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창 밖에 꽃안개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희고 분홍진 색깔이 매화 혹은 벚꽃을 떠올리게 하여, 세상의 나뭇잎들이 빨강 노랑 옷 입고서 침잠하는 계절에는 때아닌듯도 뵈었다.

  그런 날에, 작달만한 방 안에서 A는 의자에 우두카니 앉아 그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으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풍경들은 본래보다 더 뭉개져 보여 더더욱 안개처럼 퍼지게 되었다. A는 세상 만사가 다 흐리게 보이는 그 창을 사랑했다. 또 어제와는 다르게 비치는 바깥의 풍경을 사랑했다. 

  A에게 있어 세상은 몇가지 객체로 실재한다. 그에게 중요한것은 그 자신과 그의 방 안에 몇가지 물체들, 책상, 의자, 침대, 책장, 책들과 예의 그 창뿐이다. 그는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했다. 그와 세상이 연결되는 통로는 이따금 집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책들속의 말들과 창 밖으로 보이는 안개같은 풍경이었다. 그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지는 몇년이 흘러, 이제는 그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도 몇 없었고, 그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은 누구도 없었으며, 더 나아가서 그는 아예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 자신도 그를 크게 자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사랑해 마지않는 몇몇가지 가구들과 일체되어 창 밖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존재하니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존재로 되어진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바깥의 무언들을 사랑한다. 아직까지도 자신을 자각하게 해주는것은, 변함 없는 레디메이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유동적인 바깥의 저 안개들이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단절, 완벽히 망각된 인간이 되어, 그는 마침내 오직 그로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장악한 것이다. 물아일체의 늪에서 붙잡은 동아줄은 그의 존재를 오묘하게 유지시킨다. 그 망각과 비망각의 틈새에서 그는 그 자신을 발명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안개와 책들로 쌓아올려 이상을 꿈꾸는것이다. A는 그렇게 생각을 지속한다.

  일념일도의 세상에서 A는 꿈꾸는것들을 현실로 현현한다. 문학을 장치로 삼아 그의 몽담들은 이야기가 된다. 꿈에서 또 다른 꿈으로 넘겨간다고도 할 수 있다. 대문호들의 글을 여럿 탐독하고 체화한 방식들을 이리저리 활용하여 활자들을 활판 위에 늘어놓는다. 그는 굉장히 다양한 문체들을 소화한다.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카뮈, 나보코프 등등 많은 작가들의 방식을 빌려 자기 자신을 서술해나간다. 그는 제법 괜찮은 작가이다. 그러나 필명을 지속해서 바꿔나가며 책을 출판하는 바람에 인지도가 높다거나 하지도 않고, 몇몇개의 책들은 그대로 현대식 검열체계에 의해 사장되었다. 그런식으로 몇몇개의 책들을 만들고 돈도 꽤나 벌던 일들은 그의 격리 생활과 함께 시작하여 몇십년이 되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에 친 커튼을 올리고 그의 엉덩이 모양대로 패인 의자에 앉아 스위치를 켜면 3초 뒤에 불이 들어오는 낡은 전등을 키고서는, 어젯밤부터 지속해온 생각의 불씨를 다시 되살려 짧거나 조금 길거나 혹은 아주 긴 글의 초입부를 적거나, 이미 적힌 글들에 첨삭을 한다.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속에서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은 사람이다. 어둠속에 갇혀 그의 안개마저도 볼 수 없게 되고 그와 일체인 가구들도 보이지 않으면, 그때가 되어 그는 몇몇가지의 생각들을 한다. 보통은 암울하고 우울한 편에 가까운, 그의 주변의 어둠만큼 어두운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그의 과거에 기초한다고도 할 수 있을터이다. 그러니까, 그의 생각들과 그를 바탕으로 하는 글들은 대부분 불행하고 괴상한 이야기들이 많다는것이다. 창 밖에 매화 혹은 벚꽃이 휘날리는 오늘도 그는 글을 쓴다. 과거에 관측했던 사람들과 사회들을 떠올리며.


  그 날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기온은 아주 낮고 온 세상이 흰색으로 가득하여 거리에는 그런 날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더욱 가득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이 있고, 어디를 봐도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A는 그런 곳에서 눈을 뜨고 눈을 밟으며 걸었다. 그는 혼자였다. 

  외톨이는 외롭기때문에 괴로울까, 괴롭기 때문에 외톨이일까. 이것은 닭과 계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해 외톨이라면 그때문에 괴로울것이고, 괴롭기 때문에 다시금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된다. 외톨이란것은, 그런 악순환 속에서 여전히 홀로 서있는 것이었다. A의 부모는 그를 보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A도 부모를 찾지 않았다. 서로 만나지 못할것을 당연하게도 알았기 때문이다. A는 친구도 없었다. 그를 아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친구라고 할것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예의 그 창으로 눈이 내리는것을 보고선 그것에 이끌리듯 밖으로 나왔지만, 그와 함께 눈을 볼 사람은 없었다. 눈내리는 길에 선 그의 주변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에겐 대화 상대가 있었다. 그는 홀로 서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A는 옆에 누구 한명 없이 길거리를 걸으며 조금은 적적해했다.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티를 낼 사람도 없었다. 그저 걷고 걸었다. 눈밭에 발을 담구고 나리는 눈에 눈길을 주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걸었다. 애초부터 목적지가 있어서 나온것도 아니었고, 그냥 눈이 좋아서 나온거였으니, 어디 갈곳이 있을리도 만무했다. 그렇게 걷다보면 언젠가 어디로 갈것인지 생각이라도 날듯이 걸었다. 풍경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의 풍경에 대해서 굉장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집안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오직 그의 집 앞만을 제외하고 모든 이웃집들은 입구부터 도로까지 눈이 치워져 있었고, 이윽고 발로 눈을 밀어두고 나와 차들이 행여나 미끄러질까 속도를 자제하고 다니는 집앞의 좁은 도로를 따라, 거의 10분 가까이 걸어서 사람들이 가득한 상가거리에 도달했다. 가로수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둘러져 있었고, 그 조명은 일제히 점멸하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미학들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 가로수 뒤편으로 지나치는 가게들의 간판들과, 가게들 안에서 모여 무언가를 먹고 사고 염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게들 중 한 가게에 있던 큼지막한 옛날 전자시계를 보고, 그는 그제서야 그날이 성탄절인것을 알았다. 그 시계는 나무가 입은 조명옷처럼 빛났고, 시간 밑에 있는 날짜 표시는 선명하게 12/25로 형광했다. A가 남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남들도 그를 알지 못한채 살아간 동안 어느새 날짜는 연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 날은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A가 집안에서 본격적인 칩거를 시작하기 일전에도,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싫어했고 나가서 얻을 수 있는것들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대대적인 연례 행사에도 마찬가지인지라, 그의 부모님, 사교적이고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던 그의 부모님은 자식이 나가지 않을것을 알면서 자신들끼리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런 사실을 제법 좋아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반가워했다. 그를 지나치게 많이 알면서 정확하게 알지는 않는 부모님이 부담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며 일이란건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어렸을적부터 공부란걸 질색해했지만, 그런 기미가 보일때마다 돌아온것은 그에 대한 질책이었지 자식을 위한 염려와는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덕분에 그는 부모님을 기꺼워하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들에 대한 대표적인 표상으로서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고 그 누가 그랬던가. 그때 A는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살아갈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었다. 정말로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일에 대한 가차없는 포기, 그것이 그가 바라는 용기였다. 다시, A의 부모님이 외출한 그날에, 몇년 후의 그날처럼 눈이 무자비하게 내리고 시야를 온갖 흰색으로 뒤덮어서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법한 그날에, 그는 자신 홀로 집에 있는것을 아주 즐기며 오래간만에 행복해했다. 그가 인간 혐오에 빠졌다고 한들 그는 그의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신세였기에,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부모님이 나갈때는 5와 6을 가리키던 바늘이 12에서 만나고 다시 돌아 5와 6을 지나서 7 살짝 위를 겹치던 때에, 그는 잠을 자고 있었고, 집에 전화가 왔다. 그의 부모님만이 사용하는 오래된 집전화였다. 그의 부모님은 의아하게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길 거부하셨고 저 옛날에 쓰던 집전화를 사용하길 고집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지갑에 끼워놓고 다니던 명함에 적혀있는 번호도 이 집전화의 번호였다. 그런데, 그의 부모님의 친구들의 전화 혹은 긴급 상황에만 쓰여질 그 전화기가 울렸다는것은, 부모님이 분명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 한참 돌아오지 않고 있는 지금이라면, 그것은 긴급한 상황임을 의미하는것이 자명했다. 그 순간의 그는 그런 생각 없이 한창 홀로하는 시간을 즐기던 중 전화가 온것을 얹짢아 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으로 걸려온 전화는 좋지 않은 소식들을 전달했다. 

  부고소식, 그러한 이야기들은 수신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곤 한다. 더군다나 예상하지 못했던 때라면 더욱이 그렇다. A의 부모님은 신세대적이고 사교적이면서도 은근히 복고를 추구했다. 요새는 흔치 않은 집전화가 과연 그것을 잘 보여준다. A의 부모님은 남들과 노는것을 즐겼고, 그 놀이라 함은 당연하게도 술이 동반되고, 과거에는 술을 마시고도 운전을 하는것이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 그 은근한 복고주의는 그러한 방향으로도 표출되고는 했다. A는 부모님이 외출한 후에 만취한 상태로도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오는것을 꽤나 많이 보았고, 그때마다 그의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악화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음주운전을 지속해오다, 그날, 하필이면 구원과 평화의 상징인 날에, 그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 듣기로는 엄청난 사고였다고 한다. 그 사교적인 마음이 어디로 가지 않아 길동무도 많이 끌어모았던걸까, 그는 그런 모욕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언젠가 책 하나에 사용되었었다. 그의 방식으로 꿈 속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나름대로 잠들어 있던것일까.

  A의 부모님은 그 이후 화장되었다. 사고 수습과 시신 발견이 오래걸렸던지라 연락이 온것도 하루가 지나서였고, 그렇게 오래걸렸던 만큼 시신의 수습은 너무나 어려워 화장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장례식날 두개의 화장 단지를 탁상 위에 내려놓고 멍하니 바라봤다. 곧 납골당으로 가든지, 혹은 A의 선택에 따라 어디론가 흩뿌려져 섞여질 잿더미들이 그곳에 담겨 있었다. 회색이라고도 검은색이라고도 흰색이라고도 하기에 애매한, 정말로 잿색이라고 밖에 표현 불가능한 색깔의 오묘한 가루들이 그 속에 담겨있었다. 그는 몇차례의 절들과 의례적인 인사들과 숙연한 분위기가 담긴 장례식, 그곳에 방문한 수많은 부모님의 친구들을 건너서 그 잿상자를 들고 나섰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납골당에 두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무작정 그걸 들고 나섰다. 지하철에 타 도심을 나섰다. 의아한 무게감을 느끼고 아무곳에나 걷다보니 그는 산에 도착했다. 그저 앞에 있기에 걸어 올라갔다. 장례식을 위한 멀끔한 정장과 구두 차림에, 양 손에는 작은 상자 두개를 들고 오르자니 힘들기도 했지만 그는 오르고 올랐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 그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것을 느꼈다. 12/31,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일년의 종말을 맞이하면서, 그는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고 흰색도 검은색도 회색도 아닌 잿색의 가루들을 흘려 보냈다. 그날엔 눈이 왔다. 성탄날에 오던 그 눈들보단 적지만 충분히 왔다. 산 위에 오르니 때는 어둑해졌고, 새벽녘이 되어 이따금 정상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새해의 해를 바라보러 온 사람들이었을것이다. A는 눈들을 바라보았다. 정상에 서서, 구름에 한층 가까이 올라서서 눈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모님의 잿가루도 눈들과 섞여 그 오묘한 색들이 희석되었으리란 생각을 했다. 분명 A의 가족관계는 좋지 않았지만, 이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살아갔던 시절은 애정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잿더미의 오묘한 색깔처럼 그의 마음도 오묘하게 울적했다. 그날엔 눈이 왔다. 검은색도 흰색도 회색도 아닌, 오묘한 잿색의 눈이 왔다.


  A는 일어나자 마자 엉덩이 모양대로 패인 의자에 앉아 저 매화인지 벚꽃인지 모를 흰 안개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있었던 일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눈오는날 거리를 걷던 그 일을 생각하니 그 날 보았던 나무 조명과 시계가 떠올랐고, 시계 밑에 있던 날짜의 선명함이 떠올랐다. 그 날짜를 보자니 그보다도 한참 오래된 부모님이 죽던날, 그리고 산에 올랐던 날을 생각했다. 거의 십몇년이 더 흘렀을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성탄절에 죽어 새해에 흐려졌다. 그는 그 이후로부터 지속적으로 흐려지고 있었다. 키치의 감옥에서 익숙한것들에 파묻혀 살다가 오랜만에 부모님의 생각을 했다. 그는 창가에서 눈을 떼고 익숙한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달력에 눈이 맞았다. 부모님의 친구였던 목사님이 매해마다 전달해주는 달력이었다. A는 신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그 달력만큼은 항상 걸어두었다. 십자가 하나 없는 그의 마음 대신이다. 항상 물체와 일체해있는 그에게 방 속으로 물체 하나가 들어선다는건 마음속으로도 침투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달력에서 찾아 발견한 오늘의 날짜는 공교롭게도 12/27이었다. 그도 모르는 사이 연말에 이르렀다. 밖은 지금 겨울이라는 의미였다.

  그제야 그는 창 밖에 흐드러진 꽃안개의 정체를 알았다. 지금은 가을이 아니었다. 희고 분홍진 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눈이었다. 

  떠가는 눈안개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는 이제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을 떠올렸다. A는 갑작스레 마음이 울적해지는걸 느꼈다. 정말로, 가족간의 연결은 끊이지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일과 마침내 사라진 날의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아침에서, 그는 흐린 창 밖으로 떠가는 눈송이들을 보았다. A는 어쩌면 자신이 참으로 평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 안의 자신의 방에서 나가지도 않으며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꿈속에서만 활동하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칭찬은 못받더라도 피드백이나마 받고싶다

엽편 길이지만 완결낸 첫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