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조환은 1480년 슬퍼하는 친지들을 뒤로한채 매천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한 직후 중앙조정은 내전이 시작되는데 태후가 의심스럽게 사망했고 이후 왕의 생모인

전왕의 후궁(측실)의 파벌이 권력을 잡게 되자 이에 반발하는 구 외척(즉 정실왕후의 친족)과 왕족파벌이 반기를 들고 궁중내전이 발생한것이다. 


국왕은 아직 어린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월령국 정계가 빠른시일내에 안정을 되찾기는 요원해 보였다.


1492년 견조환은 이러한 어지러운 정세속에  마침내 국호를 매천국으로하고 스스로를

매천부목에서 매천국왕으로 칭한다. 보위에 오른것이다. 그러면서도 월영국에 신칭을 유지하고 조공을 바쳤다. 그러면서도 월영국 본국의 간섭은 사양한다고 통보했다. 마치 교원국이 했던것과 같았다.


월영국 본국은 워낙 정신이 없었기때문에 결국 월영국이 상국으로 우위에서서 조공을 받는것으로 하고

교원국과 매천국 양국을 승인하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하게 된다. 이해가 1496년이다.


1500년 절치부심하던 매천국은 드디어 교원국을 향해 거병하게 된다. 명분은 아버지의 임무가 교원평정이었으므로 대를이어 월영의 신하인 자신또한 그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것이다. 


매천국의 막강한 생산력과 해상교역을 통해 축적한부로 그 군세는 강력했으며 견조환또한 월영본국에 있을때 그 명성이 드높은 명장이었다. 중기병 2만에 중보병 4만 총합 22만 7천명이며 보급및 지원병력까지 포함하면 40만 3천명이 동원된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교원조정은 대혼란에 빠졌고 초전에 상당한 병력이 손실된다


이에 우리두나라 모두는 월영왕의 신하인데 어찌 그대들이 우리를 침범하느냐는 항의국서를 매천에 보냈으나 매천측은 그대들도 똑같은 월영의 주목인 은주와 서해주를 멸하지 않냐며 코웃음만 쳤다


이에 교원조정은 주화파와 화친파로 나뉘어 격론이오같는데 교원 순종이 주전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화친파의 거두이자 백전노장 진두한을 보내 맞서게한다


진두한은 계략으로서만 매천국을 이길수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국은 이번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모든것을 걸기로 맹새했고 조정에 자신의 작전을 승인받는다.


한편 기세가 오른 매천군은 3개주 20개군현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교원국영토를 빠르게 잠식해 나같으나 진두환은 어떠한 군사행동도 보이지않았고 매천군은 진두환과 교원군이 줄행랑을 쳤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반의 쾌진격은 교원국의  함정이었고 교원국은 초토화전술(청야전술)로 응하기로 조정이 진두한의 건의를 고심끝에 받아들인것이다.


사실상 매천국은 범아기리로 좋다고 들어간셈이었다. 현지에서 보급을 충당할수가 없으므로 보급선은 본토에서 무지막지하게 길어져만 가고 있었고 이는 부대의 행군속도와 사기를 저하시켰다.


뿐만아니라 교원군도 놀고있진 않아서 끊임없는 치고 빠지기 전략으로 매천국의 보급을 교란했다.


한편 교원영내로 진입하는 루트중에 계곡을 따라 초계령이랑 고개를 넘어야 가장 빨리 교원국 수도권에 진입하게 되는데 장기전으로 끌면 불리하므로 단시간에 전병력을 강행군으로 이곳을 돌파하여 교원국 수도권을 공략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때 대규모 병력이 좁은 계곡을 따라 행군할때 발생하는 병목현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것이다.


교원국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고지대를 미리 선점하고 매복했다가 매천국 병력이 교통체증에  걸리자마자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고 이때 이미 매천국의 선봉이 꺾인상태였다. 


지독한 교원군의 공격에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매천국 장군들은 태조에게 퇴각및 재정비후 다른진공루트를 찾아고 건의했지만 조바심이 났는지 태조는 이제와서 퇴각은 무리라면서 강행진군을 명했다.


그리고 매천군은 더 깊숙히 진군했다. 교원군의 저항은 거의 없었고 이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했지만 태조는 애써 휘하 군사들을 독려하며 진군했다. 마침내 매천군이 계곡의 중간을 막 벗어나는 찰나 이번엔 교원의 수공이 시작되었다.


사실 수공에의한 병력손실보단 군마와 군마를 먹일 마초, 화약, 화살등 각종 군장비가 손실된게 엄청나게 큰 피해라면 피해였다. 그리고 살아남아 겨우 물에서 나온 기진맥진한 매천군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는것은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교원군사들의 칼날이었다.


매천군은 대패했고 그렇게 획득한 영토를 모두 상실한채로  겨우 6만남짓한 병력만 추스려 태조는 귀환할수있었다.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초전에 매천국에게 교원군도 반수이상의 병력이 상실된 상태에 엄청나게 고전했고 나머지 남은 반수의 병력도 이 한방을 위해 꾸준히 매천군과 맞붙으며 상당히 갈려나간 상황에서 해적, 월영본국, 소수민족이 언제든지 뒤통수를 때릴 가능성이 존재했다. 게다가 강력한 매천국상대로 승부를 보기위해 꺼낸 비장의 카드가 청야전술이어라 도저히 전쟁을 지속하기엔 교원도 무리였다.


결국 먼저 강화를 제의한건 교원국이었고 매천국이 숙부, 교원이 조카 정도의 관계를 맺되 매천국이 교원국에 공납을 바쳐야하는 명백한 매천국이 패배한 전쟁으로 결말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