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2월의 어느 날 오후, 나는 편의점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골목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양 옆에 집마다 색상이 다른 담장이 눈에 띄인다. 가끔씩 길고양이들이 차 밑에서 다른 차 밑으로 호다닥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날씨가 11월에 비해서 너무 갑자기 매서워진 것에 비하면 매우 평화로운 하루였다. 그 때, 주머니에 넣어둔 폰이 일정 주기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 행정안전부 ] 지금 이 시각 전국 상공에 미확인물체 500개 이상 낙하 중, 낙하물 주의! 크기는 5cm부터 60cm까지 다양함, 성분은 대부분이 철로 구성됨. 낙하물 발견시 112나 119에 신고 바랍니다.


 문자를 읽고 하늘을 보자마자 동그란 무언가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놀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0.1초 뒤 내 발 바로 앞에 그 것이 툭 떨어졌다. 사과였는데, 방사능 물질 마냥 이상한 빛이 나는 사과였다. 그리고 낙하의 여파 때문에 아스팔트가 조금 패이긴 했는데 사과는 금도 안 가고 멀쩡했다. 그리고 사과를 주우려고 몸을 웅크리는 순간 내 등 뒤에 또 뭔가가 떨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프라이팬이었다. 그 프라이팬도 사과와 같이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문자에서는 112나 119로 신고 하라고 했지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냥 둘 다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집에 가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방금 죽을 뻔 한 거 아니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과를 집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편의점에서 세 남자가 일용할 양식을 충분히 사들고 왔다. 나는 많이 안 먹는 편이지만 얹혀사는 주제에 먹기는 또 드럽게 많이 쳐먹는 놈들 때문에 식비가 많이 쓰인다. 아까 식탁 겸 개수대에 올려놓은 사과를 들어올렸다. 여전히 빛나고, 또 먹음직스러워보인다. 옆에 놓인 프라이팬을 보았다. 프라이팬도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마침 은호가 언젠가는 꼭 필요할 거라면서 사놓고 서랍에 쳐박아놓은 방사능 측정기가 있어서 그걸로 이 두 개의 방사능을 측정해봤다. 그러나 측정되지 않았고, 자연 방사능 정도만이 존재했다. 의아해하며 측정기를 원래 있던 서랍에 넣어놓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그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현관을 보니 은호였다.

 "왔어?"

 "어. 근데 뭐 해?"

 "이거 좀 봐 봐."

 은호는 재작년에 산 롱패딩을 벗어 소파에 던져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게 뭐야?"

 "몰라. 오다 주웠어."

 은호가 갑자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뒷걸음질을 했다.

 "넌 방사능 물질도 줍니?"

 "방사능 없어. 아까 네가 전에 사온 걸로 해 봤는데, 없었어."

 은호는 내 대답을 듣고서 안심하고 들고 있던 사과를 뺏어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래? 그러면 먹어보자."

 "먹어도 되려나?"

 "아 몰라, 너 안 먹으면 내가 그냥 먹는다?"

 "아, 아니야, 같이 먹자.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사과 좀 자를게."

 은호는 사과를 던졌다. 나는 받아 과도로 8등분을 했다. 씨는 혹시 몰라서 따로 놔두었다. 나는 사과를 먹었다. 평범한 사과 맛이다. 그리고 꿀꺽 삼키는 순간, 빛이 사라졌다.

 "어?"

 "왜?"

 "빛이 없어졌어."

 "잘라서 그런 거 아냐?"

 "먹어서 그런 거일 수도 있어."

 "일단 남은 거라도.. 맛은 괜찮아?"

 "어, 맛은 그냥 일반 사과 맛."

 사과를 둘이 나누어먹었다. 은호가 마지막 조각을 먹고, 나는 베란다의 남은 화분에 사과 씨를 심었다. 아까 점심까지 먹고 후식, 사과까지 먹어서 배가 부른 나는 소파를 쭉 펴서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누웠다. 은호가 옷장에서 따뜻한 극세사 이불까지 꺼내다가 내 위에 덮어주니 1분도 안 되어서 잠이 든 것 같다.





이건 1달에 2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