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저는 단언컨대 신변이 캐피탈에 소속된다는 게 그런 말인 줄은 몰랐어요.


캐피탈의 지하인지 아니면 다른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이동되었습니다.


그곳엔 여자들이 우글우글했어요.


물으니 다들 TS 녀라더군요.


새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구조물.


있는 것이라곤 방, 그저 방!


심지어는 방에 가도 침대 밖에 없습니다.


책상도 없어요.



"너희들 방 전부 똑같으니까 공평하게 분배한 셈이다.

불만 가지지 말도록."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떠들었습니다.


전부 똑같이 얻어맞으면 안 아픈 것이더랍니까?


이 녀석들, 개그맨을 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아주 웃음거리니까요.


첫날은 도착하고 배정된 방이란 곳을 찾아가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선 영화관 비스무리한 곳을 갔어요.


가면 의자에 편하게 앉습니다.


팔걸이와 의자에는 구속장치가 있어, 한번 묶이면 쉽게 빠지지 않을 구조에요.


탈출을 막는단 거죠.


전원이 착석, 구속되면 커다란 스크린에서 싸구려 영화를 재생합니다.



[주인에게 반항하지 마라.]


[주인에게 버려진 틋녀는 참혹한 삶만 남을 뿐이다.]



뭐어, 뇌까리는 내용이라곤 이따위 것들입니다.


그것을 몇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강제로 보게 하는 거에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하루에 한번씩, 똑같은 내용의 반복이더군요.


돌아버리겠습니다.


이 치들은 참신함이라곤 쥐 발톱만큼도 몰라요.


단연코 영화 내용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여기선 반복, 반복, 또 반복이었습니다.


볼까요?


관람이 끝나면 식당엘 가요.



"F1163177! 나와서 받아가도록!"



F1163... 제 번호 같네요.


여기선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번호로 부릅니다.


이게 제 이름이라 하였습니다.



"F1163177 나왔습니다."


"F1163177...? 부른 건 F1153177 인데.

뒷줄로 돌아가라."



그럴 리가. F1153177은 방금 전에 지나갔습니다.


한 사람이 두번 배식을 받진 못해요.


당황스러워서 그만, 룰도 잊고 멀뚱이 바라봤습니다.


아차. 너무 오래 바라보았네요.


배식 담당인 기계가 "명령 불복, 지시어 곡해" 라며 벌점을 매겼습니다.


벌점이 쌓이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특수제작해준 가시방석 위에서요.


가시방석이라고 말 그대로 가시방석입니다.


오돌토돌한 가시들이 즐비한 방석이죠.


그걸 독방에서 하고 와야 하는데 외로움과 아픔이 섞여 흡사 간난신고입니다.


거기서 더 쌓이면 전기로 지지기도 한다더군요.


저는 거기까지 가지는 않아 잘 몰라요.


식사는 늘 같은 메뉴. 검은 빵과 물, 그리고 알약 몇개 뿐이에요.


말이 나오니 하는 말이지만 이 검은 빵이 대체 뭘로 이뤄진 걸까가 참 의문입니다.


타이어마냥 질기고, 강철처럼 단단하며, 수돗물처럼 밍밍하고, 젖은 종이처럼 눅눅하니

저희로선 고무 아니면 쇠로 만든 게 분명하다 하는 것이 나름의 지론이지만 누가 음식을 그런 걸로 만들겠어요?



"식사시간 10분 남았습니다."



15분 간의 짧은 식사를 전투적으로 치뤄요.


마치면 희고 공허한 공용 홀에 모여서 수음을 합니다.


수음手淫입니다.


통상 2인 1조로 수음을 해요.


2인 1조라 하여 서로를 손으로 범하느냐 싶겠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한명이 수음을 하는 동안, 다른 한명은 관망하고 있습니다.


지켜보면서 뭐라뭐라 떠드는 거죠.


대부분 멸시에 관한 겁니다.



"너는 애가 음탕해 글러먹었다."


"남 보는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기타 등등....


반항하면 벌점이 쌓이는 데 무슨 선택권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게 하는지.


매도하는 쪽도 매도를 거부하면 벌점이 쌓입니다. 그들도 열과 성으로 매도를 해야하죠.


비단 수음 때만이 아니라 이곳은 항상 그렇습니다.


불복하면 벌점이 쌓이죠. 겁에 질려서 하란 대로 하게 되고.


열심히 성기를 학대하다가 조수를 뿜으면 교대입니다.


2인 1조의 다른 한명이 수음을 하는 겁니다.


그동안 조수를 뿜은 사람은 편하게 몸을 쉬며 말로만 매도를 하면 그만입니다.


사태가 이러하다보니 수음 시간에는 '누가누가 빨리 조수 뿜나' 대결로 변모해갔습니다.


조수야 나중에 뿜은 사람이 혀로 핥아 청소해야 하지만 한순간 휴식이 도래하니까요.


그 다음 일정도 늘 같습니다.


'수음식' 을 두시간 동안 한 후에는 몽롱한 정신으로 인지능력에 관해 시험을 보고, 틀린 아이들은 벌점이 쌓이고, 최소한도의 운동을 시키고, 맛대가리 없는 밥을 우겨넣고....


요는 반복이에요.


어제랑 똑같이. 내일도 똑같이.


들어오는 정보는 우리가 어떤 신분이냐 하는 것, 주인에게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가 하는 것.


사람은 새로운 자극이 들어와야 그것이 비보인지 낭보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요.


비보라면 비보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는 이들도 있을 테고, 비보라서 비로소 절망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낭보라면 낭보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키우는 이들이 있을 테고, 낭보기에 비로소 낙관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종국에 뭔가 새로움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창문이라도 있었으면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계절이라도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그조차 불가능했습니다.


단지 새로움은 신입이 들어오는 순간과 기존 TS 녀가 제품으로써 팔려나가는 순간, 딱 이 둘 뿐이에요.


그나마도 TS녀, 틋녀들끼리의 대화는 원칙적으로 금지기에 떠들 수도 없고요.


처음에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늘어나던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차츰 시간도 무뎌지고 삶도 무뎌지고 마음도 무뎌졌어요.


그러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F1163177 앞으로."



벌점 집행일 줄 알고 바싹 얼어 나갔습니다.


가보니 생면부지의 남성이 있었어요.


곁에는 총을 든 로봇이 있었고요.


둘은 날 두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어요.


낯선 남자는 현금 뭉치를 꺼내 로봇에게 건넸어요.


저랑은 관계 없는 일이겠거니 하였습니다.


제게 연관 있는 것은 흰 벽, 검은 빵, 지루한 영상 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말했습니다.



"일어나."



저는 일어나기만 하고 우뚝 멈춰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가자. 내가 너를 샀다."



사내가 그리 말했어요.


샀다. 아아, 샀다!


무슨 의미인지는 몇초 시간이 경과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감금당해있던, 그저 관 속의 시체나 다름없던 생활의 종말인 것입니다.


사내가 장갑 낀 손으로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새로운 자극이에요.


흰 벽, 지루한 영상, 검은 빵을 제외한 새로운 자극.


사내는 썬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덕지덕지 쓰고 있어 어떤 얼굴인지 궁금증까지 생겼어요.


그렇습니다. 궁금증이요.


얼마 만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서 궁금증이란 게 부활한 겁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죠.


반가운 존재입니다!


저를 관에서 깨워준 은인의 이름도, 궁금증이 눈독 들이기 시작한 대상이었어요.



"저기, 이름은 혹시...."


"시설에서 교육 받았다 들었는데 의외네."



사내는 알 수 없는 말만 대꾸랍시고 던져줬어요.



"본래 호기심이 왕성했나보지?"



사내의 보충 설명을 듣고서야 제가 어떤 누를 범했는지 자각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곧바로 허리를 숙이니 사내가 하하 웃으며 머리에 손을 얹었어요.


사내의 장갑 낀 손은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제 얼굴은 땅바닥을 향하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뒷통수였죠.


정수리에서 시작했다가 앞머리를 한번 훑고 뒷쪽으로.


혼나지 않는 걸까 희망이 올라왔어요.


얼마간 그러다가 사내는 쓰다듬을 멈추었어요.


그리곤 종주먹을 뒷통수에 박았습니다.


무의식 중에 "아윽!"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어요.



"잘하자. 응?"


"예... 예!"


"내 이름 알아서 어디 쓸 거니.

이제부터 나랑 일거수 일투족 함께 할 텐데, 부정이라도 있으면 짭새에 꼰지르려고?"


"죄송합니다. 은인의 존함을 듣고 싶어서...."


"이름 같은 거 없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에요.


따지려다가 관뒀습니다.


혼이 날 게 뻔했어요.



"하긴 이름이 없으면 곤란한가."



사내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말했어요.



"정 부르고 싶으면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인님. 성격은 괴팍해도 이 분이 제 주인이었습니다.



*


<마마>



"즐기시는 건 아니다."



한참 걷고 집에서 멀어진 걸 확인한 후에 어머니가 먼저 입을 뗐다.


누구요.


주어를 떼고 말하면 어찌 압니까 어머니.


내 주위 인사들은 꼭 이렇게 대뜸대뜸 말을 하더라.



"너 없는 새에 불이 났었거든."


"집에요?"


"나는 괜찮았지만 느이 아부지가 그때 심했다 야.

숨조차 쉬는 게 힘들었으니 오죽했겄냐."



화상을 입었단 거구나.



"얼굴 뜯는 정도로 풀리질 않을 상태였고.

백방으로 알아보니 TS 인가 뭔가가 있다지 않드냐."


"그래서 TS 했다고요?"


"을매나 아쉬워하는지 모르지?

한동안은 상심해서 하루종일 멍하니 하늘만 올려봤다.

최근에야 좀 나아진 게야."


"아버지가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상갓집 분위기를 잔칫집 분위기로 만들던 아버지가?"


"그때도 밤만 됐다카믄 혼자서 소주병이랑 눈싸움하던 게 느이 애비다.

니는 느 아부지를 한사코 속 편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냐?"



뭐 거시기, 속 편한 사람이긴 하지만서두-.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그' 아버지가.


의외였고, 상상도 잘 되지 않았다.


젊어서 회사에서 잘렸을 때조차 어떻게든 된다며 하하 웃던 양반.


내가 알던 아버지다.



"호적이며, 관공서 신고는요?"


"우리가 돈이 부족하니, 힘이 부족하니.

다 알아서 했다."



장을 본 건 정작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와 아버지를 관찰했다.


내 한평생 저 양반 이상으로 많이 관찰한 인간은 어머니 뿐이라 여겨왔는데 모르는 점 투성이였다.


단지 내가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몰랐던 점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여자 아이가 되면서 모르게 된 부분도 있었다.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 이건 예전부터 있던 취미였겠지.


장기 수읽기가 약해졌다는 것. 이건 이번에 생긴 문제일 테지.


자기 전에 머그컵에 스프를 끓여 홀짝이는 습관. 이건 지금껏 내가 모르던 점이었겠지.


찬장에 올려둔 컵을 꺼낼 때 키가 안 닿아 낑낑거린단 것. 이번에 내가 모르게 된 부분이겠지.



"아버지."


"으응?"



컵 하나 꺼내고자 안간힘을 다하던 아버지.


아버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돌연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겼다.


아니, 실은 예전부터 마음 한구석의 섭섭함으로 묻어뒀던 것이었다.



"뭐 하나만 질문해도 돼요?

대단한 건 아닌데."



*


역시 ts 주의란 의미로 짤 붙임.
틋챈 쪽 원본은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