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재의 흔적은 이제 없고 생기가 넘치는 도시가.....

 "생기는 개뿔."

 TV를 보던 남자가 담배불을 끄고서 꽁초를 땅바닥에 던졌다.

 "세상에 이렇게 어두침침한 도시는 처음이네."

 남자는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겨울이기에 주변에는 지난 밤에 쌓인 눈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렇게 또 한개비를 다 태웠을 무렵 누군가 다가왔다.

 "뒷골목에서 담배나 태우기에는 너무 잘생긴거 아냐?"

 "헤에,몇살이야?"

 남자는 귀찮은지 손으로 꺼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남자가 보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음침하게 거기서 담배나 태우고 있었냐?"

 "음침하기로 따지면 우리 중에서 제일 음침한 건 너잖아?"

금발에 적안을 한 사내가 남자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느낌은 어때?"

 "토악질이 나오더군."

 "하긴.....들어가자.숙소 잡혔어."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하지?"

 "내일까지만 있으면 그만이야."

 남자는 꽁초를 던지고서 동료를 따라서 숙소로 향했다.

식사는 간단하게 먹고서 바깥을 내다보니 늘 그렇듯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거리를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대휴일 이브던가?"

 남자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일기를 작성했다.

 대화재,악마의 신도들이 일으켰다고 알려진 참사.

도시를 집어삼킨 불은 일주일을 타올랐고 도시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불타버린 거리에는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만이 작은 것이라도 건지고자 필사적이었다.

그때를 떠올린 남자는 일기를 덮고서 여관 밖으로 나왔다.

 "하나도 안 남았군."

 무엇 하나 그의 기억과 맞는 것이 없었다.

 "어이,한스."

 남자는 동료를 불렀다.

 "찾았다.붉은 사제다."

 "그렇다면야.미리 맞춰둔 알리바이 기억나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가볍게 지면에 착지한 남자는 아까 전 창문 밖에서 포착한 사람을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커다란 창고였다.

 "유류와 화공약품 창고인가."

 담장에 그려진 경고판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외각에 설치된 카메라들의 배치,담장의 높이,안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들.

 "그야말로 최악의 폭탄이군."

 남자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4미터에 달하는 담장을 넘는 것은 무리다.

빽빽히 설치된 카메라를 피해서 우회로를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복면을 꺼냈다.

외투에 달린 후드까지 눌러쓰니 누가봐도 범죄자였다.

이제부터 할 행동을 생각한다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르디온의 매듭이다."

 그는 정문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나갔다.

정문의 경비는 남자에게 소리를 쳤지만 고작 고함에 멈출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멈...."

 가까이 다가온 남자에게 테이저건을 겨눈 순간 경비의 왼쪽 옆구리에 주먹이 꽂혔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쓰러진 경비가 쥐고 있던 테이저건을 뺏어서 같이 경비를 서던 다른 경비에게 쏘았다.

 무력화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남자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내부는 온갖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하지만 물건을 두는 장소는 그 목적에 따라서 배치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단부에 가솔린,상단부에 질산화물."

 남자는 가볍게 파악한 구조로 의도를 잡아냈다.

초기의 빠른 확산 이후 천장을 폭파시키며 확산하는 방화.

 "나와,방화성애자들."

남자가 서늘한 목소리로 숨어있을 적을 불렀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궁금하군."

 "딱 봐도 방화범처럼 생겼으니까."

 남자는 자세를 잡았다.

창고 안은 달빛이 들어왔지만 어두웠다.

그럼에도 남자는 적들의 무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곤봉과 테이저건과 페퍼볼 발사기.

제압용 무장이다.

 "처리하도록."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의 지시가 떨어지자 테이저건과 페퍼볼이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남자는 무시하면서 지휘자 쪽으로 달렸다.

 "이런 미친....!"

 10개가 넘는 테이저와 수십발의 페퍼볼을 맞았음에도 남자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가 빨라졌다.

 "팔라딘!"

 남자의 앞을 거구의 중장비를 입은 놈들이 막아섰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몸을 부딪혀서 뚫어냈다.

 "으아아아아!"

 지휘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마저도 시간문제였다.

멱살을 잡힌 지휘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

 "넌 도대체 뭐냐!"

 "알아서 뭐하게?"

 남자는 지휘자의 목을 꺾어버렸다.

인간의 목을 악력만으로 꺾은 것이었다.

혀를 내민채로 죽어버린 지휘자의 시체를 쫓아오는 적들을 향해서 던졌다.

그것과 동시에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둥,사람의 몸을 쳤는데 북을 치는 소리가 났다.

보호구를 믿고서 몸을 들이민 중장비의 사내가 쓰러졌다.

 남자는 다시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면서 적들을 착실히 줄여나갔다.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팔이나 다리 하나씩 부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

고통을 잊은 듯한 움직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신체능력

 "인간도 아닌 놈.....!"

 "너희들 입에서 듣고싶지는 않은 말이군."

 마지막 녀석이 필사적으로 휘두른 단검이 남자의 복면에 닿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그 흉터....!"

 "가는 길 의문은 풀렸나?"

 남자는 적의 머리를 잡고서 땅바닥에 찍어버렸다.

 "페....인...킬러......브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