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뇌는 곤죽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살아숨쉬는 걸 택한 육체는 박살난 내 머리를 어설프게 끼워 맞췄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내 쾌락의 원천은 산산이 사라졌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는 이 변화를 납득할 수 없으니.


“언니 분이 곧 결혼을 하신다고... 언니분과 꽤 친하신가요?”


 상담사는 언니의 결혼을 이유로 댄다.


“...그냥 평범한 자매 사이에요.”


“그래도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입니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어요. 가족의 일이 자신에게 생각보다 더 큰 충격을 주어서 일시적으로 불안 상태에 빠지는 그런 일이 있죠. 며칠 있으면 괜찮아 질겁니다.”


 그저 그것만으로 내 쾌락의 원천은 사라진 것이 아닐테니까. 단지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영원한 이별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변해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파괴된 머리가 멋대로 수복되서, 그 부작용으로 나는 망가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거 봐, 별 일 아니라잖니. 약 먹고 푹 자렴, 무리하지 말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라는 말을 남기며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당장 내일 죽어야만 심각한 것일까. 기초적인 욕망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삶에 어떤 의미도 없다.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한 채로, 무익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메마르는 삶. 그러면서도 어느새 언니의 결혼식 날은 코앞까지 다가왔고.


“조금 더 웃지 그러니?”


“웃는거야.”


“이 화상아...네 언니 결혼식인데, 좀 밝게 있으렴.”


 그렇게 채근하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또 언니에게 미안했지만 전혀 행복하다거나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만약 기뻤다면 밝게 웃어보였을텐데. 하나뿐인 언니가 저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동생인 나는 밝은 얼굴로 있지 못한다. 언니가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을텐데. 옛날에는 분명 그랬을텐데.


“이리 와, 사진 찍어야지.”


 결혼식장의 주인공이 나를 부른다. 나는 그 말대로 환하게 웃는 신부의 곁에가 자리를 잡는다. 사진사가 농담을 던지며 셔터를 누르기 직전, 언니가 말한다.


“지금 난 행복해. 선화야, 너는 어때?”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언니는 내게 물었다. 나는...전과는 다르게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망가진 머리는 진정 행복을 인지하지 못했으니. 결국 마지막까지 공항으로 떠나는 언니에게 웃어주지 못했다. 형부라는 사람과 함께 손을 흔드는 언니에게 맞춰 나도 똑같이 오른손을 높이 치켜 올릴 뿐이었다. 그 날, 내 안식처로 향하는 길은 어쩐지 너무 넓게 느껴져서 나는 벽에 기대 잠시 몸을 쉬었다.


 집에서 홀로 지내는 생활, 상담사의 말과는 달리 며칠이 지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역시나 그 사람의 말은 틀렸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던 나의 가슴 한 켠은 차가운 채로, 다른 한 곳에서는 무익한 삶을 이어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자꾸만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 불안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원초적인 욕구를 채우는 걸 우선으로, 인터넷에서 맛집이라고 떠드는 곳을 가보기도 했고, 또 다시 마음에 울림을 준다는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오랜 친구를 만나고. 그리고 간단한 전화로...인연이 없던 다른 누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다.


“돈은 드릴테니까 그냥 가주세요…”


 타인과 몸을 겹쳐도 얼어붙은 마음이 결코 녹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어떤 쾌감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실감없이 천천히 바스라 사라지는 걸까.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는 나의 이미지가,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어 나는 차디찬 아스팔트의 한 구석에서 잠에 든다. 마음 한 구석에는 극적인 순간이 있기를, 망가져버린 나를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점점 더 이룰 수 없는 소망으로 변모하는 소원을 가슴에 품는다.


 그런 나날 속에서 파란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견딜 수 없는 무기력에 진절머리가 나 무정한 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선 날이었다. 그 날, 자취방 골목길을 메우고 있던 것은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고성. 그런 혼란 속에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발걸음이 닿는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스팔트의 숲 속을 헤맨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발이 멈춘 곳은 원색적인 붉은 빛이 인상적인 가게. 그 가게의 옆으로는 좁은 샛길이 나있었다. 옅은 백색 가로등의 빛에 의지하는 불안정한 공간.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어딘가 나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지금 이것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인걸까. 몸은 이미 샛길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직감에 의지해 다가선 곳에는 생생한 폭력의 현장이 있었다. 아스팔트를 타고 흐르는 검붉은 액체는 신발에 끈적하게 달라붙고, 쓰러져있는 여자의 고통에 찬 신음이 흐르는 비상식적인 광경.


“...읏…”


 선혈은 그 사람에게서부터 흘러 내려와…하지만 뻗은 두 팔은 오히려 폭력을 원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원초적인 고통을. 그에 호응하듯 여자에게는 더욱 거센 폭풍이 몰아쳐 육체는 갈갈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결코 경험하지 못한 광기 앞에서 반사적으로 꺼내든 전화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떠는 몸은 다이얼을 누르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저 날것 그대로의 폭력이 두려웠다. 아픈 몸으로 더 큰 고통을 바라는 여자가 두려웠다. 


 그리고...그 무엇보다도 그 광경을 바라보며 변해가는 나 자신이 두려웠다. 미쳐버린걸까. 지금 나는 저들을 동경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생명력으로 타오르는 저들과 같이 되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몸을 부추긴다. 만약 저 사람들처럼 고통을 받거나 고통을 준다면, 나도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을 채우는 쾌락에 녹아내릴수 있을까. 이런 차디찬 아스팔트의 한 모퉁이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당신도, 어때?”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지쳐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더라도 그 치켜뜬 눈초리는 또렷이 내 풍경에 들어온다. 고통을 애원했던 손길 또한 나를 향해.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어쩌면 내가 이태껏 바래왔을 지 모르는 기회가 있다. 나는 그것을...차버렸다.

 

 어느 순간, 나는 달리고 있었다. 턱 밑까지 차오른 숨에 목이 막혀 멈춰섰을 때 그제서야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들을 피해, 무리하게 달려서라도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은 아마...그대로 있었다면 더는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일까. 선택의 기로에서 과부하가 걸린 뇌가 억지로 몸을 움직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그 손길이 여전히 눈 앞에 아른거렸다. 잠자리에 눕는다면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불을 덮어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서 그 광경이 떠올랐다. 자신만의 쾌락을 찾는 존재, 생명력으로 넘치는 존재. 그런 이미지를 보는 내 손은 어느 샌가 아래로 향해...나는 오랫만에 절정을 맞이했다.


 침대 시트를 빨며 맞이한 하루. 태양은 하늘의 한 구석에서 서서히 빛을 떨치고 있었다.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 채로, 나는 조용히 밤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달이 떠오르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거리를 메울 때, 문을 열었다. 똑같이 찬 바람이 부는 거리. 어젯밤과는 다르게 명확한 목적지를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강렬한 붉은 빛을 발하는 가게 옆에 난 좁디 좁은 샛길. 깨진 가로등은 고쳐지지 않은 채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은한 빛의 아래에는 사람이 있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하지만 시선은 나를 향한 채로. 치켜뜬 눈초리는 간 밤에 떠올리던 그 이미지 그대로 있었다. 나는 발을 뻗어 그 사람의 곁으로 다가간다. 한 걸음 씩, 한 걸음 씩. 점차 가까워질 수록 발걸음은 점점 더 가벼워져만 갔다. 모든 고민을 덜어내는 것 처럼,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한 내가 되어가는 것 처럼. 그렇게 열번째 발자국을 떼었을 때, 내 앞에 있는 것은 연약하고 상처입었지만.


“좋아."

 

 다른 누구보다 행복한 여자. 내가 내민 손을 붙잡은 여자는 일어나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그것을 신호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입을 맞추었다. 뜯겨진 살갗이 내 목을 스쳤지만 아랑곳하지않고 서로의 숨을 나누는데만 집중했다. 이름도 모르고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리고 같은 여자였지만 그런 건 내게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말 오랫만에 손에 움켜쥘 수 있었던 쾌감의 달콤한 흥취였기 때문에. 어젯밤부터 품었던 마음은 갈가리 찢겨진 손에 너무나도 쉽게 타올랐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방의 한 가운데에서 여운에 취해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격렬한 정사의 흔적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공간 안에서 몸을 식힌다.


“꽤 재밌었어.”


 치직거리며 타오르는 라이터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울린다. 그와 함께 퍼지는 건 희뿌연 안개.


“그냥 순수하게 서로를 감아 올리는 거, 오랫만이었는데.”


“...평소에는 저번처럼 하는거야?”


 그런 내 대답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게 내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라는 말을 덧붙여 대답한다. 그런 일이라. 이 사람은 돈을 받고 그런 고통을 즐기는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한다지만 그런 이유로 괜찮을걸까. 그렇지만 그 행위에 피가 쏠려 샛길로 빠진 나한테 이런 고민을 할 자격 같은 건 없다. 


“즐겼잖아. 그렇게 몸을 떤 주제에 이제와서 사색에 빠져봐야 뭔 소용이겠냐고…그렇지?”


 샛길에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이나 그런 폭력을 갈구하는 사람과 같이 내 머리 속은 진솔한 쾌감만을 바라고 있었으니까. 


“맞아, 그 말대로야.”


“그러니까 지금은 더 즐기는 것만 생각하자.”


 여자는 입에 물고 있는 담배는 빼지 않은 채로 옷장을 연다. 무질서하게 떨어지는 옷가지들. 멀리서 언뜻봐도 그 용도를 알 것 같은 적나라한 디자인의 물건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여자는 하나를 빼어든다. 만면에 가득한 미소와 함께 가져온 것은 가죽 옷.


“처음부터 격한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다시 말하자면 이게 시작이야.”


“시작이라면…”


 내 손에 그것을 꼭 쥐어준다. 가까이서 본 옷은 도착적인 디자인으로, 금속 벨트가 여기저기 몸을 옥죄는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애완견한테 줄을 채우거나, 옷을 입히는 거.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그런 옷을 입혀주는 걸로, 벨트를 채우는 걸로 나는 오롯이 네 것이 되는거야. 그러면...자.”


 말을 마친 여자는 두 팔을 뻗은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옷을 입히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몸을 움직여 피부 위에 가죽을 덧댄다. 금속이 몸에 닿을 때 차가운 지 닭살이 돋아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것에서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꽉 조여매기를 얼마간. 


 마지막으로 허벅지의 끈을 당길 때 쯤 이었다. 정말 이런 걸로 이 사람이 내 것이 된다면, 그런 공상에서 음습한 욕망의 싹이 자라났다. 그 싹은 아직 작지만 내 마음에 뿌리내려 충동으로 이끈다. 이름을 붙여주자고. 정말 내 것이라는 증거를 남기자고.  


“...주디라고 불러도 될까.”


 주디, 순간적으로 번뜩인 것. 그 이름을 내뱉었을 때 나는 마지막 끈을 매듭지었다. 


“좋아, 나는 너의 주디.”


 바라본 그 얼굴은, 자신의 새로운 이름에 만족했는 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의 주디, 나만의 주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묻는 말에 문득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손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 나의 입꼬리. 정말 좋아하던 언니의 미소를 보아도 지을 수 없었던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