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열리고, 추레한 차림의 사람이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선다. 거리는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그곳엔 사람이 둘 있다. 철문이 열린 집의 옆집 문 앞에서, 그곳의 낡은 목조 의자에 사람이 있다. 어디가세요, 하고, 의자에 앉은 낡은 사람이, 슬리퍼를 끄는 추레한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은 말한다, 케이크를 사려구요.


  그 이외에는 사람이 없지만, 그들이 재하는 거리엔 낡은 무엇들이 많고도 많다. 그 수는 헤아릴수도 없는것이, 낡은 의자와 같은 비교적 큰 무엇부터, 거리에 구르는 병과 뚜껑까지, 그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에 파묻힌 집들은, 그리 낡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낡고 문드러진듯 보인다. 


  문둥이들의 거리에서, 낡은 의자의 사람은 케이크라는 말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다. 실은 케이크라 하면, 어떤 기념적 의의를 다분히 품고 있음에도 말이다. 거리의 그들은 그만큼 서로에게 관심이 깊지 않은것이다.


  정오의 볕은 거리의 끝에서 선명히 빛낸다. 추레한 사람은 슬리퍼를 끌며 볕을 향해 나아간다. 슬리퍼에는 작고 낡은 무엇들이 끝없이 채이지만,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슬리퍼를 바닥에 딱 붙이며 나아간다. 더 이상 의자와 슬리퍼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의자는 단지 그곳에 있어, 꾸준히 문드러질 때만을 기다리며, 병뚜껑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나서면 그곳에는 눈밭이 있다. 아까전의 낡은 무엇들과 달리 눈들은 꼭 새하얗고 새로이 보인다. 슬리퍼를 유영하며, 양말마저 없는 발에 끊임없이 눈이 닿아 녹음에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나아간다. 그는 꾸준히 나아간다. 눈밭에 긴 자국을 남기며.


  거리와 이어진 비교적 깔끔한 마을에는, 분수대도 있고 다리도 있지만, 분수대는 눈에 덮여 커다란 산의 형태가 되었고, 다리 밑의 물들은 아주 얼어 그곳 또한 희게만 보인다. 그런 날씨에도 사람들은, 형형색색의 두꺼운 옷들을 걸치곤 밖을 돌아다닌다. 그에 반해 추레한 사람은, 정말로 추레하고 얇은 옷에 슬리퍼만 입어, 그 속에 눈들이 들어차 몸들을 식히는 행색이다. 그 누구도 춥지 않냐고 묻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서로 걸친 색동옷을 자랑하기 바쁘다. 


  사람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눈밭에 남겨진 그 자국들은 상가를 향한다. 다리 저편에 상가들은 모여있다. 대부분은 너무도 눈이 오기에 문을 열지 않지만, 몇몇 가게들은 조명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린다. 평소에 비해서 오는 사람이 현저히 적을것을 당연히 앎애도 그렇다. 두꺼운 옷을 입은 색색의 사람들이 있기야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건 서로에게의 자랑이지 소비가 아니다.


  사람이 마침내 도착한곳은, 상가중에서도 작은, 그리고 구석에 위치한 빵집이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는다, 추운 날씨에 철로 된 손잡이는 그의 손을 꽉 깨문다. 사람이 당김에도, 문은 기어코 열리지 않는다. 빵집 안의 조명은 너무도 잘 켜져서, 그의 오른쪽을 비추는 햇볕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손을 떼고 다시 당겨보려 시도하지만, 손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문을 당긴다.


  문 앞에도 눈은 쌓여서, 너무나 바닥에 마찰한 나머지 다 닳아버린 슬리퍼는 쉽게 미끄러진다. 사람의 몸이 뒤로 미끄러지며, 달라붙은 문고리는 손에서 떨어진다. 사람의 머리는 점점 바닥에 가까워진다. 사람이 넘어지며 시점이 차츰 위로 올라가고, 그렇게 그는 문에 문을 밀라는 글이 써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이 일어났을 즈음에, 그의 앞에 흰 가운을 입은, 약간은 권위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 뒤에는 창문이 있고, 창문은 컴컴해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사람이 누운 침대맡의 조명만이, 그 방을 밝혀주고 있다. 


  흰 가운의 사람은 다짜고짜 외친다, 암입니다. 추레했던 사람은 그것을 듣고는, 아주 평탄한 어조로, 잘됐네요, 하고 답한다.


  사람의 침대 옆의, 커튼이 젖히고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다리 한쪽을 들어올린 채 고정되어진, 한 사람의 침대가 보인다. 그 침대에 적히기를, 정신병이라 되어있다. 붕대를 감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사람과 사람을 쳐다본다.


  추레했던 사람은 옆의 커튼 너머를 잠시 보다, 다시 권위적인 사람을 바라보고 대화를 잇는다. 죽나요? 가운의 사람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곧 죽습니다.


  사람은, 표정 변화 없이 말한다, 케이크를 사야합니다. 정신병자는 당황스러워 한다, 도무지 이게 무슨 대화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것은 오로지 그뿐이라고, 정신병자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 생각은 적절하다.


  가운의 사람은 슬리퍼를 신었던 남자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친다. 사람의 침대 오른편에서 간호사 명찰을 단 사람이 들어온다. 명찰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다. 


  정신병자는 넘어졌던 남자에게 말을 건다, 무엇에 쓰기 위해 케이크가 필요하오? 암 환자는 대답한다, 당연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그 어조는 너무나 명료하게 생각된다. 


  암 환자는 케이크를 들고, 그 위에 초를 꽂지 않은 채 불을 붙인다. 그야 암 환자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정신병자는 갑작스레 생각한다. 이건 어디서 인식된 생각일까? 정신병자는 고민한다.


  암 환자가 나지막이, 가볍게 초를 불고, 미약하던 불꽃은 그마저도 사그라져, 마침내 기념행사가 끝났다는 듯 하고, 암 환자는 웃는다. 정신병자는 생각하기를, 어쩐지 살아있는듯 하다, 이전에 비하여.


  권위적인 사람과 명찰의 사람은, 암 환자를 받아들고, 다시 그 공간을 나간다. 케이크는 온데간데 없다. 


  정신병자는 홀로 남아, 명백하게 홀로 남아 생각한다. 저 케이크는 또 뭘까,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시어인가, 정신병자라는 명찰을 발판삼아 사색을 잇는다.