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돌리기 겸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그리고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더이상 숨돌리기가 아니라 회피가 된다.



1. 애완동물을 예로 들자. 우리는 반려동물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하고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애완동물들은 대게 사람보다 먼저 늙게 마련이며 병이 들기 시작한다. 동물병원에서는 '치료가 가능하기에' 치료를 권한다. 그리고 치료비에 대한 부담은 상당하다. 이러한 부담은 그들이 나에게 준 기쁨과 소중한 의미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그러한 부담이 나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이라면 치료를 중단하고 요양을 시키는 것으로 끝났을 일이, 이제는 더 많은 치료비를 지불함으로서 더 오랜시간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지나친 부담이 닥칠때에 우리는 안락사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단순한 동물 이상의 것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행복을 극대화하지는 못한다. 애완동물 의학기술의 발전은 반려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해보자. 의료기술의 발전은 생명을 연장시키며, 그것은 의미있을 때에도 있으나 한편으로 보호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산자들로 하여금 불화를 발생시킬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공리주의적 악당은 장수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평가를 하여 그들의 삶이 의미있는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리주의적 판단으로 생명을 앗아가고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려한다. 이러한 믿음을 관철하기 위해 그들은 조직을 이루어 각종 의료기관에 잠입하여, 타겟이 되는 생명들을 앗아간다. 의료진으로, 같은 환자로, 보호자로 그들은 잠입한다. 그들은 은밀하며 그들의 존재로 세상은 더 윤택해진 듯 하다. 모 장례식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쓸데없이 통계에 민감한 사람이 주변 병원에서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른 죽음에 대해 의심하고 이를 조사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전 까지 말이다.



2. 예술가들은 예술을 한다. 그들은 건강한 정신으로 예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극적이고 격정적인 예술은 사회에 파급을 일으키고 세상에 인문학과도 같은 의미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은 병들고 뒤틀린 정신에서 발현되기도 한다. 어떤 예술가가 우울하길 바란다고 말한다면 '그건 뒤틀린 생각이야'라고 반박될 수 있다. 그러나 우울했던 예술가가 정서적 안정을 찾고 나서 이후의 작업물이 평이해진다면 우리는 결국 그 둘의 연관성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공리주의적 악당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정신적으로 아프게하고 그들을 나쁜 상황으로 내몬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자신의 전성기로 돌아오게 되며 이는 사회를 더 행복하고 이롭게 만든다. 직장상사

 이는 공리주의적 악당이 꼭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작업물이 그들의 슬픔과 정신적 고통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대중이 인정하게 되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고 중요한 것이다. 몇몇 예술가는 우울해야할 숙명이 있다. 그들의 에너지에서 우리는 영감을 얻는다. 그들이 정서적 답을 찾아내면 그들은 더이상 예술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