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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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지원은 LAD로 직접 찾아갔다. 조 씨는 기묘한 사이버웨어를 옮기며 말했다.


“빨리 왔네?”


지원은 소파에 주저 앉아서는 자신의 권총을 분해해 정비하기 시작했다.


“늦게 온 거야. 차가 좀 막혀서. 아, 내가 ‘아담’ 만난 건을 이야기했던가?”


“했어. 박철곤 답지 않게 순순히 물러났다는 것까지.”


“순순히라고 할 정도로 미친놈이야?”


“그냥 미친놈이 아니야. 사이코패스지. 용병 시절에 두어번 같이 일했었는데, 재정신이 아니야. 물욕 이전에 사람 박살내고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인간이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우릴 추적하지 않겠다니, 갑자기 해병대 시절 기억이라도 떠오른건가?”


잠깐 침묵이 흐른 다음, 조 씨가 다시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 사람이랑 드디어 이야기가 통했어.”


“김민수라는 사람 말이지?”


“그래, 아쉽지만 만나서 이야기하자더군.”


“어디서? 설마 수원까지 가야 하는건가?”


“올림픽공원에서 만나자고 하더라. 21시 30분까지.”


“1시간 정도 남았네. 바로 출발하자. 레나랑 알리샤는?”


“저 여기 있어요.”


예상 외로 나온 것은 알리샤였다.


“레나 언니는 집에 있어요. 감기에 걸렸거든요.”


“감기? 면역체제는 원래 그대로인가 봐?”


“그런 것 같네요.”


“타, 바로 가자.”


조 씨와 알리샤를 태우고 올림픽공원을 향해 달리는 동안, 지원이 물었다.


“알리샤, 혹시 고등학교는 나왔어?”


“아니요.”


“중학교는?”


“기억이 없어요.”


“너 기초교육은 받은 거지?”


“나름요.”


“민증은?”


“없어요.”


지원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조 씨가 말했다.


“알리샤는 내가 데려왔지만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물론 알리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신기하네… ‘아무도 모르는 아이’라는 건 말이야… 21세기 초반에나 나오던 TV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산물인 줄 알았는데.”


“저도 저 같은 사람은 처음 보는 걸요.”


그렇게 말한 알리샤는 건물 외벽 전체를 비추는 홀로그램 광고를 바라보았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모델이 엉덩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지 광고 하나를 위해 외벽 전체에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우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요?”


“캘빈 클라인이네. 잠실에 크게 매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지원은 조 씨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공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거야? 올림픽공원이 얼마나 넓은지는 알지?”


“평화의 문에서 만나자고 했어. 공원 안에 주차하지 말고 다른 곳에 하자.”


잠시 후, 셋은 공원 안으로 들어왔다. 입구에서 그들을 반기는 평화의 문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그 나름의 위용을 뽐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 씨가 말했다.


“중학생 때 여기 온 적이 있었어. 그때는 폭격 맞고 오른쪽이 가루가 되어 있었지. 뭐, 그걸 지금까지 방치해 두면 안 되긴 하지만.”


지원은 허벅지에 찬 홀스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인간이 장소는 잘 골랐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이니까… 알리샤, 그래도 모르니까 계속 살펴봐.”


알리샤의 두 눈은 계속 빛나는 상태였다. 두꺼운 옷감으로 짠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지원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머리카락도 빛나고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수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어요. 차에 타고 있을 때도 우리를 미행하던 차는 없었고요.”


지원은 평화의 문 너머 깃발이 잔뜩 꽂힌 광장 중앙에서 빛나는 홀로그램 영상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당시 참가국의 국기들이 홀로그램으로 허공에서 펄럭거리고 있었는데, 공원 한가운데까지 도심마냥 불빛이 번쩍이는 꼴이 기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멋지게도 보이는 곳이었다. 아직도 광장을 거니는 시민들을 훑던 지원의 시각 사이버웨어가 한쪽에서 멈췄다.


“조 씨, 저 사람이야?”


지원을 따라 같은 곳으로 고개를 돌린 조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장 위에 코트를 입은 그는 코트 깃을 세우고 페도라까지 푹 눌러쓴 것이 역설적으로 더 수상하게 보이고 있었다.


“저렇게 ‘나 수상해요’라고 온 몸으로 광고를 하는 지능이 딱 기업 놈 같았거든.”


곧이어 그 역시 지원 일행을 봤는지 수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당신들이 그 용병이요?”


지원은 남자의 불안정한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풀풀 풍기는 싸구려 담배와 대마초의 악취가 코를 자극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는 당신이 ‘삼성물산’의 ‘김민수’야?”


남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김민수 맞소.”


지원은 도저히 그 냄새를 못 맡아주겠다는 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하나 충고하자면… 무슨 20세기 스파이 영화 타깃 마냥 머리 돌리지 마. 그게 더 수상해 보이니까.”


알리샤가 말했다.


“여전히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아요.”


조 씨가 물었다.


“당신, 올해 1월 1일에 복귀하기 전 3년… 그 ‘공백’ 동안 어디서 뭘 했지?”


그는 불안한 듯 약물과 피로로 쩔어 충혈된 눈동자를 마구 굴렸다.


“내가 이걸 말해주면… 삼성한테 추적당하는 건 아니겠지?”


지원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집어넣었다.


“우리가 삼성 끄나풀로 보인다면 이대로 퇴근해도 돼. 하지만 일개 용병들이 삼성의 끄나풀이라면… 삼성 입장에서도 ‘가오’가 안 살지 않을까?”


그는 늦가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식은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난 그동안 의정부시에 있었어. 사장… 아니, 지금 회장께서 내린 특명 때문이었지. 그 ‘연구소’에서 3년 간 거의 감금되다시피 하면서 일했다고.”


조 씨가 물었다.


“그 연구소는 무엇을 연구했지?”


“사이버웨어야. 정확히는 군사용 의체 사이버웨어였지. 제작한 이유에 대해선 나도 몰라. 그저 ‘분쟁지역 수출용’이라고 추측했을 뿐이야.”


지원은 의문을 표했다.


“의체 사이버웨어? 신체 대부분을 사이버웨어로 갈아 끼운다고? 미친거 아냐?! 광인을 양산해대는 거잖아!”


“아니, 틀려. 군사용 의체는 온갖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신경을 억제하니까. 그냥 반쯤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광인이 될 위험성은 0에 가깝다고.”


“0에 가깝다는 것은 확률이 0%가 아니라는 소리야. 아니, 그보다도 그렇게 멀쩡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다시 복귀한 이유는 뭐야?”


“작년 연말에 사고가 터졌거든. 유일한 사고였어. 프로토타입 하나가 감시망을 뚫고 탈주해버린 거야. 그래도 금방 특공대가 출동해서 제압했어. 별 문제는 없었다고.”


지원은 단숨에 그의 멱살을 붙잡고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별 문제? 이 새끼가…! 그 ‘별 문제’ 때문에 경찰이 몇이나 죽었는지 알아?! 씨발 내 부하 32명이 죽었다고! 그게 별 문제가 아니냐? 대답해 봐!”


그는 숨이 막히는지 캑캑거리며 지원의 손을 쳤지만, 지원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아,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까 이거 좀 내려놔 줘!”


지원은 그를 바닥에 던져놓다시피 하며 내려놨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젠장… 경찰 나으리랑은 이래서 얽히기 싫었는데… 아무튼 그 사건 때문에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어. 프로토타입들만 잔뜩 만들었지. 조금만 손보면 양산도 가능하고. 게다가 이건 단순이 ‘전쟁’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야. 화재 현장이나, 산업현장에서도 쓸 수 있는 게 최종 목표였다고!”


조 씨가 말했다.


“그럼 그 ‘연구소’는 폐쇄됐나? 안에 있던 것들은?”


“대부분 ‘파기’했을 거야. 물론 단순 사이버웨어들은 남아 있겠지만… 왜, 탐나냐?”


“그럼, 탐이 나고말고. 연구소는 어디에 있지?”


“도봉산. 신한대학교 뒤쪽에 있는 공장 같은 건물이야.”


“그렇다면 내부 방어시설 같은 건?”


그때, 알리샤가 소리쳤다.


“6시 방향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어요!”


지원이 그 쪽을 바라보자, 시민들 사이에서 사복을 입은 남자들이 총을 꺼내면서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삼성이야! 차로 가자!”


“자, 잠깐만! 나는?!”


지원은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보던 그를 주먹으로 후려 쳤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자 지원은 조용히 말했다.


“넌 우리에게 협박당해 중요 정보를 불 뻔한 피해자야. 알겠냐? 처신 잘 하라고.”


그 말을 남기고 셋은 후다닥 차로 도망쳤다. 다행히 그들은 지원 일행을 쫓을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안 쫓아오네요.”


“그 인간, 내가 잘 일러두긴 했는데 괜찮으려나?”


“미세스 리 말대로 처신은 알아서 잘 하겠지.”


“걱정 마요. 도망치면서 그 남자의 기억에 일부러 혼선을 줬으니까. 본격적으로 뒤지지 않는 한 우리의 얼굴이나 대화내용을 뽑아낼 수는 없을 거예요.”


“잘 했어 알리샤. 빨리 돌아가자. 미행 없는지 확인 잘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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