이 아직도 진담인 지 농담인 지 헷갈리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