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 시지푸스, 시지프스, 시지프가 있었다. 물론 한 사람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들을 기만한 죄 때문에 평생 가파른 산꼭대기로 돌을 굴리는 형벌을 받았다.


나는 시시포스가 형벌을 잠자코 받는 것이 불쾌했다.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건 꽤 가까운 과거의 일이었다. 서당 개가 풍월을 읊고, 고등학교를 견디는 시간 정도라고 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여러모로 지루한 일상을 보냈고, 또 이렇다 할 추억을 쌓은 적이 없기에 물 흐르듯 존재했다. 그래도 이따금 담배를 피웠는데, 여간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발암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오히려 발목의 족쇄를 푸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폐에 밀려 들어와 페인트칠을 하는 게 건강상 좋지 않다는 걸 알아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천국에 발가락을 얹어놓으면 자연스레 죄책감이 내 목을 비틀었다. 마치 코를 막고 입에 빨대를 문 상태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당장 호흡할 산소가 끊겨 죽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럴 때면 ‘몸에 좋은 건 원래 쓰다’라고 우스꽝스러운 궤변을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꽤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공책을 펼쳐 적었었다. 사소한 팁을 공책에 적어놓는 과정은 내 일과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어쩌면 나만 하는 특이한 습관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팁을 적어두거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팁 공책을 펼치고선 큰 목소리로 읽으며 나를 조롱하는 부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관성이 없는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눈동자 색이 파랗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인간 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새벽을 질질 끌어 아침에 데려다 놓는 짓은 나에겐 일상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 이외엔 세상은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보고 듣고 만지고, 또 맛을 보고 향을 맡는 역할을 수반하는 덩어리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멍을 때릴 때 이런 느낌이 더욱 강화되는데, 감정이 하나도 담기지 않아야 했다. 그러면 비로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보다 간단히 말하고자 하니 말이 막혔다. 그 오묘한 느낌은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야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육체에 올라타 외부를 관찰하는 영혼이 있다고 가설을 세웠다. 종교에서 흔하게 이야기하는, 또 사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라 불리는, 그런 종류의 영혼보다도 영혼은 과학적으로 물질세계에 존재한다. 이것이 나의 가설이다.


아스트랄, ‘별의 혹은 영적 세계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다. 그리고 그 기원은 별을 의미하는 고전 그리스어 아스테르에서 왔다. 고전 그리스어를 사용한 철학자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알 것이다. 우리는 동굴에 갇혀있고 그림자들만 볼 뿐이다. 즉 본질을 따로 있고 완벽하지 않은 상태의 모습만 우리는 볼 수 있다. 플라톤의 복잡다단한 주장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반박했다. 이데아는 시적 비유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상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대관절 어지러운 철학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고전 그리스 시대부터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물질이라는 단어에는 공감하지 않는 짐승들이 많기에 이런 위대한 사실이 왜곡된 채 전해 내려왔음을 확신한다. 자신들의 몸과 세상 모든 것들이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간의 영혼만큼은 고결하고 순수하며 신성한 것이리라 믿는 행위로 말이다. 요컨대 영혼은 육체에 종속되어 있고 육체가 죽는 순간 영혼은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 관측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알아낸 결과다. 더 이상 진척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 연구 결과를 일찍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뛰어난 과학자가 내가 맡은 과업을 이어가 주리라. 그럴듯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숱한 연구를 해왔기에 나는 꽤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가끔 깨어났다 하더라도 배출욕과 식욕을 채우고선 다시 누워버렸다. 그래도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침소에서 일어나 나의 연구가 누구에게 이어졌는지, 또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일련의 과정에는 항상 담배 한 모금이 포함되어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나는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연기를 내뱉을 때마다 육체에 더욱 종속되었다. 진정 육체와 합일된 기분이다. 그러나 좋았던 시간은 금세 지나고 따분함이 존재의 여백을 채웠다. 


근래에 발견한 유흥거리 중 하나는 새까만 커튼을 걷고 창문을 아주 살짝 열어둔 뒤 집 앞에 떼거리로 몰려있는 기자들을 보는 것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대담하게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나에게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밀고 인터뷰를 해도 되냐라던가 갑작스럽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나의 주거 공간에 무단침입하는 모습이 여간 우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도 우레와 같이 꾸짖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졌다. 다만 방송에 나가기라도 하여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하여 나는 실실 입꼬리를 올리며 어색할 정도로 기자들을 환영했다. 불한당들은 그렇게 청소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소파와 땅바닥에 앉았다. 구석엔 바퀴벌레와 모기,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머리와 가슴과 배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아마도 곤충이었을 테다)들이 일사불란하게 신변의 위협을 느껴 어둡고, 곰팡이진 곳으로 파고들었다. 어찌나 불쾌한지 주인 앞에서 불편한 티를 팍팍 내었는데, 어째선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릇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게 인간일 터였다. 통쾌해한다던가, 미안해한다던가 그런 것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순간 나는 영혼이 풀려나 하늘로 붕 하고 떠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들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씻겨져 나갔다. 다시금 육체의 통제권을 얻은 나는 살갗이 파르르 떨림을 느꼈고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적나라하게 피부를 파헤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놈들에게 차갑게 비소를 날리며 이기죽거렸다.

“당신네는 지랄이 일상인가 보지? 추한 면상이나 들이밀고 역겨운 쉰내를 풍기는 지랄 말이야. 짐승 같은 놈들. 내 집에서 썩 꺼져.”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나는 새빨간 얼굴로 현관을 나서는 기자들을 보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생각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모든 것들이 부질없어 보이고 딱히 지금 죽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거실 한 가운데에 굳게 서서 멍을 때렸다. 담배는 찾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좋았다. 시시티비를 보듯 거시적으로 주변을 인지해보았다. 손에서 뚝뚝 흐르는 핏방울. 피비린내를 맡고는 찡그려진 코. 쥐 죽은 듯 고요한 거실. 그런 것들 말이다. 딱히 눈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영혼을 잠시 해방할 때 나는 손과 피부, 또 발과 코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하늘은 해를 끌어내리고 달을 치켜들었다. 다시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바로 그때 나는 집에 인간이 나 말고 한명 더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기자들이 우르르 들이닥칠 때 같이 들어온 모양이다. 겉으로 보기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10대의 순수함이나 20대의 성숙함 같은 건 무표정한 얼굴 뒤에 다 가려져 있었다. 그 얼굴은 희뿌옇게 생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언뜻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것을 포착했다. 그러나 이런 낌새를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재빨리 입꼬리를 아주 살짝 내리는 것이었다. 나답지 않게 들뜬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말을 걸었다. 왜인지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뜸 뺨이 타오르기라도 하는 양 화끈거렸다. 누추한 집안 때문임이 틀림없다. 불한당들에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어째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곤란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유인즉슨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고, 이 자는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상대방도 대화할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첫마디는 부드러운 음성이었기에 일본어로 들렸다. 두 번째, 세 번째는 각각 러시아어와 중국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 번째에서 나는 상대가 인사말을 건네는 중이었음을 알아챘다. 그가 내뱉은 말이 ‘안녕하세요’였기 때문이다. 앞선 언어들도 이런 종류였을 테다. 이윽고 나 또한 안녕하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이 평소에 하던 영혼 이탈은 탈옥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징역 100년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소자들에게 자신들이 죄수임을 상기시켜준 점을 관리국에서는 높이 평가하여 징역 200년을 감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탈옥이라느니, 징역이라느니, 영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들이 들려왔다. 애초에 내가 지은 죄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당연한 것이 세상에 태어난 지 30년 동안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소시민들이 가끔 저지르는 무단횡단 같은 것마저도. 그렇기에 나는 말할 수 있었다. 나에게 완전무결한 ‘인간’이라고. 그러자 그는 말했다.


“지구에서 모범수로 지내고 계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당신이 저지른 범죄는 이 은하 바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 범죄를 기억하지 못한다. 진정 기억하지 못하는 죄에 경중을 따져 죗값을 물으라 한다면, 어떤 이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조금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흠,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 우주가 영혼 과포화 상태라는 게 굳이 꼽자면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한 마디로 우주의 균형을 위한 겁니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 한 점으로 존재했던 그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죠.”


“차라리 영혼 학살을 하지 그래.”


“가능하다면 그랬을 테죠. 그래서 지구에 아무 이유나 붙여서 영혼들을 보내는 겁니다. 시간으로 마모시켜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어쩌면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래서, 그래서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당신이 불행을 겪는다 해도 그건 누군가의 심판이 아닙니다. 또한 당신이 행복을 느낀다 해도 말이죠. 원래 그런 세상인 겁니다. 그러니 그냥 살아가십시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곳은 어느 병원이었다. 팔에는 수액이 꽂혀 있었고, 줄줄 흐르는 수액을 보다 정신을 차리니 손에도 붕대가 감겨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옆에는 괜히 친숙한 한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또 수척하고 덩치가 작은 중년의 남자도 있었는데, 그 등이 아주 듬직했다. 그리고 그 둘은 눈을 뜬 나를 발견하고는 몹시 기뻐하였다. 깨어나서 다행이라느니, 자신을 알아보겠냐느니, 나로서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응, 응. 저절로 입이 열렸다. 


그날의 기억들은 희미하게나마 뇌리에 남게 되었다.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대화했다. 그뿐이다. 아, 한 가지 더 생각났다. 그 남자의 눈동자는 마알간 하늘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