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토테미즘부터 현대의 기독교까지.

종교는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사용하는 기원전과 기원후부터가 기독교의 예수 탄생이 기준으로 삼은 서방의 세기 계산법이니까. 


종교는 공통점을 만들었다. 공통점이 생긴 인류는 규합할 수 있었고, 서로를 지킬 수 있었다. 빗방울이 바위를 깎듯 인류는 서서히 발전했다. 그리고 현대 종교의 의의는 윤리관 전파로 남게 되었다. 



더 이상 신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된 인간들은 허무주의라던가, 실존주의라던가, 저들의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종교가 남아있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보편적으로 선과 악을 정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신은 선하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뭐, 당연한 소리다. 신님이 선하시니 악한 우리를 벌하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그러니 죄를 짓지 말고 회개하며 이웃을 사랑하자,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 싫었다.


내가 악하고 말고를 신이 왜 정하는가. 애초에 진짜 선과 악은 무엇인가. 존재는 하는가?


끝없는 꼬리물기식의 의문은 외부의 충격으로 멈췄다. 



“아- 나는 너희 말로 전지전능한 신이다.”


대뜸 하늘에 나타나 벼락을 내리고 물을 가르는 퍼포먼스를 보인 그것은 자신이 신이라 말했다.


버스기사의 다리 근육이 수축했다. 버스는 이윽고 멈췄다. 내부의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눈 앞에서 벼락을 내리는 테러리스트가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겠지.


하지만 몇몇 종교인으로 보이는 자들은 자칭 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문답을 요청했다. 난 그 꼴이 꽤나 우스워 그들 뒤에 숨은 채 구경했다.


“신이시여, 그대는 여호와십니까?” 

“알라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의 질문 이후로도 여러 신들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자칭 신은 묵묵부답이었다.



쾅–!



그렇게 종교인들은 한줌의 재가 되었다. 어째선지 안면 근육이 통제되지 않는다. 기괴할 정도로 뒤틀려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버린 것이다. 


“너, 다음에 보자꾸나.”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그의 정보는 대서특필되었다. 뉴스에서도 그의 모습만 나왔는데, 하필 내가 미친듯이 웃고 있는 장면도 찍혔다.


하지만 나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가족도, 지인들도 없다. 그러나 썩 불쾌한 기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방송사들끼리의 경쟁에 희생 당한 내 얼굴은 온갖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이건 은근 나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대관절 나에게 해명을 부탁한다며 방송국에 초대한 아나운서는 괴물 보듯 나를 봤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거지. 


‘아- 신님- 이 놈좀 죽여주십쇼-’


펑-


아나운서의 머리가 두부처럼 말랑해졌고, 잔뜩 으깨졌다. 


“마음에 드느냐?”


어디서 누가 말했는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살피니 나 말곤 아무도 못 들은 눈치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에 뉴스를 볼 때 신이 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네 놈 말곤 내 전언을 듣지 못하더군“


‘저 말입니까?’


“그래”


대뜸 신의 대리자가 된 나는 상황을 정리했다. 신과 인간들 사이에 매개체, 그것은 아주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나다. 즉 나는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다.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쾌락이 밀려온다.


•••


“예, 여러분 지금부터 신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시록이 방영되고 있었다.


“난 전지전능하지만 너희가 알고 있던 신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허구다.”


충격에 빠진 인간들이 눈에 띤다. 뜨문뜨문 기뻐하고 있는 인간들은 아마 예수 헤이터들이겠지.


“시쳇말로 심판을 내릴 마음도 없다.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 말에 대다수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삶 자체가 흔들리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왜 나온거죠?”


신이 말씀하시는데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질문을 던지다니. 죽어 마땅하다.


‘신님 죽일까요?’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괜찮다는 뜻을 담은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나온 것은 그저 재미다. 너희가 즐기는 게임과도 같지.”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몸 전체가 불수의근으로 바뀌고 있다. 신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일까. 허나 그 그릇이 된다고 생각하니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것은.


“인간들은 왜 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하는가, 스스로 고찰할 순 없는 존재인가?” 


신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난 번개를 내리고 대해를 가를 순 있다. 허나 인간들의 내면세계는 모른다. 그건 너희들의 고유한 소유물이니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존재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깨달음이 주어졌다.


“살고 싶은대로 살아라. 존재하는 것에 이유는 없다. 다만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에는 이유가 있지. 그러니 목표를 가져라. 스스로 삶의 가치를 만들고,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라.”


연설이 끝나고, 신의 모습이 변했다. 돼지, 닭, 소, 문어, 그리고 지구의 것이 아닌 무언가. 그리고 그것은 나즈막히 말했다.


“끊임없이 본질을 의심해라, 그리고 난 사실 신이 아니다. 너희보다 더 발전한 문명의 생명체일뿐이지.”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사라졌다. 


•••


그 사건이 있은 직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간다.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그러나 존재의 단초를 얻은 인류는 분명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