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발언하십시오."
 판사의 말을 들은 이진석은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조선제국에서 열린 이번 재판에서 그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 발언들과 주장들을 통해 수감되어 있는 만주군 장교들의 사형 집행 여부도 결정될 것이였으며, 이번 전쟁에 대한 갈리아의 배상과 사죄도 받아내어야만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미 사전에 제출드린 자료에서 보실 수 있듯이, 갈리아 군은 민간인에 대한 학살 등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한 피해자는 최소 수백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참혹한 전쟁입니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수백만의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시킨 갈리아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재판장은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갈리아 측에서도 발언하십시오."
 "재판장님. 물론 이번 전쟁에서 만주공화국 민간인의 사상자가 유래 없이 많았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합니다만, 만주군의 장교들도 역시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재판장님!"
 이진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조용히 하세요! 아직 발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이 그를 제지하자, 그는 서류를 제출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의 가족들 중 일부가 전장을 방문했는데, 만주군의 게릴라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곳에는 어린아이마저 있었습니다."
 지금껏 이진석에게 호의적이였던 방청객들의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웅성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누군가는 그를 향해 삿대짓을 하며 소리쳤다.
 "또, 저희 갈리아는 만주에 대해 이미 수차례 최후통첩을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갈리아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비난하면서 전쟁의 빌미를 만든 것은 이진석 총리였습니다. 누가 이 전쟁에 책임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주십시오."
 승기를 잡은 듯 갈리아 측의 관료는 말을 끝마치고 미소를 띈 채 자리에 앉았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진석의 마지막 발언을 듣고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진석은 또 다시 일어섰다. 그는 뻔뻔한 갈리아의 관료에게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재판장님. 우선 갈리아 측에서 주장한 사건은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뿐더러, 설령 사실이라고 한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군인의 가족을 의도적으로 보낸 것이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으나, 그는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 최후통첩이라고 했습니까? 당신들의 그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전쟁에 대해 비판하자, 그것에 대해 최후통첩을 하고, 우리의 입을 막으려 협박한 저들이 이번 전쟁의 원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런 제국주의자들에게 비판한 것이 수백만의 민간인이 살해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라도 된답니까?"
 방청석이 다시 술렁였다.
 "재판장님, 단언하건대, 이번 재판은 역사에 남을 재판일 것입니다. 재판장님. 수백만의 민간인을 학살한 저 미치광이와 같은 갈리아 군의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 판결하겠습니다."
 웅성거리던 방청석이 조용해졌고, 이진석도 숨을 죽인 채 서 있었다.
 "만주군의 갈리아 민간인 살해를 인정해, 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 만주군 장교와 일반 사병 1만여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다. 역시 갈리아군의 만주 공화국 민간인 살해를 인정해 가담한 장교와 일반 사병에게 각각 1000만 골드와 1000천 골드의 벌금을 징수해 이를 만주의 민간인에게 균등히 분배한다. 끝으로, 이진석 전 총리는 국제 분쟁을 조장한 책임을 물어 대조선 제국에서 가택연금한다."
 재판장이 법봉을 두들겼다.
 이진석의 무릎이 꺾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어 터져나오는 울분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는 법정을 떠나는 갈리아측 관료들의 뒷통수에 대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만주인은 언제나 기억하지. 그것이 빚이던, 은혜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