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침과 초침이 직선을 이루자, 도시에 울리는 음파에 이명이 느끼며 나는 깨어났다. 아침 노을이 우리의 얼굴을 비추고, 주홍빛 섬광에 나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몇십 번을 반복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이 감각에 인상을 찌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바닥에 흐드러진 붉은색 액체와 쓰러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손에 들려있는 날카로운 날붙이. 쯧, 오늘은 운수가 나쁘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덤덤하게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낸 뒤, 칼을 바닥에 던지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저렇게 두면 ‘청소부’들이 치워줄 테니 말이다. 보라,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나. 하루의 시작을 음파와 함께하는 것과 신속하게 흔적을 청소하는 청소부들의 모습은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집에서 옷을 정리하고, 항상 지나는 출근길을 따라간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사람이 죽는 날이면 매번 이렇게 운이 없다. 아마도 내 업보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전철에서 내리자 햇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항상 이맘때쯤 무언가 하나 터지는데. 그 생각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쪽 길을 피해 경로를 틀었고,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본인의 일을 계속한다. 저런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보통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인데, 새벽 동안 자신의 신체가 벌인 일을 납득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거나, 아직 연동이 완벽하게 해제되지 않아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전자는 정신적인 문제, 후자는 기술적인 문제이고, 모두 이곳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몇 번 난동을 부렸었지. 하지만 이곳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난동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보안팀에 의해 진압된다. 나는 보안팀을 피해 회사로 출근했고, 조금 늦었는지 두 자리를 빼고는 모두 불이 켜져 있었다. 하나는 내 자리고, 하나는 부장님 자리. 옆자리의 동료 직원에게 묻자, 오늘 아침에 옆집 사람에게 밀쳐져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도 착한 분이셨는데, 아쉽네.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회사가 어수선해졌다. 나 역시 슬슬 일을 정리하고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차장님이 내게 다가와 승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아마도 부장님이 사라지면서 차장님이 그 자리를 채움과 동시에 한 직급씩 승진한 듯했다. 나는 차장님, 아니 부장님도 축하드린다는 말과 함께 회사를 나왔다. 바깥 풍경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그 노을에 하늘의 벽이 비쳐 보였다. 반경 30km의 원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는. 저렇게 가끔 벽이 비추어 보였다. 예전에는 저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아크릴 같은 재질로 이루어진 벽은 강력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퇴근길에 승진을 자축할 겸 편의점에서 안주와 와인 한 병을 함께 사 집으로 돌아갔다. 와인잔에 붉은색 액체가 흘러내리고, 조금 흔든 뒤 향을 맡고 와인을 안주와 함께 음미했다. 편의점 싸구려 와인이라 향을 음미할 것 까지는 없었지만, 무드라는게 있지 않는가. 그렇게 두 세잔을 더 마시고,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 삐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뒤늦게 시계를 보자, 분침과 초침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늘은 너무 늦게까ㅈ ㅣ ...

 

분침과 초침이 직선을 이루고, 도시에 울리는 음파에 이명을 느끼며 깨어났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았는지 노을빛이 비치지 않았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신경에 접속된 다른 의식이 아직 남았는지 눈꺼풀과 팔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관자놀이의 칩을 강하게 쳤다. 그러자 연결되어 있던 의식이 마저 날아갔는지, 눈이 정상적으로 떠졌다. 이번이 남의 의식에 접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미련있게 남아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짜증이 났다. 짜증내면서 몸을 일으키자, 손에 들려있는 깨진 와인병과 살짝의 피가 묻은 손이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는 저 스스로 베어서 난 상처에서 나온 피인 듯했다. 오늘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옷을 정리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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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에서 살짝 영감을 받아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