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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울에서 놀자. 연우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집에 들어갈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호기심이 일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우의 그림자를 따라 걸으니 놀이터가 나왔다. 모래사장 위로 철근 구조물과 페인트가 벗겨진 동물 조형물들이 서 있었다. 마치 사하라의 동물원을 걷는 기분이지 않아? 고개를 들자 연우는 어느새 시소 위에 올라타 있었다. 흔들거리는 시소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신기루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연우에게 시소가 왜 저울이냐고 물었다. 연우는 웃으며 말했다. 시소 위에서 두 발을 뻗고 있으면 서울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고. 봐봐, 내가 담에 금이 간 모습이 벼락 치는 것 같아서 담벼락이라 부른다 했잖아. 서울의 시옷에 막대기를 하나 올려봐. 시소가 서울 위에 올려져 있는 막대기니 저울이지.


 흔들거리는 시소를 따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도시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야경이 별빛처럼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리고 바보 같아서 우리를 중심으로 별들이 궤적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홀린 듯 멍하니 연우를 바라보다 그네도 있는데 왜 하필 저울이냐고 물었다. 연우는 내 눈을 피하더니 그네를 타면 얼굴을 보지 못하지 않느냐고.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시소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연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허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연우의 이삿짐을 옮겨줄 때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연우는 대화역 부근의 고시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우리는 더이상 놀이터에서 놀지 않았다. 그러기엔 우리는 너무 자라났으니까. 하지만 서울에서 놀자는 말만은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운 좋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과제를 하고 술을 먹다가도 방학이 되면 연우가 있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연우는 컵밥을 먹을 때도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컵밥의 밥알을 세며 연우의 눈치를 보다 연애를 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였지만, 연우는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다. 연애는 교차 함수처럼 뻗어지는 선분이 가까워지다 순간 교집합이 생기는 거라고. 그러다 우주를 채울 수 없을 만큼의 무량대수로 멀어지는 것이라고. 요점을 정리하듯 연우가 말했다. 멀어지기 싫으면 가까워져서도 안돼. 일정한 평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입을 열어 몇마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는 중이었다. 어쩌면 연우와 나는 기울어지기를 반복하며 평행을 맞추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우리는 조금 취해 걸었다. 겨울이었고, 하얗게 얼어붙은 한숨이 어슴푸레 흩어지고 있었다. 연우는 울다가 웃는 걸 반복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서울의 밤은 푸른 새벽 같았다. 서울은 잠드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고, 그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깨지 못하는 꿈에 빠져 있었다. 서울의 야경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흐트러지는 빛들은 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 같았다. 저무는 해를 쫓아 걷다 보니 놀이터가 나왔고, 우리는 시소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연우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괜찮아질 거라고. 언젠간 노력한 것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연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날처럼 얼굴이 붉었고, 저녁이었지만 연우는 웃지 않았다. 단면으로 보면 너도 좋은 사람이고, 나도 좋은 사람일 거야. 하지만 이 서울에서는 그렇지 않잖아. 저울 위에서는 그럴 수 없잖아. 어느새 시소는 연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늘이 보일 만큼 나는 높이 올라 있었다. 나는 연우를 내려다 봤지만, 연우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시소는 흔들거리며 기울어지기만 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연우와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미워하는 법만 배우다.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자꾸 기울어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