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하자. 너도 전시회에서 깨달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동업자이자 샤카엘의 회장인 ○○○이 영상통화로 그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부회장 □□□까지 거들었다.
"그래. 지금 이대로라면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고 끝내자, 응?"
하현일은 노트북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고개를 팍 숙이고 울분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로봇 사업은 그녀와 함께 기획했던 것. 지금 세상에 없는 소중한 그녀의 뜻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었다.
"아니. 한 번만, 딱 한 번 만 더하자, 응?"
부회장 □□□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 이번에도 그 신바시 때문에 이러냐?"
신바시역. 2014년에 하현일이 입대할 때 이별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같이 회사 창립을 기획했던 남예은이 하현일 대신 죽었다.
하현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6년이나 된 일을 잊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괴롭고 한심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것을 생각할 때면 원래 자신이 죽어야 했다는 자책과 그녀가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책망이 그를 지배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마지막 방법으로 그녀의 뜻을 이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정적일 거였으면 차라리 네가 회장을 하지 그랬어. 언제는 만장일치로 네가 회장을 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을 땐 그럴 자격이 없다고 손사래 엄청 치더니만, 막상 회사 시작하니 네가 더 회장같더만. 이번에도 베이징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까지 난 것도 그렇고..."
"그래, 그래."
"그러니까 응? 이제 그만 놔주자. 이쯤되면 걔도 너를 보내주고 싶어할 거야."
아랫입술을 깨문 하현일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나도 그러고는 싶어. 근데 있잖아? 나는 도저히 못 하겠어."
"그래라, 그래라. 넌 정말 못 말리겠다. 아무튼 내일 비행기 오면 공항에서 보자고."
"어, 그래."
영상통화가 끝났다는 표식이 뜨자 하현일이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잠그려고 해도 멈추지 않는 작은 물줄기를 닦았다. 소매가 어느샌가 푹 젖어 닦아도 닦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달린 표지판은 견고히 서있었다. 아, 닿을 수 없다고 해도 저렇게라도 선명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표지판이 흔들리네. 예은이도 저렇게 하늘에서 정겨운 바람과 같이 지내려나? 아아, 내 몸도 산들바람에 흔들리는구나.


근데 여기 공항이잖아? 바람이 왜 불어?'
하현일이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땅이 흔들렸고 천장에 매달린 모든 것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대지진이었다. 진동에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하현일의 주변으로 수많은 잔해물들이 쏟아져내렸다. 하현일이 다급하게 가방으로 머리를 막았다.
하현일의 머리 위에 아까 그 표지판이 고정된 부분이 탁 끊기며 지면을 향해 수직낙하했다. 하현일이 눈치챌 새도 없이 표지판의 면이 그의 두개골을 타격했다.
'그래,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건가. 원래 죽어애 했던 목숨, 이제야 가는구나.'
그의 의식이 점차 끊겼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선혈이 흥건하여 피떡이 되어있는 그만이 쓸쓸이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것이 여러 세계를 지킬 운명의 수레바퀴의 시작일 줄 누가 알았으랴.


ㅡㅡㅡㅡㅡㅡ

이 프롤로그는 파기본임. 조만간 업로드될 진짜 프롤로그랑은 완전히 다를 예정. 변경점은 이럼.
1. 본 프롤로그에서 하현일의 성격이 훨씬 덜 우울해짐. 쓰고보니 너무 PTSD에 매달리는 성격이라 원하던 작품 안 나올 것 같아서 변경.
2. 본 프롤로그에서는 베이징에서 한국으로 오는 도중에 사고를 당한 건데, 쓰고보니 스토리가 별로라서 이 부분 갈아엎을 거임.
3. 이 외에도 영상통화가 메신저(모티브는 카톡)로 바뀌고, 인물이 몇 명 추가되고, 갖가지 변동이 나올 거임.

자꾸 이번에 나올 거다 이번에 나올거다 해놓고 자꾸 설정을 뜯어고치느라 인제야 나옴.

제목은 '비밀스런 차원과 요인'으로 하기로 했음. 투자한 시간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