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었던 What if 소설입니다. 소설은 시 보다 쓰는 것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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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

운수 좋은 날에서 김첨지가 남대문 정거장에 가지 않고 곧장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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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수중에는 이미 팔십 전이 있다이 돈이면 설렁탕도 사 줄 수도 있고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 살 먹이)에게 죽을 사 줄 수도 있다이 이상의 행운을 앞에 두고 있으니 조금 겁이 났다

 

어째갈 마음이 없는 거요?”

 

하고 학생이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일 원 오십 전이 더 있으면 설렁탕 보다 더 좋은 것도 사 갈수 있을 것이고더 좋은 것도 먹일 수 있을 것 인데 왜인지 썩 내키지 않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내가 이렇게 아픈데!”

 

김첨지는 주저하였다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아니면 괜히 오라질년하고 툭 뱉고 나온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까?

 

미안합니다남대문 정거장 까지는 못 갈듯 합니다대신에 요 근방에 다른 인력거들이 서있으니 그걸 타시지요.

 

참나그럴 것이면 진작 말을 하던지괜히 시간만 버렸구먼.”

 

정거장까지의 거리가 시오 리가 넘고진날인 탓을 핑계 삼아 김첨지는 학생을 보냈다일 원 오십 전이 아쉽기는 하지만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김첨지는 궂은비를 맞으며 설렁탕을 사러 갔다우중에 설렁탕을 사러 오는 사람은 잘 없거니와 김첨지의 얼굴이 초상 난 사람의 얼굴같이 보이는 탓에 설렁탕집 주인은 퍽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뭘 드리우?”

 

설렁탕 하나 주시오펄펄 끓여서 집까지 가져가도 김이 나게그리 주시오.”

 

 

설렁탕집 주인은 이상한 사람인양 김첨지를 보는 듯싶다가도손에 꼭 쥐고 있는 돈을 보고는 배가 얼른 고픈가 보다 싶어 그러려니 했다

 

김첨지는 궂은비를 맞으며 서둘러 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달음박질치는 와중에도 설렁탕이 쏟기지는 않을까계속 신경을 쓰면서 달음박질을 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품속의 뜨끈한 설렁탕을 안고 집 대문을 열었다

 

이 난장 맞을 년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안 해이 오라질년!”

 

괜히 고함을 친 것은 불길한 침묵에 지레 겁을 먹은 김첨지가 왈칵 쏟아 버릴 뻔한 설렁탕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아침에 집을 나설 때 했었던 퍽 좋지는 않은 말이 미안한 마음에 되레 고함을 친 것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내가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김첨지는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고함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인가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소리를 침과 동시에 누운 이의 이불을 덥석 벗겼다개똥이가 그 틈에서 물고 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우는 것이 아니라 우는 표정을 할 뿐이다.

 

오라질 년집에 누워있으면 애라도 잘 돌볼 것이지도대체 하는 일이 뭐란 말이야.”

 

김첨지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설렁탕을 살 때 같이 산 죽을 개똥이에게 먹였다온종일 먹은 것이 없어 입맛만 다시던 아이의 입에 침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영 보기 좋지는 않아도김첨지는 꿀떡꿀떡 잘 넘기는 개똥이가 지금만큼은 대견했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의 아내는 아침에 김첨지에게 했었던 말을 되뇌듯 읊었다

 

설렁탕이 먹고잡대서 설렁탕 값만 벌고는 바로 들어왔다는 걸 보고도 그런말을 하나!”

 

김첨지는 게슴츠레 뜬 눈을 바라보고는 설렁탕을 아내의 앞에 두었다.

 

젠장맞을 년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해서 일찍 들어와도 한다는 소리가 그것뿐이야.”

 

뽀얀 국물에 듬성듬성 썰어 넣은 고깃국을 바라보니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쿨룩거리는 아내의 입에 먼저 떠 넣어 주었다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김첨지의 마음 한 구석에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놓여있는 것도 한몫했다.

 

눈 바루 뜨고 먹어.”

 

혹여나 목에 사레라도 걸릴까 하는 마음에 소리 내었지만여간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설렁탕이 맛있네요.”

 

오라질년내일은 의사에게라도 가보던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