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은 비문학 지문을 읽고있었다. 지문의 키워드는 '만약 이 세상이 컴퓨터에서 행해지는 시뮬레이션이라면'.

 그는 컴퓨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 컴퓨터는 일반적인 반도체덩어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만의 기판을 가지고있을 것이고 데이터를 저장할 램과 저장소도 존재할 것이다. 뭐 시뮬레이션만 실시간으로 할것이라면 램 안에서 모든 것이 돌아갈테니 엄청나게 큰 램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을 실행시켜주는 코드가 존재하겠지. 그리고 그것은 기계로 숫자 0과 1로만 표현이 될 것이다. 또한 코드가 2진수로 짜여지는 것과는 별개로 컴퓨터 내부에서도 전압이 걸림, 걸리지 않음으로 모든 신호가 표현됨으로 이것 역시 1과 0으로만 표현된다. 그러니 세상이 0과 1로 표현된다는 것을 세련되게 표현한다면 binary universe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BT라는 옛날 일렉트로닉 뮤지션이 이걸 제목으로 앨범도 내었나 보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있고, 그들을 다양한 개인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본다면 이것이 모두 바이너리 유니버스 안에 속해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확실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된 우주 가설의 맹점은 그것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시뮬레이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그냥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과연 이 지문에서는 시뮬레이션 우주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나열해놓고서 그것 자체의 문제점 역시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택은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 지문에 속해있는 문제하나를 틀려버렸다. 그것은 확실하게 아쉬운 일이다.

 바이너리 유니버스. 그런 말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다. 이 모든것들이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심오하고 흥미롭다. 과연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사람의 뇌를 프로그래밍한다고 생각할 때 이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숫자로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결국 의식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화가 많이 났으면 변수 anger에 80을 입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변수는 물론 마음대로 조작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길고 정교하게 쓰여진 소스코드에 따라 이 감정에 대한 핵심 변수들의 값이 실시간으로 변동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그 사람의 행동으로 반영이 될 것이다. 그런식으로 진행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프로그래밍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AI연구에 있어서 과학자들은 이러한 논리로 AI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현택의 생각에는 학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 지섭의 말이 와닫았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개발자에 입장에서 신경망을 통하여 인간다운 사고를 하고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조금은 아름답지는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근거로 인간의 뇌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들었다. 컴퓨터로 거대한 신경망을 시뮬레이션해서 그 신경망을 통한 챗봇이 사람다운 말을 하고 사람처럼 사고하는 것은 조금 현실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어서 실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가 설계된 것은 순전히 진화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이 진화론속에서 사람의 뇌는 여러가지의 모듈들이 있어 각자의 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볼때 아름다운 AI는 꼭 진화심리학 이론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더라도 인격체의 욕망를 프로그램하여 그 AI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인격의 감정을 개별로 프로그래밍하여 그 감정에 기반하여 행동을 보이게하고, 학습을 할 때에는 그 정보의 맥락을 붙잡아서 그것을 기반으로 지식을 확장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섭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경망 AI는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진화론'일 뿐이다. 우리는 진화론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경망 AI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지적인 사람들이 인격체를 설계했다는 가설은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러니 일일이 인격을 설계하여 그것이 사람다운 행동을 하고 그 매커니즘이 사람과 같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믿지 않았던 방식의 일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서는 가능케 했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방식의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이 더더욱이 인간다운 발상인 것이다... 라고 지섭은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는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이다.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에는 그것이 단순히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뇌에 신경들이 압박을 느낀다거나 몸이 피로를 느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몸 전체에서 생화학적 반응, 호르몬의 작용 등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생각하는 시뮬레이션의 설계와는 궤가 다르다. 그런 것을 일일이 설계하려면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수백명은 뭉쳐서 해야하지 않을까? 이것도 비현실적으로 적게 잡은 숫자이긴 한데 그게 별 의미가 있나 싶어지는 것이었다. 아무튼 현택은 지섭의 그런 생각은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니 이 세상의 시뮬레이션적 요소를 그 나름대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그래밍을 딱히 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이긴 하나 그는 프로그래밍에는 별로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았으며 그리고 코딩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되고 귀찮은 일이라는 사실을 프로그래밍 공부 2개월차에 알게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신의 관심사를 머릿속에서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시뮬레이션은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과학책에서 주기율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주기율표는 이 세상을 구성하면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원소들을 나열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주기율표보다 더 근본적인 구성은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이다. 이것은 더 세부적인 1, 0과 같은 기계어 취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아래에 쿼크를 포함한 수많은 기초입자들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잘 안다면 현태는 지금 학원이 아니라 대학교에 자신의 방이 있었겠지. 아무튼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이 원소들을 구성하는데 이것들을 어셈블리어라고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거친 비유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이것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기율표는 옥텟규칙을 만족해야하는 바라서, 8진수적인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바이너리 유니버스는 잠시 폐기되고 otal universe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자번호가 증가하면서 옥텟 규칙은 깨지고 주기율표 아래로 내려가면 2, 8, 18, 32 의 주기를 가지게 된다. 이쯤 되면 8진수를 꼭 사용할 수도 없고 이윽고 periodic table universe가 찾아오게 된다. 이 얼마나 멋없고 비극적인 일인가. 도저히 문제를 더 풀 수 있는 기운이 나지 않았다. 현태는 선생님에게 딴청을 부린다고 혼이 낫지만 그에게 있어 그런 일들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피어리어딕 테이블 유니버스를 통하여 우리학원 건물이 세워지고 인간들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그는 물리학, 화학.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지니고 있는 그 설계방식과 거동에 대한 근거가 역시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하지만 기초입자를 포함한 모든 물리학적, 화학적 법칙들이 알고보니 순수 수학적으로 규명이 된다면, 그것은 세상이 수학과 형이상학적 개념 등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에는 그 단순성으로 binary universe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닿은 순간 그는 행복함의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올 떄에는 학원 버스를 탔는데, 그건 익숙한 일이긴 했으나 항상 어딘가 불안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비록 머릿속으로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순 있지만 학원 안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들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가치가 있었던 것이었는지를 상기한다. 그래서 그는 조금 우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민석이라는 애가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걔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걔가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없다면 조금은 섭섭할지도 모른다. 왜인지 걔라면 말이 좀 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로시도 가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기는 하나 그녀는 조금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이상하게 삐지거나 혹은 나에게 화를 낼 때가 있기 때문에 때떄로 껄끄럽다. 아무튼 그러게 버스안에 영락없이 갇혀버린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바깥에서는 토끼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이 놈의 토끼들.

  학원버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모르는 팝송이지만 노래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복잡한 상가와 도로를 지나고 있을 때에 우리가 감상에 빠지는 것은 그렇게 비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그냥 내가 '비일상적인 것'이라고 느끼게되는 건 아마도 내가 다른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음악이 지닌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음악적인 다양한 장치들에 대해서 고찰할 때에 나는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했다. 세계라고 하면 거창하니까 방 정도라고 할까. 그렇게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나의 마음을 휘어잡고 그 자신이 지닌 설득력으로 이윽고 압도당하게 될때 나는 굴복이 아니라 깨달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게 이렇게 도 될 수 있구나'하는 가능성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길고도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사유 전체가 또 다시 2진수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발상이 마치 안락한 소파에 앉아있는 것 같은 심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소파가 있는 방은 세계의 뒤틀린 공간에 있는 경계를 가져와서 지상의 건물에서 문을 열면 도시 상공에 좌표점을 둔 숨겨진 공간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 과학과 미학을 상상하던 와중에 이제 문학적 발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자리잡고 있으면 내가 가져온 결계 사이로 이계의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다. 이를테면 환상향 쪽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동방프로젝트를 떠올렸다. 팬덤은 다 죽어가지만 사실은 기본 소양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런식으로 말하면 내 친구들은 '아오 동쌤'이라고 말하기는 한다. 새로운 동방 신작이 나온다면 악당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갑자기 현계와 환상향 사이의 결계에 구멍이 나서 이를 두고못한 레이마리 듀오가 그 원인을 찾으러 떠난다. 1면 : 그냥 겉절이. 2면 : 환상향과 현계의 결계를 이용하여 내가 있는 아지트 공간을 만든 요정. 3면 : 내 아지트 안에서 불리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그녀들을 상대하는 나. 4면 : 현실세계에 살고 있었던 마법사. 그는 현실세계의 요괴와 계약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법을 얻었다. 5면 : 상상을 현실화시켜주는 요괴.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6면 : 꿈 속에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는 자신의 꿈을 제어해냈고 자신의 꿈을 관장하는 자 또한 만날 수 있었으며 이를 이용하여 상상을 현실화시켜주는 요괴와 결합하여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여러 이변들(레이마리 입장에서)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신주가 신작을 안내주나.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집으로 내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보니 왜인지 피곤해보이는 도로시가 있고 민석도 집에 있다. 그런데 이 친구 왜 집에 갈 생각을 안하는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