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진석의 아우는 쏟아져내리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술잔을 비웠다.
 이진석은 말 없이 술잔을 비웠다. 두 노인의 얼굴이 얼큰히 달아올랐다.
 ".. 참 좋은 생이였지. 지금껏."
 ".. 형님."
 "황제 폐하의 명이야. 날 대총독에 임명하셨고, 널 차기 대총독으로 지명하신 분의 명령을 거스를 수야 있겠나?"
 "죽으러 가시는 것이나 다름 없잖습니까? 갈리아라뇨.. 그 놈들이 형님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그래, 어쩌면 도착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지."
 "형님! 제가 밀항선을 구해두겠습니다. 오키나와로 가면.. 우선 오키나와로만 간다면.."
 "황제의 군대가 날 찾아내 끌고갈 것이고, 너도 죽겠지."
 ".. 형님!"
 이진석은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황제가 그에게 갈리아로 갈 것을 명령했다.
 갈리아는 그에게 적국이자, 갈리아는 호시탐탐 그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바타비아의 전쟁에서 지원을 약속한 갈리아는 이진석을 넘기는 조건을 제시했고, 황제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충성을 다 한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였다.
 가택연금을 당한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혁명을 틈 타 도망치듯 빠져나와 바타비아에 왔건만, 결국 그는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담담히, 또 의연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술잔을 비웠다.

 "끌어내!"
 그가 갈리아에 도착한 배에서 내리자마자 들은 첫마디였다.
 그는 항구에서 기다리던 두 군인에게 붙들린 채 한 집에 던져졌다.
 ".. 따라서, 지속적으로 갈리아의 명예를 더럽힌 이진석을 영구히 가택연금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이를 수행한다."
 황제의 명령문을 읽어내려가던 군인이 명령문을 접어 품 속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 이 곳이 당신의 무덤이오."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 이진석은 조용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동생이 마지막으로 건낸 새 옷이였다.
 그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정갈한 태도로 품 안에 넣어둔 유서를 발 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치 종교적인 행위라도 취하듯이, 경건하고 의연한 태도로 천장에 걸린 올가미에 목을 맸다.
 그리고 힘차게 딛고 있던 의자를 걷어찼다.
 노인은 끅끅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은채 조용히 숨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