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급히 4층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려와 입구에서 벽쪽에 바짝 붙어 대기를 했다. 놈들이 아까 흩어지기 시작을 했고 이 건물은 녀석들이 모여 있던 지점에서 적어도 2백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므로 뭔가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놈이 나를 발견하고 나머지에게 연락을 하더라도 모이는 데에는 5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것은 한 놈을 상대해서 때려 눕히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고 날렵한 걸음걸이를 자랑하는 한 명이 내가 대기하고 있는 건물의 입구로 다가왔다. 나는 벽쪽에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녀석은 슬쩍 계단쪽을 살펴본 후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무심히 지나쳐갔다. 나는 건물 입구를 나와 지나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구보로 양복쟁이의 뒤를 쫓다가 그의 오른쪽을 슬쩍 지나치면서 왼팔을 오른쪽 가슴까지 들어올렸다가 아픔과 당혹감을 느낄 정도의 힘을 주어 옆구리 갈빗대를 가격했다. 놈은 약한 비명을 지르면서 왼쪽으로 휘청거리며 쓰러질 듯했으나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녀석은 울컥 기분 나쁘다며 소리쳤다. 

"너, 뭐야? 거기 못 서!"

나는 놈이 쫓아올 정도의 속력으로 잽싸게 뛰면서 20미터 정도 앞의 골목으로 꺾어들어갔다. 놈은 사냥감을 노리는 개처럼 힘을 다해 뛰어온다. 그에 맞추어 나도 속도를 높였다. 1분 정도 뛴 다음 나는 우뚝 멈춰섰다. 녀석도 체력이 있는 놈이 분명하다. 별로 지친 기색도 없었다. 

내가 몸을 틀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녀석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미련한 놈!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쫓아왔단 말인가? 

나는 다짜고짜 녀석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가격하기 위해 오른 주먹으로 훅을 날렸다. 순간 내가 녀석을 너무 얕잡아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녀석은 날렵하게 머리를 숙이더니 나의 명치를 정확하게 가격해왔다. 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본능이 발동했는지 왼팔을 명치쪽으로 옮겼으나 녀석의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맞아 가슴의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리 약골이 아닌 것이 다행스러웠다. 나는 간신히 무게중심을 잡으면서 놈의 동태를 살폈다. 즉 나는 그 긴박한 순간에도 놈이 다른 동료에게 호출신호를 보내지나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물론 얻어맞는 것은 내쪽이었지만 이번의 격돌을 통해 내가 한 수 위임이 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 녀석은 긴장된 얼굴로 내 턱을 노리며 오른손 훅을 시도했다. 나도 녀석과 비슷한 방식으로 되갚아주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녀석의 명치를 강력하게 가격했던 것이다. 녀석은 나의 명치 스트레이트에 적절한 방어자세를 취하지 못했고, 물리의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서 길바닥에 나뒹굴어졌다.  

나는 느긋하게 녀석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녀석은 고통스러워 온갖 인상을 잔뜩 쓰면서 왼팔로 바닥을 밀어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녀석은 나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인 듯 오른손을 가슴께로 들어올리면서 손바닥을 펼쳐 내 옆구리 쪽으로 쭉 뻗었다. 그 손바닥이 나에게 다을 수 없는 거리에 있음에도 나는 순간적으로 움칫하며 한 발과 옆구리를 뒤로 돌려 몸을 비스듬히 비켜섰다. 왜 상대편의 손바닥을 보는 것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몸이 옆으로 비껴 피했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셔츠를 살짝 스치는 에너지의 파동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탁" 하는 둔한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주차되어 있는 소나타 승용차의 본네트가 살짝 쭈그러졌다. 이 정도의 충격은 쇠파이프로 살짝 내려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녀석의 놀라운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내가 오히려 놀라웠다. 녀석이 에너지 파를 다루는 능력의 수준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설사 내가 정통으로 맞았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다시 동일한 시도를 했다. 내가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녀석은 손바닥을 펼친 채로 가슴께에서 앞으로 쭉 뻗었다. 나는 역시 그 파동을 피했는데, 이번에는 파동이 진행하는 높이까지 파악했기 때문에 굳이 발을 옮길 필요도 없이 허리를 옆으로 비끼는 것으로 족했다. 내가 이 녀석의 에너지 파를 쉽게 피할 수 있다면 굳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아이가 내 얼굴을 치려고 할 때 굳이 피하지 않더라도 손을 뻗어 앙증맞은 주먹을 비껴낼 수 있는 것처럼. 에너지 파를 방어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녀석한테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 이런 행위나 기술의 이름을 아직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나와 녀석의 육체적인 능력 면에서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에너지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내가 녀석보다 훨씬 앞서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지금은 전혀 모른다. 

녀석은 나에 대한 에너지 공격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건데 에너지 공격으로 체력적인 소모가 있가 있다는 사실과, 녀석이 상당히 합리적인 싸움꾼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알 수 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인상을 전혀 쓰지 않은 고요한 톤으로 물었다. 

"내가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