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는 없다.


  책을 찢고 화면을 깨부순다. 선명히 켜진 <끝> 이란 글자를 애써 부정하고 결말을 부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서의 퇴출을 부정한다. 이야기를 찢고 기억을 되살리고 영위하려 마음먹는다. 주변의 풍광을 무시하고 다시금 집중하고 빠져든다.


  저들의 이야기와 저들의 세계와 저들의 관계와 저들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얻기 위함이다. 저들처럼 완벽한 존재가 나는 될 수 없다. 나는 저들의 아름다움을 빌려야만 한다. 나는 살려면 그러해야 한다. 나는 저들처럼 될 수 없다. 나는 저들처럼 노력할 수 없다. 무엇을?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울 수 없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서 그것을 빌려야만 한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이야기의 끝은 나의 죽음이다. 나는 이야기를 되살린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도려낸 <끝> 이라는 글자를 그러모아 쓰레기통에 버릴까 혹은 삼켜버릴까 고민한다. 나는 삼킨다.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억지로 씹고 되새긴다. 이야기를 되새기며 향유한다. 그 속에서 유영하며 침대로 뛰어든다.


  침대는 어느때 딱딱하고 어느때 물렁하고 물과도 같지만 차갑지는 않다. 나를 안정시켜주지 못한다. 내 목을 가득이 채운 역겨운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와 잇새에 낀 펄프조각들, 그리고 주변에 난자한 유리 조각과 찢겨진 종이들, 그 모든것들에게서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다시금 눕고 뛰어들고 유영, 배영 혹은 잠수, 어찌되든 좋다 나는 뛰어든다.


  어둑한 방 안에서 황량히 나는 고립되고 책장은 쓰러지고 썩어들어가고 그 속에 책들은 들어앉아 나를 괴롭힌다. 저들에겐 끝이 있다. 나에게도 끝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나는 저들처럼 되고만 싶다. 무엇때문에?


  모르겠다,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보다 나의 내용이 더욱 까마득하고 컴컴하고 쿰쿰하고 매캐하다. 기억조차 나지 않고 의미조차 없는것만 같은데 어딘가엔 있으리라 믿으니까 나는 읽고 보고 즐기고 그러할 뿐. 


  나는 도피하고만 싶었으니까 읽은것이고 도피의 끝은 내동댕이이기에 어디까지나 끝이 싫었고 언제까지나 원한다. 


  저들과 내가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저리고 시리고 아파서 너무나 아파서 마치 절단된것도 같고 타들어가는것도 같은데 내가 정말 육체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너무나 아파서 참을수가 없다. 저들은 나를 살리고 유지하지만 죽이고 끝낸다. 저들이 극한으로 혐오스럽다. 저들은 아름답고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희망을 가져도 되는지 아니면 그저 이야기에 갈망하다 이대로 죽는것이 죽었는지 어떤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 매몰되는것이 올바른걸까?


  그러할수가 없다.




<끝>



이야기를 보다가 끝맺음 이후의 고독감은 이루말할데가 없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것보다 아픈 이유는 만나본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저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직감하여 더욱 시리다.

저들을 만날수가 없고 같이 될수도 없다, 너무나 아픈것이다.


문장 호흡 신경쓰다보니 컴퓨터나 폰으로 보기엔 참 그지같은 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