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왜 어른들은 밤에 떠들지 말라고 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던 그들은 잠깐 동안 정적에 휩싸였다. 그 틈을 비집고 남자는 어릴 적부터 간직한 호기심을 털어놓는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바깥을 보니 벌써 밤이라서."


"겨울은 해가 짧으니까." 


"그것보다 난 그게 궁금한데. 밤에 떠들지 말라니 누가 그러든?"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남자가 용기 있게 뱉은 화두였지만 일동은 다시 정숙을 지켰다.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나? 


"뭐 정확히는 시끄럽게 떠들지 말란 뜻이었지만, 잊어버려. 술김에 이상한 소릴 했군" 


"음... 아니야. 나도 뭔가 예전에 비슷한 소릴 들은 적이 있어." 


반갑게도 어느 여인이 그의 말에 대꾸해준다. 모진 칼바람에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속살이 훤히 보이는 차림의 숙녀. 남자도 몹시 말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어떤 말이었는데?" 


"식당 아르바이트 첫날에 말야.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매니저한테 사람이 없네요 하고 실없는 이야기를 했거든. 그런데 그런 소리 하지 말라 했어. 아니나 다를까 점심이 되니 손님들이 물밀듯이 몰려오더라." 


"징크스 같은 거구나 하하" 


홍일점이 관심을 보이니 다들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넌 어땠어?" 


"응?" 


"어떤 상황 속에서 할아버지가 밤에 떠들지 말라 했어?" 


"별 거 아니야. 어릴 적엔 거르지 않고 일요일 밤에 하는 개그 프로를 봤거든" 


"아, 나도 기억나네 지금은 폐지했지." 


"응 그거. 그래서 늦은 밤에 웃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정색하면서 밤에는 그렇게 웃지 말래." 


"왜?" 


"몰라. 그래서 지금 한 번 물어본 거야." 



다들 긴장된 눈초리였다. 맥주를 정수기에 꽂아 먹는 것처럼 양껏 먹었는데도 더 이상 화장실에 가는 인원은 없었다.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긴장감을 뚫고 말을 잇는다. 안경을 쓴 사내였다. 



"그것도 징크스 관련된 거 아닐까? 밤에 웃으면 뭔가 안되는 이유라도" 


"혹시 귀신은 아니겠지? 나 이런 이야기 싫어..." 


"아냐. 분명 처음엔 '어른들이 밤에 떠들지 말라고 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지? 뻔하네 밤에는 사람들이 자니까 조용히 하란 뜻일 거야." 


"그치만 우리 고향 집은 아파트도 아니고 외진 곳에 있던 주택이었어. 가족들도 그 시간엔 깨어 있고" 


"어쩌면 밤에 웃거나 큰 소리로 말하면 잠이 깨서 그런 걸지도 몰라." 


"오 그건가 보네. 일요일 밤에 했던 프로그램이면... 다음 날은 월요일이니까 빨리 일어나야지." 


"뭐야 별 거 아니네" 


상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캔맥주에서 탄산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 하나를 해치우고 작은 성취감을 나누던 도중



"다른 이유일지도 몰라." 


다시 한 번 여인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엔 어딘가 분위기가 묘하게 어두워진 느낌이다. 



"왜 그래?" 


"지금 생각났는데 우리 고향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어." 


"......갑자기?" 


"들어봐. 흥미로운 이야기니까. 어쨌든 그 불문율은 등산객들한테 통용되던 이야기인데. 산에서 목이 마르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 


"왜?" 


"예전에 우리 삼촌이 산에서 흥얼거리며 등산을 하고 있었어. 왜 아저씨들은 괜한 걸로 운율을 띄우니까" 


"그래서?" 


"힘들다~ 지겹다~ 노래하던 중에 목이 마르다고 말했거든? 그러더니 어디선가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더래" 


"......" 


"삼촌은 근처에 약수터라도 있나 싶어서 그 소리를 따라갔거든?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찾을 수 없었지." 


여자는 말을 잇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딘가 꺼림칙한 결말이 기다리는 느낌이다. 



"걷던 중에 삼촌은 이상함을 감지했지. 왜냐면 한겨울에 행하던 등산이었거든 영하까지 떨어진 혹한기라서 시냇물이라면 흐르지 않고 얼었어야 정상이야." 


"아 진짜~ 이런 얘기 싫다고~" 


"두려움에 부랴부랴 산을 내려갔어.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한테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진상을 알고 있었지."


"뭐였지?"


"그 친구는 불교 신자라 산에 가는 일이 많았어. 절이 산에 있었거든. 스님들한테 한 번 불문율에 대해 물어봤는데 표정을 구기면서 설명해주었대" 



꿀꺽. 침이 힘들게 목젖을 통과하는 소리에 여자는 흡족한 듯 실소를 머금는다. 



"그 산에는 예전부터 장산범이란 요괴가 목격됐었다네. 그것은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특기인데, 목이 마르단 소릴 들으면 물이 흐르는 소리를 입으로 낸다는 거야. 아아... 만약 삼촌이 그 소리를 계속 쫓아갔더라면..." 



여자는 머리를 앞으로 넘겨 산발로 만든 뒤 일행에게 막무가내로 돌진하며 괴성을 지른다


"우와아아악!" 


"꺄아악!" 


"아오~ 하지마 제발 좀!" 


그녀의 장난으로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분위기는 다시 유쾌하게 변해있었다. 멋진 여자다. 자신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남자는 자책한다. 



"결국 밤에 떠들지 말란 소리는 과연 뭐 때문이었을까? 궁금해지네 흐흐"


"제발 무서운 이야기는 이만 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그, 그러자고..." 


다시 일행은 수다 삼매경에 돌입했다. 주로 남을 헐뜯는 이야기, 군대나 학창 시절의 추억 이야기였다. 



시간은 거슬러 깊은 밤이 도래하자 남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수다 소리에 묻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통화를 마친 남자는 화가 난 듯하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모호한 표정이 되었다.



"왜 그래?" 


"할아버지가 연락 했어. 당장 집으로 오라고"  


"뭐야 통금이야?" 


"응. 아무래도 가야겠어. 할아버지가 적적하실테니" 


"그러지 말고 더 있자.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맞아. 할아버지는 뭐 다른 분이 챙겨주겠지." 


"아냐. 집에 아무도 안 계셔. 예전에 말했잖아.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난 뒤론 나랑 할아버지랑 지낸다고" 


"그랬었나?" 


"미안. 먼저 가볼게."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향한다. 이상하다. 그의 신발이 없다.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누구 내 신발 본 사람?" 


"칠칠맞긴!" 


"가지 말란 신의 뜻 아닐까?" 


"지랄..." 


차가운 바깥 바람을 쐬고 와서 그런 건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방바닥이 따스하게 느껴져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몰라주고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할아버지다. 


"하아..."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 화면에 비친 프로필 사진이 눈에 띄었다. 정갈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 영정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었다. 



"어? 맞다.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남자는 줄곧 느껴왔던 이질감을 눈치 챈다. 다들 취해 웃고 떠들 때. 자신만 정신이 맑게 개어 있었다. 



"뭐야 이게? 꿈인가 보네... 어쩐지 이상하더라"


그 순간 리모컨으로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이 정적이 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생기 없는 눈으로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아. 꿈에서 하면 안되는 말도 있구나. 남자는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