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몇 년의 시간 동안 사회에서 송장처럼 지내왔던 나인지라, 엄마는 우울증 치료 클리닉을 다니더니 드디어 무언가 해보려는 건가 하며 말문을 막아버릴 정도로 얼굴을 밝게 빛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을 꼭 해야만 했다.

나는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겁쟁이이므로.

"나... 죽고 싶어."

그 순간, 엄마는 밝던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리고 눈을 크게 떴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괜히 죄책감만 더 드는 게 당연하잖아. 엄마...

이 일을 한다고 해서 후회 안 한다는 보장이 없기는 하지만, 불안을 갖고 살아갈 것이란 보장은 있잖아.

어쩔 수 없어.

엄마는 충격을 받은 얼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충격을 받아 힘도 없는지 문을 닫다가 만 채 그대로 침대에 엎어지는 소리가 났다.

사실 엄마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지금, 자살률은 끊임없이 높아지고 이에 대해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니까.

대기 중의 산소가 아닌 질소를 마시며 품격을 유지하며 죽는 게, 그들이 가진 그나마 특권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당연히 인간은 살아갈 권리가 있지만 그런 권리가 있다면 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나는 하지 않는 쪽에 홀로 서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 후로 엄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아니, 사실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흔히들 말하는 제3의 눈, 마음의 눈은 늘 나를 향해 있으니까, 거들떠보지도 않는 만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던 셈이다.

나는 그런 엄마를 알고 있지만, 애써 의연한 척 하는 게 오히려 엄마를 위하는 일인 듯했다.

의연한 척 보다 더 나은 건 엄마의 눈에 띄지 않는 거겠지.

나는 방에서, 침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 영혼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엄마도 밥도 물도 먹지 않는 듯했다.

근데 엄마는 나와 다르게 그럴수록 육신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느낌이겠거니 생각했다.

죽겠다는 딸을 둔 엄마는 근심이 끊이지 않을 테니까.


"해."

엄마는 한 글자만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나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슬픔을 어떻게든 참으려 말을 아끼는 게 눈에 선했다.

그에 비해 내 눈은 당혹스러운 듯 커졌다.

"니가 하고싶은 일이잖아. 내 욕심으로 너를 어거지로 붙잡는게 맞는 일은 아닌 것 같아."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내 눈동자도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를 포기했다는 원망 반, 나를 놓아주었다는 고마움 반.

이 일은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며, 설득당할 생각도 없지만, 그냥 이 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누군가 말려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망이 반 정도 들었다.

원망을 제치곤 엄마는 아직 나를 놓지 않았음에도 놓아주겠다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딸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고마움이 또 반 잇따랐다.

나도 모르는 아주 아주 작은 틈새에는 이런 딸이라서, 이런 결정을 엄마에게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죄책감 약간.

그런 죄책감이 무색하게도 이제야 끝낼 수 있겠다는 안도와 안심이 또 약간.

그리고 사흘 뒤를, 내 제삿날로 정했다.


기계는 시트가 깔려있고 심지어는 베개도 준비되어있어서 생각보다 꽤 편안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편안한 가시밭에 제 발로 누웠다.

"딸... 미안, 미안해...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너를 만들어서... 그리고 사랑해, 딸..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

엄마는 안락사 기계에 누워서 팔만 빼놓은 내 손을 잡고 흐느끼며 겨우 한 단어 한 단어씩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늘 좋은 엄마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해. 너무..."

나는 그런 엄마를 향해 사실상 억지로 살며시 웃었으며, 엄마가 남아서도 행복하기를 최선을 다해 빌어주었다.

그리고 이게 아마 마지막 한 마디겠지.

"아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기계의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바람 채워지는 소리가 나며, 조금 시원한 듯했다.

그리고 나는 살짝 어지럽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