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한 화가가 생중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씨, 오늘 좋은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 네. 있습니다. 잠시 마이크를 주시겠나요."

기자가 화가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화가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는 오늘부터 마지막 그림을 그릴 겁니다. 다 그리고 나면 죽을 생각이니, 그림은 나오지 못할 겁니다. 죽기 전에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달할 물건이니까요. 만약 세상에 나온다면 그 사람이 판 것이겠죠."

"네? 잠시만요..."

"그러니, 모두에게 제 유언을 전합니다. 제 인터뷰를 보고 있을 그대에게도 말이죠. 제 마지막 그림에 붙는 그림은 파는 사람 마음대로 하되, 모두가 납득되어야할 이름으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화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1년 뒤 화가의 행방은 찾게 되었지만, 그녀는 욕조에 담긴 채로 약물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그녀의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그림이 나왔으나, 전부 모작으로 밝혀졌고 화가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 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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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는 언제나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침, 일어나 씻고 창고에서 3개의 감자를 꺼내 부엌에서 감자샐러드를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한다.
점심, 목장에서 자는 동물들을 씻기고 사료를 주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저녁, 냉장고에 들어있는 여러 식재료 중 하나를 골라 오후 8시에 먹기 시작한다.

늘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겐 항상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4년 전에 받은 이름 없는 그림을 바라보는 일이다.

휴스는 그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녀가 왜 준 것인지, 어째서 연락을 안 하는 건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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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가 목장 일을 하기 몇달 전만 하더라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이었을 때에도 늘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다만 그는 그 생활이 일마저 반복이었기에 지루한 일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뜻밖의 휴일을 가지게 되었고 그 휴일에 그는 밖을 돌아다니다 문득 눈에 들어온 전시관을 찾았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운명을 따라서 걸었는지 몰라도 그는 발길이 닿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작고 소박한 그림들이 전시 되어있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볼품없다며 비웃고 돌아갔지만, 휴스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혼란을 느꼈다.

그중 제일 혼란스러웠던 건 작은 새장 속에 갇힌 커다란 새의 일부를 그린 '괴로운 편안'이라는 작품이었고 휴스는 그걸 보며 그림을 만지고 싶어 손을 뻗었다.

그때 누군가가 휴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손님, 제 작품을 만지시려면 우선 구매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번갈아 가며 섞여 보라색으로 은은하게 보이는 머리에 여러 송이의 꽃을 장식한 화가가 휴스를 바라봤고 그는 놀라 화가의 팔을 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림을... 만지고 싶어서..."

휴스는 혼란이 가속되어 호흡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로 말하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걸 본 화가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더욱 당황한 것은 휴스였다.

그가 그림을 보고 감동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기에 지금 왜 우는 것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휴스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눈시울이 붉어진 자신을 바라봤다.
여린 성격이었던 그는 어렸을 때 울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맞고 살아와서 눈시울이 붉어진 지금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맞을 일이 없지만 맞을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워 세면대를 꽉 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벨 소리가 들려왔다.

벨 소리에 놀란 휴스는 뒤를 돌아보니 식탁 위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있었다.

그는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들려온 것은 전시관에서 만났던 화가의 목소리였고 그녀는 숨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힘들다. 겨우 시간이 나서 전화를 걸었네요. 갑자기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말이죠."

"아까 그분이군요."

"네~ 맞아요. 아까 제 그림 보고 울었던 사람 맞죠? 저는 솔직히 그때 놀랐어요. 제 그림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 사람은 많은데 정작 당신처럼 눈물을 흘린 사람은 없거든요. 처음이었어요."

"당황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갑작스레 나온 거라 어쩔 수 없었어요."

"아뇨~ 저는 좋았어요. 그런 신선한 충격이 예술가에겐 엄청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돈을 드릴 테니까 몇 달간 제 뮤즈가 되어주실래요?"

휴스는 잠시 말없이 천장을 쳐다봤다.
그가 깊은 생각을 할 때마다 하는 습관이었고 버릇이었다.

"저기요? 제 말 들으셨나요?"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 중이었습니다. 고민한 결과 저는 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뮤즈라는 건 대단한 영감을 주는 사람인데 저는 전혀 그러지 않은 일상 속 없어져도 상관없는 톱니바퀴 같은 사람이기에..."

"아아아! 그럼... 좋아요. 오늘 본 앵무새 그림은 어떠셨나요?"

화가는 휴스의 말을 끊으며 말했고 그는 전시관에 있는 그림들은 다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앵무새 그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앵무새 그림이 어땠는지 묻는 화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은 화가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는 휴스는 모르겠지만 화가는 핸드폰 너머에서 웃으며 말했다.

"아~ 설마 그 '괴로운 편안'에 그려져 있는 새가 앵무새인 줄 몰랐던 거예요?"


"그 새가... 앵무새인가요...? 제가 아는 앵무새는 전부 화려하고 밝은 새들이었는데 말이죠."

"그야 그럴 것이 제가 일부러 색을 뺐으니까요. 저는 화려할수록 흑백에 가깝게 단조로운 색들로 채우고 단조롭다면 억지로 색을 채워서 화려하게 그려서 그래요. 물론 크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크기는 의미가 있을 때만 반대로 그리죠. 그래서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어땠나요? 그 그림은."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괴롭다고 말하고 싶었죠. 제목 그대로... 그리고 뭔가 저를 보는 기분이어서 더욱 답답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새들은 새장에 입구가 있어 도망칠 수 있다는 게 편안한 이유가 아닌지...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아... 역시 휴스씨는 생각이 재밌네요. 역시 제 뮤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닙니다...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아, 그게~ 실은 휴스씨가 울면서 도망가실 때 명함 하나를 두고 가셨어요. 그래서 연락을 한 겁니다. 근데 직업이... 화가셨네요...?"

"철없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얘기는 접어두죠. 아까 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면 저는 정말로 뮤즈가 될 생각이 없기에... 추후, 명함을 돌려받으러 찾아가겠습니다."

"음... 싫어요!"

".... 이유가 뭡니까."

"저는 아무래도 휴스씨가 좋나 봐요. 역시 뮤즈로서 해야 할 역할을 독특하게 잘 해줄 거 같단 말이죠! 그러니 정했어요. 제 나름의 앙탈을 부리기로 말이죠. 조건은 간단해요. 두 달만 저랑 같이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그곳에서 본 광경들을 제게 들려주세요. 마지막 날에 제가 소감을 물어볼 테니 그때 계속하고 싶다면 제게 뮤즈가 되어주겠다고 말해주시는 거죠. 싫다면 제가 다시 명함을 드릴게요. 어때요?"

"두 달 말입니까."

"네. 두 달만 하시면 돼요."

휴스는 전시관을 찾았던 그날 회사 해고 통보를 받고 빈 시간에 떠돌았던 것이기에 두 달 동안 여행을 다닌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화가가 가지고 있는 명함은 자신에게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꿈에 관한 마지막 명함이었기에 잃어버리기 싫은 물건이었다.

"좋습니다. 딱 두 달입니다. 그 외에는 부탁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좋아요. 두 달이죠. 꿈같은 나날이 되도록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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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가 옛 생각을 멈추고 밖을 보자 일출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은 어느새 아침 8시, 그가 아침 밥을 먹을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아침을 먹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가 옆집의 문을 두드린다.

옆집의 문이 열리고 휴스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놀라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아니, 휴스 이게 무슨 일인가. 자네는 분명 아침을 먹고 30분 뒤에 농사일하러 갈 텐데 말이지."

"제플린, 미안하지만 당분간 자네에게 내 동물들이랑 밭을 좀 맡길 수 있겠나. 오랜만에 내 집을 가봐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그럼, 되고말고. 친구 사이에 뭐가 있을까. 가봐. 품삯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까."

"고마워. 나중에 값은 치를테니..."

휴스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고 4년간 두었던 그림도 같이 챙겨 옛날에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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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가 휴스씨의 집이군요!"

"생각보다 좁은 집일 겁니다. 당신 같은 화가에겐 큰 집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을 테죠."

화가를 만나 자신의 집을 소개해 주던 휴스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꽉 쥐며 기운 없이 말했다.

화가는 작은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작은 메모장에 스케치하다 휴스의 말을 듣고 휴스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엄청 큰 집이에요! 제 방보다도 더 큰 거 같단 말이죠. 영감적으로도 아름다워요."

"영감적으로 아름답다니요... 근데 왜 제 방보다 작은 곳에서 사시는 거죠? 화가잖아요."

"그야 저는 번 돈을 전부 이렇게 뮤즈 찾는 거나, 도구 같은 걸 살 때 쓰거든요. 집은 자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화가는 웃으며 계속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휴스는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말하고 싶었으나 웃으면서 그림 그리고 있는 화가에게 그다지 좋은 얘기가 아닐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 스케치도 어느 정도 했고... 그럼, 이제 저희 떠나볼까요?"

"뭐 그럽시다. 저는 그저 명함을 받기 위해서 다니는 거니까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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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자,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생긴 먼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휴스는 가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고 먼지가 쌓인 책상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물감이 굳어버린 캔버스와 캔버스에 붙은 붓이 보였고 휴스는 화가가 최근에 이곳으로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아쉬운 마음에 그 붓을 살짝 집는다.

'완전히 굳었어. 최근에 연락이 없더니 어떻게 된 거지? 그림체는 완전히 그녀의 것이었는데...'

휴스는 아직 화가가 죽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름 없는 그림을 선물 하는 것이 그 화가의 장난기가 섞인 선물이었고 그도 몇 번이나 받아봤기에 그녀의 마지막 그림 또한 장난으로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4년의 시간 동안 연락이 없던 거도 그녀가 바빠서 그런 거로 생각했던 휴스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며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요? 여기는 제 친구가 살았던 곳인데..."

휴스가 뒤돌아 바라보자 그곳에는 여행 중에 만났던 화가의 친구가 서 있었고 그와 화가의 친구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본다.

"휴스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왜 이제야 온 건가요..."

"데이시, 오랜만입니다. 언젠가 찾아오겠다는 말을 기다리다 못해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그나저나 그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친구는 4년 전에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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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어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