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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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지원은 청소를 하다가 조 씨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의정부 건 말이야, ‘선생님’과 ‘협력’을 하다가 꼬리를 잡았어.”


“선생? 그 사람이?”


조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튼… 의정부 쪽에서 근무한 삼성 직원과 간부들을 조사하다가 의심가는 사람 1명을 찾았어. 이름은 김민수, 55세. 삼성물산 부장인데 3년 전까지 멀쩡하게 삼성물산에서 일하다가, 3년 전부터 바로 올해 1월 1일까지 기록이 비었고, 또 그 다음부턴 다시 삼성물산 소속이야. 냄새가 나지? 좀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으니 바로 LAD에 와.”


“알았어.”


지원은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집을 나서며 말했다.


“나갔다 올게, 집 잘 보고 있어.”


한참 TV 시청에 열중인 준용이 건성건성 답했다.


“네.”


“TV 좀 작작 보고.”


지원은 가기 전에 빌딩 내부의 총포상에 들렀다.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 남자가 그녀를 반겼다.


“새입자야? 못 보던 얼굴인데.”


“네, 일주일도 안 됐으니까요. 9mm 있어요?”


“오른쪽에. 그나저나 젊은 아가씨가 권총을 주로 들고 다닌다라… 좀 특이한 걸?”


지원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9mm 총알을 샀다.


“자주 들리라고! 권총류도 많으니까 말이야.”


잠시 후, LAD에 도착한 지원은 손광민의 방에서 그녀를 부르는 조 씨를 발견했다. 방으로 다가가자, 조 씨와 손광민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지원은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조 씨 옆에 앉아 속삭였다.


“야, 조 씨. 저쪽 의뢰라는 말은 안 했잖아.”


“오면 말하려 했는데 미세스 리보다 먼저 부르셨어.”


“아무튼… 자네까지 왔으니 본격적으로 그 ‘의뢰’에 대해 알려주겠네.”


손광민이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리자 어느 남자 모습과 각종 이력이 홀로그램으로 떴다.


“이 남자가 우리가 특정한 이 일세. 이름은 김민수, 간단하게 ‘X’라고 부르지. 2060년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근무 기록이 없어. 하지만 퇴사 기록도 없고 그 이후 다시 본래 일하던 삼성물산으로 돌아왔지. 사람을 좀 풀어서 더 뒷조사를 했는데, 정말 그 3년간 아무것도 없었어. 심지어 출퇴근 기록조차 말이야. 유일한 단서가…”


그는 스마트폰을 톡톡 두들겨 CCTV 화면으로 바꾸었다. 올해 1월 2일 어느 고속도로 화면이 나타나자 그는 한번 더 스마트폰을 조작해 화면을 확대했다. X의 얼굴이 보였다.


“의정부에서 수원으로 가는 중에 찍힌 거야.”


조 씨가 말했다.


“이 정도면 100% 확신까진 아니어도 냄새가 난다고 판단했지. 안 그래?”


“확실히. 좀 냄새가 나네. 이 남자의 행방을 찾은 겁니까?”


“맞긴 한데, 이 멍청이가 이리저리 많이 얽혀 있더라고.”


그가 다시 스마트폰을 조작하자 그의 계좌 내역과 각종 문자, 통신 내역까지 나타났다. 지원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삼성물산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만성적인 적자에… 문자는 온통 협박과 빚 독촉뿐.”


“이 자식은 도박중독자야. 그것도 중증이지. 내역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강원랜드’와 ‘제주도 카지노’는 출입 금지고 ‘야마구치구미’ 쪽 파칭코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그 때문에 이놈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카지노는…”


그가 스마트폰을 만지자 지도가 떴다. 지도는 도봉구를 가리켰다. 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는 평온하게 말했다.


“도봉구의 삼합회가 운영하는 카지노야. 빡대가리 새끼, 조폭들이 운영하는 도박장 중에 제일 악질들한테 걸린거지. 여기에 진 빚만 1억이 넘어. 심지어 돈을 빌린 대부업체도 삼합회 쪽이고.”


지원은 이마를 짚었다.


“삼합회… 그 또라이들한테 걸렸다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네.”


조 씨가 대신 답했다.


“아는거지, 현역 삼성 직원을 함부로 건들이면 귀찮아지는 걸 말이야.”


“게다가 X는 비밀업무를 수행했어, 빚 자체는 ‘공백’ 이전부터 지고 있었거든. 아마 삼합회가 눈이 벌게져서 이 잡듯 뒤졌을 건데, 그놈이 나오지 않자 아마 뒤졌거나 해외도피를 생각했겠지. 헌데 올해 초에 다시 나타나니… 이놈들도 눈치를 깐 거야. ‘아, 이 새끼 뭔가 중요한 업무를 했구나.’ 이런 식으로. 이런 놈을 함부로 공구리 쳤다간 일이 커지리라는 것을 느꼈겠지. 그러니 협박 말고는 못하는 거야. 우린 이쪽을 파고 든다.”


지원이 의문을 표하자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만졌다. 이제 화면은 카지노와 어느 덩치 큰 남자가 되었다.


“이름은 장자이, 45세. 삼합회의 간부 중 한 명인데 이 카지노의 명목상 주인이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지노의 수익을 중앙으로 송금하는 위치지.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 몫으로 슬쩍하는 돈도 엄청나고 말이야. 이놈이 X의 빚과 연관이 있어. 마음 같아선 집에 잠입해 서류와 이 자식의 목을 가져오라고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지노보다 이놈 집이 더 보안이 철저해서 말이야. 그러니 카지노에 가서 어떻게든 VIP가 되어 이 자식의 눈에 띄게 만든 다음, 구워삶든 협박하든 해서 X의 빚을 탕감해야 해.”


화면이 꺼지자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빚을 탕감하면, X가 우리에게 협조해준다는 거죠?”


“정답일세.”


“가자, 조 씨. 인호랑 레나, 그리고 알리샤는 와 있지?”


“그럼.”


곧바로 사무실에 가자 조 씨의 말대로 셋 다 있었다.


“인호, 레나, 알리샤. 일 할 시간이야. 준비 다 하고 출발하자.”


인호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도봉구, 카지노. 가면서 설명할게. 조 씨, 당신은 여기 있어. 나랑 이 셋이서 처리할 테니.”


차를 타고 도봉구로 이동하며 지원은 의뢰에 관한 내용을 설명했다. 인호가 물었다.


“삼합회 간부를 건드려야 한다는 거죠?”


“그래.”


“괜찮을까요? 삼합회 놈들, 자기 사람 건드리는 놈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묻어버린다던데.”


레나가 말했다.


“인호는 쓸데없이 걱정이 많아 탈이라니까~ 그런거 일일이 걱정하고 그러면 용병일은 어떻게 하고 사나?”


알리샤가 방점을 찍었다.


“인호 씨는 덩치에 비해 걱정이 많네요.”


인호는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어린 애가 못하는 말이 없네…”


지원은 백미러로 뒷자리의 레나와 알리샤를 바라보다 물었다.


“너희 둘, 사귀냐?”


그 말에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서로 손을 잡았다.


“뭐, 여자친구 정도야 나도 있어 봤으니 할 말없지. 너희 둘은 가서 기기 해킹이나 똑바로 하면 되니까.”


레나가 말했다.


“카지노 간다길래 돈 좀 따러 가는 줄 알았는데요?”


“방금 뭘 들은 거야? 게임하고 돈 잃을 시간에 슬롯머신을 니들이 조작해서 사장이 날 VIP 방으로 데려가게 하는 게 작전의 핵심이라니까.”


“네~”


차는 카지노 앞에 도착했다. 네온사인 간판이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이는 카지노는 입구부터 험상궂은 삼합회 소속 경비원과 주변을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마약중독자, 어쩌면 도박중독자들이 얽혀 있었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자욱한 담배 연기와 시끌시끌한 노래가 그들을 맞이했다. 여자 가수의 낭랑한 음악 사이로 슬롯머신 소리가 불협화음을 자랑했다. 지원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상의를 크롭티로 바꿔 입은 채 나왔다. 레나가 물었다.


“갑자기 복장까지 바꾼 건 뭐예요?”


“시선 끌기. 일단 통신 연결하고, 너희는 저기 바에서 뭐든 마시고 있어. 포커라도 치던가. 레나, 내가 신호하면 슬롯머신 기기를 조작해. 인호 너는 바운서들 망 보고. 알리샤 넌 CCTV들 확인해. 알겠지?”


“네.”


지원은 담배를 물더니 돈을 칩으로 바꾸러 갔다. 인호는 포커 테이블에, 레나와 알리샤는 바로 향했다. 지원은 적당한 슬롯머신을 시각 사이버웨어로 스캔했다.


‘혹시나가 역시나. 조작을 안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지원은 그 슬롯머신에 앉았다.


“셋 다 듣고 있어?”


“네.”


한참 포커에 열중인 인호를 제외하고 동시에 목소리가 들리자 지원은 코인으로 바꾼 돈을 넣었다.


“카지노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지원은 맥스 배팅을 했다. 레나가 말했다.


“잭팟 터진 사람?”


알리샤도 이어서 대답했다.


“역시 잿팟 터진 사람이죠.”


“아니, 처음 카지노에 가서 개털 된 사람이야.”


지원은 레버를 당겼다.


“돈을 다 잃으면 도박에 대해 흥미를 끊으니까.”


돌고 돌아… 셋 모두 ‘BAR’가 나오고, 많은 돈을 토해냈다.


“이거… 아무래도 난 운이 나쁜 사람인 것 같네. 레나, 알리샤. 슬슬 준비하고 있어.”


두 사람의 시선이 지원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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