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일이다.


고등학교 남녀공학의 교실 풍경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때와는 달리 아이들도 나름 조숙해져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붙어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2학년에 접어들고 반이 바뀌어도 1학년 때와 같은 반 아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가 그랬다. 그 아이는 여자애들 무리에서 나름 밝고 말도 잘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웃으면 다른 여자애들도 웃기 시작한다. 분위기를 즐겁게 할 줄아는 아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인기가 많은걸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마음에 두는 듯한 눈치를 보이는 녀석도 더러 보일 정도였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번은 그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 녀석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음,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얼굴이 이쁘잖아?"


지극히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할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아 더욱 더 집요하게 물었다.


"어떤 점이 예쁜데?"


"얼굴도 작고 눈도 크고 코도 높은 편이고 무엇보다 입이 예쁘지 않냐? 말할때마다 조목조목 움직이는 입술까지 너무 예쁜거 같아."


더 이상 말이 통할거 같지 않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지만, 녀석은 다시 그 아이를 상상하면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몰라.


몇번이고 곱씹어 보았던가. 하지만 그 아이의 얼굴을 볼때마다 그 다짐은 허무해진다. 1년이 넘도록 마주 했지만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니 그건 익숙해지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아마 못생기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 이외에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쁘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만은 그 아이의 얼굴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커다란 눈망울은 그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멍에 눈알과 비슷한 무언가를 박아 넣은것 같았고높은 코는 기묘한 조형물 같았으며 입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심히 부자연스럽다. 그 무엇 하나 사람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아이를 오래 마주하고 있을때면 기분이 섬뜩해지고 속이 메쓱거려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나까지도 그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까지 퍼졌지만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무엇보다 그 아이는 인기가 많아 나같은 녀석과는 인연이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의 주제는 이성의 초상화다. 남녀끼리 짝을 지어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보도록."


성의라고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성의없는 주제를 던지는 미술 선생은 역시나 남의 일인것마냥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며 앉아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반아이들이 모여 제비뽑기를 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와 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바꾸는건 귀찮으니까 무조건 그대로 가라."


수분이라곤 없는 마른 목으로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안나오는 답답함과 가슴을 때리는 충격이 머리까지 울려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선생이란 녀석은 관심이라곤 보이지 않는 주제에 한번 뽑은 제비는 바꿀 수 없다는 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식은 땀이 절로 배어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녀석들은 부럽다며 실없는 소리를 했지만 그마저도 들리질 않는다.


"잘 부탁해."


눈이 있어야 할 위치의 커다란 구멍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나오는 소리와 전혀 맞지 않는 입모양으로 그 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자리에서 군소리를 할 수도 없었기에 나 역시 할수없이 인사를 한다.


"잘 부탁해..."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그려낼 수가 없었다.


다른 여자애를 상상해서 그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더더욱 안될 짓이기 때문이었다. 결국에 아무것도 그려 내지 못한건 나밖에 없었다.


몇번이고 제출하라고 호통을 치는 미술 선생을 무시하는 것보다 과제가 끝나지 않아 그 아이와 마주해야하는게 가장 스트레스다. 이렇게 계속 엮인다면 몸에 탈이 날 것이 분명하다.


"괜찮은거야?"


걱정하는 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그 아이의 표정은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무언가 불만이 있어 찡그리고 있기도 하다가 어느샌가 눈만 히죽거리며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표정 변화에 생기는 입가의 주름이라던지 눈가의 보조개 같은 것들은 기묘하게도 한 박자정도 느리게 생겨나고 없어진다.


몇번이고 가까이서 그 아이와 마주하고 있자니 그 아이에 대한 새로운 인상은 다른 것으로 갱신되어 갔다. 그저 무작정 사람같지 않다는 흐리멍텅한 인상은 보다 명확하게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어설프게 사람 흉내를 내는 것 같은 뭐 그런.


왜 이런게 학교에 그리고 우리 교실에 섞여 있는걸까. 

  

그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끝내 버려야만 한다. 


속이 메쓱거려 온다. 위가 뒤틀려 먹은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얼굴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질감을 알수 없었지만 사람의 피부가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그 아이의 손가락이 얼굴을 스침과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미움을 받더라도 상관없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한 채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일어났어?"


몽롱한 의식을 붙잡고 들어온 것은 익숙하지만 환영하지 못할 목소리였다. 게슴츠레 눈을 뜨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일상의 것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어. 몸이라도 안좋았던거야?"


그나마 버틸만한건 자리에 앉은 그 아이의 시선이 책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 얼굴만 마주하지 않는다면 말을 섞는건 버틸만 하다. 하지만 일부러 대답은 하지 않았다. 무시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내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불쾌한 골짜기란 말을 알고있니?"


그럼에도 그 아이는 주눅이 들거나 불쾌한 내색없이 자기가 할말을 이어나간다. 


"봉제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귀엽다고 생각한적은 있지? 하지만 지나치게 리얼하게 모방한 서양의 인형 같은거엔 섬뜩함을 느낀적, 다들 있을거야."


책을 내린 그 아이는 여태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과 입이 비정상적인 길이로 찢어져 있었고 주변에 주름들이 구깃구깃 잡혀져 있다. 얼굴 피부의 모든 곳이 구겨져서는 역겨운 생동감이 한 층 더해진다.


"즉 인간에 대한 퀄리티가 높은 가짜일수록 불쾌감을 유발하는거야." 


그 아이가 웃고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것도 폭소가 나올정도로 기쁜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정확히는 그 아이의 머리카락에 가려진 턱선의 일부분이었다. 


방광에 오줌이 차있었다면 꼴사납게 지려댈 상황이었지만, 지금이라면 그 아이의 정체를 알수있을 것이다. 입안에 고인 침을 목구멍으로 넘긴채 조심스럽게 더듬어간다.


처음 만졌을때는 분명히 사람의 체온이었지만 힘을 주었더니 냉기가 느껴졌고, 질감은 피부라기보다는 실리콘이 한없이 부드러워진다면 그런 느낌이 날거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이질감이 손 끝에서 느껴졌다.


인간이라면 있을리가 없는 부분에서 틈이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이음새처럼 얼굴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틈이었다. 족히 손가락 두마디정도는 손쉽게 들어 갈만한 널널함은 달리 말하자면 얼굴 피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리라.   

 

급하게 뿌리쳐 내린 손가락에서는 피 한방울조차 묻어나오질 않았다. 그 아이 역시 고통을 호소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은채 일그러진 웃음을 계속 띄고 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갑작스럽게 얼굴을 맞대어왔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우선은 입이라고 여겼던 기관으로 게걸스럽게 내 입술을 훑어대었다. 조형물 같은 코가 얼굴을 찔러대는게 방해가 되었는지 그 아이는 약간 비스듬하게 얼굴 각도를 튼다. 하지만 입술은 물론 기분나쁜 주름들이 얼굴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게 더욱 더 더러운 기분이었다.


인간의 힘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힘에 억눌러져 저항하지도 못한채로 그저 입술과 얼굴을 겁탈당하는 듯한 감각. 굴욕감보다는 공포심이 더욱 더 강하다. 그래도 잡아먹는건 아니였는지 얼굴을 떼고 다시 서로간의 원래의 거리로 되돌아갔다. 체감상 1시간은 가볍게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계를 보니 겨우 2분정도 남짓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 역겨운 얼굴은 다시금 시시각각 변하더니 검지손가락의 모양을 한 신체부위를 입이라고 여겨진 기관에 갖다댄채 그 아이는 말했다.


"이건 비밀이야."


섬뜩하고 기괴한 모습과는 상반된 아주 귀여운 목소리였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기를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