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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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조 씨가 말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오늘 자정에 연구소에 잠입할 거야.”


지원이 담배를 물며 말했다.


“아주 일사천리네. 위치 확인받기가 무섭게 계획까지 다 세우고.”


“그 자가 삼성에게 잡힌 이상 너무 늦으면 기업이 연구소를 털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무튼, 이거 잘 봐.”


조 씨는 테이블 한가운데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위치는 신한대학교 뒤편 건물이야. 건물 부지 전체가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이전에 인호랑 정찰 갔을 때 확인했는데 딱히 개구멍 같은 건 없어.”


지원이 말을 끊었다.


“정찰? 나는?”


“그때 그 꼬마랑 같이 있었잖아. 아무튼, CCTV나 자동 감지 포탑 같은 건 전부 비활성화 된 상태였지만 조폭이나 기타 기업들의 공격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 우리는, 자정 무렵에 연구소에 잠입해서 혹시나 모를 보안장치 수색 및 해제 후 내부에 희귀한 사이버웨어들을 전부 내 봉고차에 실어서 유유히 떠나면 되는 거야. 그 주변에는 민가도 없고 가로등도 적어서 더더욱 편해. 간단하지?”


지원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니까 불안해지는 걸? 하지만 뭐 어때, 가자!”


차에 탄 지원은 냉동 욕조에 걸터앉은 레나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감기는 좀 어때? 괜찮아?”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언니. 금방 나았어요.”


알리사가 자기 바이오 모니터를 점검하며 말했다.


“언니는 자기 분야 외에는 바보라서 사실 다 안 나았을지도 모르죠.”


레나는 알리사의 팔을 치며 투정을 부렸다.


“야~! 아무리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냐아아!”


지원이 말했다.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던데, 사실 안 걸린거 아냐?”


“언니까지…”


에너지바를 씹고 있던 인호가 마무리를 지었다.


“어쩌나? 이제 막내라고 귀여움 받던 날도 다 가버렸는데.”


레나는 금세 시무룩 해져서는 욕조 안에 들어가버렸다.


“어떻게 너까지 그래…”


조 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레나, 그 귀여움 받는 새 막내는 네 여자친구 아니니? 여자친구한테 귀여움 받으면 되겠네.”


알리사는 팔을 뻗어 욕조 안에 기댄 레나의 목을 감았다. 잠시 후, 라디오가 12시를 알릴 무렵 자동차가 낡은 건물을 둘러싼 철책 앞에 멈춰섰다. 조 씨의 선글라스가 한차례 반짝였다.


“여전해. 그때랑 지금이랑 다를 바 없어. 여전히 방어시설은 무력하고, 침입 흔적도 없지. 미세스 리, 문에 묶인 쇠사슬 말인데, 풀 수 있어?”


“해 볼게.”


지원은 차에서 내려 문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쇠사슬을 바라보았다. 쇠사슬만 제거하면 양쪽으로 활짝 열리는 문이었지만, 그 쇠사슬은 문을 단단히 휘감고 있는데다 두께는 거의 지원의 팔뚝만 했다. 지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쇠사슬을 붙잡았다.


“씨발, 까짓거 해보지 뭐.”


지원은 손에 쇠사슬을 감더니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사이버웨어를 덮은 인조피부가 터질 듯이 팽창하고, 지원의 얼굴도 한가위의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침내 지원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기괴한 금속음과 함께 지원은 점토 바닥 위로 쓰러졌다. 인조피부가 찢어져 검은 사이버웨어가 노출된 손 안에는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길게 늘어나다 끝내 찢어진 쇠사슬이 들려 있었다.


“쇠사슬은 뜯었어. 조금만 기다려.”


지원은 문에서 쇠사슬을 벗겨내 멀리 집어 던진 다음 문을 활짝 열었다. 곧바로 차가 건물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 주차되더니 레나를 제외한 모두가 내렸다.


“레나는?”


“차 안에서 해킹 준비 중이야. 알리사는 욕조가 익숙하지 않거든.”


알리사의 두 눈이 한 차례 빛났다.


“여전히 방어장치는 모두 비활성화 되어 있어요. 그냥 들어가면 되겠네요.”


지원과 인호가 건물로 들어가는 철제 문을 열었다. 문이 금속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내부에서 건조한 공기가 흘렀다. 둘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통신 너머로 레나가 말했다.


“대충 아시겠지만 생체 반응은 없어요. 쥐새끼 하나, 바퀴벌레 한 마리 없이 깨끗해요.”


지원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알리사가 말했다.


“오히려 아무 반응도 없으니 더 불안하다… 라고 말하려 했죠?”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먼저 전원장치를 찾자. 내부에 전력 공급은 되고 있어?”


“네, 전기는 흐르고 있어요. 아무래도 정면에 전원장치가 있는 것 같아요.”


지원의 안구가 반짝이더니 그녀는 그대로 배전함을 열고 스위치를 올렸다. 동시에 내부의 조명이 일제히 켜지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주요 장비들은 전부 처분했다고 하지 않았어?”


“설마 이게 처분한 거라고…?”


“돈 될만한 게 있을까 싶었는데 말이죠, 이건…”


“어떻게 다 실어야 할지 걱정이네요 이제는.”


조 씨가 앞장서서 선반에 둔 사이버웨어를 들었다.


“일단 들고 갈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자.”


조 씨와 알리샤가 앞장서서 사이버웨어 들을 적당한 상자에 담는 동안, 지원은 작동이 정지된 전신 사이버웨어 의체들을 둘러보았다.


“회장은 이런 괴물 같은 쇳덩어리를 양산하려 했단 말이야? 이런 걸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 하니까 상상만 해도 오싹하네.”


뒤따르던 인호가 말했다.


“그 인간에 따르면 이것들은 반쯤 실패작이잖아요. 오히려 프로토타입이라는 것들의 성능을 생각하는 게 더 소름끼치네요.”


한편, 한참 사이버웨어 들을 쓸어담던 조 씨는 조작 컨트롤러 앞에서 멈췄다.


“뭐야, 프로토타입 Mk. 78… 79… 이 2개는 폐기가 안 됐잖아? Mk. 78, 코드네임 ‘마운틴 버터플라이’. 인공지능 두뇌를 장착한 고기동성 전투요원?”


그 순간, 한참 연구실을 살피던 지원의 바로 밑 바닥이 열리더니 무어라 할 틈도 없이 지원은 밑으로 뚝 떨어졌다.


“누님!”


“언니!!”


대략 3미터가량 떨어진 지원은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조 씨가 답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쪽은 일종의 ‘테스트 장’ 같아. 조심해… 뭐가 있을 지는 몰라… 어?”


그리고, 반대편 어두운 출입구에서 무언가 걸어 나왔다. 마치 로봇이 걸어 나오는 듯한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그것은 키는 지원보다 훨씬 커서 2미터는 훌쩍 넘겼으며, 머리에는 갓 같은 것을 쓰고 있었고 오른팔에는 소형차 만한 기계팔을 달고 있었다. 그것은 푸른 기계 안구를 번뜩이며 지원을 노려보다, 이내 기계 특유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프로토타입 Mk. 78 ‘마운틴 버터플라이’, 23번째 실험체 대상 실험 시작.”


지원이 총을 드는 순간, 그것은 오른팔을 뻗더니 이내 그 큼직한 기계팔을 발사했다. 지원이 간신히 몸을 던져 그것을 피하자, 놈은 팔과 연결된 쇠사슬을 당기며 팔을 거둬들였다.


“씨발… 오늘 일진 더럽게 사납네… 조 씨, 알리사… 빨리 꺼내 줘.”


지원은 심호흡을 하며 총을 겨누었다. 그것 역시 기계팔을 겨누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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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안드리예브나 초이, 그녀는 █████████████며, 그녀의 출생에는 █████나 ███이 연관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조 씨는 물론이고 알리사 본인 조차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