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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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다시 레버를 당겼다. 벌써 4번째, 슬롯머신은 그저 돈만 먹을 뿐이었다.


“레나, 보고 있어?”


“네 언니. 문제 있어요?”


“슬롯머신을 쭉 스캔해서 가장 오랫동안 잭팟이 안 터진 머신을 찾아줘.”


레나의 녹색 눈동자가 한차례 빛났다.


“언니 왼쪽에 있는 머신이 가장 오랫동안 안 터진 머신이에요. 그쪽에서 잭팟을 노리려고요?”


“아니, 내가 노리는 게 아니야. 너희가 만들어야 해.”


둘 다 의문을 표하자, 지원이 설명했다.


“슬롯머신을 돌리면서 검색을 좀 해봤어. 이 카지노에서 지난 5년 간 잭팟이 터진 건 단 1번… 무려 28억 4500만원을 받아갔지.”


“28억원을 해킹으로 받아가는 건가요?”


“당첨자는 인생역전을 했겠지. ‘왕 샤오밍’ 씨가 말이야.”


“삼합회가 운영하는 카지노에 중국인 당첨자면 이건…”


“맞아, 애초에 잭팟은 나오지 않고 적당히 돈이 쌓이면 끄나풀을 이용해 잭팟을 만들어내는 식이라는 거지. 말 그대로 돈세탁이야. 알리샤, 레나. 내가 신호를 주면 해킹해서 잭팟을 만들어버려.”


“제가 할게요.”


“알리샤, 너 할 수 있어?”


“네, 저 정도는 간단해요.”


“무슨 소리야? 저 기기 하나에 온갖 방화벽이며 보안 크랙이 가득한데!”


“언니는 경비원들 망이나 봐요. 제가 할 테니까.”


지원은 슬롯머신을 옮기고 곧바로 가지고 있던 코인을 전부 집어넣었다.


“알리샤, 시작해.”


지원이 레버를 당기는 순간, 알리샤의 보라색 눈동자가 빛나더니 이내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LED 마냥 빛을 냈다(레나는 여기서 깜짝 놀랐다.). 그러자 세차게 돌아가던 슬롯머신의 첫번째 줄이 7을 가리켰고, 곧이어 두번째 줄이 7에서 멈췄다. 마침내, 마지막 줄이 7을 가리키자 격렬한 축포와 함께 금색 코인 10개가 쏟아졌다. 지원은 그것을 주워 주머니 안에 넣은 다음 말했다.


“잘 했어. 이제 슬슬… 대기해. 인호, 포커 그만 치고 싸울 준비나 하고 있어.”


주변의 도박사와 중독자들이 놀란 눈으로 지원을 바라보며 서로 수근거리던 와중에, 얍삽하게 생긴 남자가 인호보다 덩치가 큰 경호원 둘을 대동하고 나타나서는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손님. 저희 카지노의 두 번째 잭팟 손님이시군요. 따라오시죠, ‘코인’을 ‘현금’으로 교환하고 카지노의 선물도 받으셔야 하니까요.”


지원은 그를 따라 카지노 뒤편으로 향했다. 그때, 레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분위기가 이상해요! 방금 고급 비행정 한 대가 옥상에 착륙했는데, 통신망에 삼합회 놈들이 엄청나게 잡히고 있어요!”


“뭐? 누가 오길래?”


“몰라요. 아무튼, 조심해요.”


한편, 지원을 이끌고 가던 이도 그 옆의 경호원과 무어라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그 자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남자가 공손한 연기를 하며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카지노의 VVIP께서 오시는지라… 소란을 용서해주시죠.”


“괜찮습니다. 빨리 가자고요.”


대략 몇 분간 걸은 끝에, 지원은 어느 문 앞에 이르렀다. 남자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왔던 길로 사라지자, 지원은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복도 뒤편에서 묵직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뒤편을 바라보았다. 마치 로봇이 복도를 걷는 것 같은 육중한 소리가 울리더니,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원은 아연실색했다.


“아담…!”


통신망 너머의 인호와 레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아담은 지원을 슬쩍 바라보더니 입을 열고 그때보다 더 기계음이 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때 그 용병이로군.”


“날… 죽이러 온 건가?”


“아쉽게도 널 죽이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은 네 년이랑 같은 모양이지만…”


“이봐 박철곤…”


그 말에 아담은 발끈한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면의 LED 화면이 붉게 번뜩였다.


“내 이름은! 아담이다.”


지원이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문 너머로 걸어가자 평범한 사무실이 있었고 넓은 소파에 뚱뚱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앉으시죠.”


지원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아담은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남자가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제 이름은 장자이, 카지노의 사장입니다.”


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잭팟을 터뜨렸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장자이는 험악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당신 같은 일개 손님이 딸 수 있는 건 아니야. 좋은 말로 할 때 이리 내놔.”


지원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셔? 나도 할 말 있는데 말이야.”


지원은 주머니에서 금색 코인 하나를 꺼내 튕겼다.


“너희에게 돈을 빌린 빡대가리 중에, 김민수라고 삼성물산 직원이 있을 거야. 내가 이걸 가지고 있는다고 니들이 돈을 주진 않을거니, 전부 돌려줄 게. 대신 그 멍청이가 진 빚도 없는 거로 하자고.”


장자이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그 새끼 와이프라도 되나? 안되지, 안 돼. 그건 원래 우리 돈이고, 그 새끼가 빌린 돈은 그 새끼가 갚아야지. 빨리 이리 내.”


그때, 아담이 말했다.


“어이, 장자이. 이 년이랑 말싸움하기 전에 잊은 거 없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담은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 충격 만으로 책상이 그 쪽으로 뒤집혔지만.


“이 씨발 짱깨 새끼가 어디서 말을 돌려. 니들이 이 바닥에서 카지노로 돈 뜯어먹는 게 누구 덕분인 지는 아냐?”


장자이는 당황했다.


“사, 삼성 덕분이죠.”


“너희들이 다진 고기가 아니라 사람 행세하며 사는 이유는?”


“삼성이 암묵적으로 넘어가니까죠…”


“그럼 너희들이 뭘 잘못했는지 알겠지?”


“도, 돈인가요?”


“돈인가요가 아니라 돈이다. 상납금 받으러 내가 직접 여기까지 행차했는데, 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하하… 압니다, 알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이봐 아담. 내가 슬롯머신으로 저 새끼들 ‘돈세탁’ 자금을 털었는데 말이야. 이거 어때? 대신 아까 그 자식 빚도 같이 탕감하자고.”


“들었지? 그 새끼 빚 지우고, 이거 당장 돈으로 바꿔 와.”


장자이는 연신 굽신거리며 통신을 연결했다.


“네, 네 그러죠. 야, 채무자 중에 김민수라고 있지? 그 삼성물산. 그래, 그 자식 빚 다 갚았어. 지워.”


그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방금 지웠습니다요… 그 새끼… 아니, 김민수 씨는 이제 저희랑 관련 없습니다.”


아담은 코인을 던졌다.


“이제 빨리 이거 현금으로 바꿔와.”


“네, 네 그래야죠…”


그가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는 순간, 둘은 무언가 깨달은 듯 벌떡 일어났다.


“이 씨발 새끼가!”


지원이 급히 그 문을 열자, 시끄러운 전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문 너머는 삼합회가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이었다. 인파 너머로 장자이가 보였지만, 아담은 문 가까이 가보더니 성질을 부리다 말했다.


“어이, 용병. 내가 네 년한테 하나만 의뢰를 맡기마. 저 새끼를 잡아와라!”


“대가는?”


“회장님의 명령 없이는 절대 네놈들을 추적하지 않으마.”


“확인.”


지원은 곧바로 클럽을 향해 뛰어들었다. 끈적한 노래와 야릇한 LED 불빛 아래서 반쯤 헐벗은 젊은 남녀가 몸을 비비는 가운데, 지원은 그들을 해치며 장자이를 쫓았다. 한 남자가 지원에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이봐 아가씨, 같이…”


지원은 그의 얼굴을 밀었다.


“부킹은 사절이야.”


그러면서 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레나, 인호, 알리샤. 카지노 옆에 나이트 클럽 있지? 놈이 그쪽으로 도망쳤어. 빨리 입구 막아! 존나 돼지처럼 살찐 중년 남자다!”


지원은 자기 앞에서 격렬하게 혀를 섞던 커플 사이를 갈랐다.


“씨발 여기서 키스하지 마.”


그리고, 장자이는 거의 입구까지 다다라서는 떡대 좋은 경비원 둘에게 소리쳤다.


“저 년 막아!”


경비원이 주먹을 풀며 다가오자, 지원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순순히 잡히지 발악은…”


지원은 귀찮다는 듯 주먹을 휘둘러 단숨에 처음 다가온 경비원의 턱을 갈겨버렸다. 단 한 방에 경비원 하나가 쓰러지자 다른 경비원은 당황한 듯 그것을 보더니 삼단봉을 꺼냈다.


“야, 그냥 비켜. 맞기 싫잖아?”


그는 그대로 삼단봉을 휘둘렀다. 지원은 왼팔을 들어 그것을 가볍게 막음과 동시에 놈의 명치를 치고, 연이어 배를 쳤다. 놈이 삼단봉을 떨어뜨리며 배를 감싸자, 지원의 주먹이 인중을 박살내는 것을 끝으로 그는 쓰러져 버렸다. 장자이는 문 밖으로 도망치려다 그 앞에 서 있던 인호에게 가로막혔다. 지원이 말했다.


“어쩌냐? 네 부하 두 명 치료비도 대줘야 하네?”


지원은 장자이를 붙들고 다시 돌아갔다.


“이, 이봐… 살려줘! 돈은 다 줄게! 제발 그 새끼한테만은!!”


“시끄러워. 니들 돈은 준다 해도 안 받을 거고.”


설득이 안 통하자 장자이는 분노했다.


“이 새끼가! 삼합회라고 삼합회! 내 뒷배가 두렵지 않냐?! 일개 용병 따위, 우리 조직이 사돈의 팔촌까지 다 쓸어버릴 수 있어!”


“해보든가. 그런 협박 많이 받아봤어.”


지원은 반쯤 체념한 장자이를 아담의 발치에 던져버렸다.


“의뢰 완료. 이제 됐지?”


“말한 대로, 회장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너와 주변 용병들은 건드리지도, 추적하지도 않으마.”


“생긴거랑 다르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네, 다신 보지 말자고.”


지원은 그 길로 사무실을 떠났다. 레나가 물었다.


“언니, 괜찮아요?”


지원은 차에 타기가 무섭게 뻗어버렸다.


“씨발… 누가 물 한 잔만.”


지원은 레나가 준 물병을 겨우겨우 들더니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숨을 토했다. 어찌나 정신없이 마셨는지 마신 물 반 흘린 물 반일 지경이었다.


“좆되는 줄 알았네. 그 자식이 우릴 공격할 생각이 없어서 망정이지… 다 끝날 뻔했어.”


알리샤가 물었다.


“그 자는 누구죠?”


“설명하자면 길어.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인호가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가서 밥이나 먹죠. 포커로 좀 땄어요.”


지원은 말 대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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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원래는 셋이서 포커치다 싸울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