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어 조각글 연성 챌린지 - 00. 단어 모집


조각글 목록





제시어 : 망각, 겨울, 원고지


창 너머엔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거리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더 이상 함께 걸을 수 없겠다고 말했던 그날의 풍경이 저 멀리서 다가옵니다.

가을은 벌써 지났고, 이제 슬슬 옷장 속에 묵혀둔 두꺼운 코트를 꺼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얇은 옷차림으로 책상 위의 흰 종이를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날 그 곳에 멈춰 서서

나와 당신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했었던 것들의 조각을 더듬고 있습니다.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초침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완고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토록 허무하게 이별해야 했을까요. 끝끝내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었을까요.

눈앞의 공백 만큼이나 허전하게 비어버린 마음이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잊혀질까요.

당신에게 나는 의미있는 호흡이자 맥박이었을까요.


잊고 싶지 않습니다. 잊혀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 일지라도.

결국 헛된 시도로 끝나버릴 행위임을 알지라도.


그렇기에 나는 계속 떠올리고, 되뇌어야 할 것입니다.

조각난 기억들 사이, 아직 살아숨쉬는 감정의 얕은 호흡을 더듬으며

나는 눈앞의 작은 칸들에 그 흔적들을 옮겨 적습니다.


잊혀진, 잊혀져 가는, 끝내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